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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들의 YS 찬양이 어색하고 불편한 이유


ⓒ SBS 뉴스


또 하나의 거목이 쓰러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대한민국 민주화의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향년 88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에 맞서 반평생을 용맹히 싸워 왔던 그 역시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는 못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민주화의 상징이자 이 나라 정치계의 영원한 스승이었던 두 거목을 차례로 잃게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빼놓고 대한민국 정치사를 논할 수는 없다. 그만큼 고인의 자리는 독보적이었다. 그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순간에 늘 함께 했고, 이를 주도해 왔던 민주투사였다. 그는 민주투사답게 숱한 명언을 남였다. 특히 유신시절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원에서 제명된 뒤 남겼던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이 땅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도전을 안겨준 명언으로 각인되고 있다.

그에게 배신자라는 오명을 안겨준 3당 합당과 대통령 시절 초래한 IMF 사태, 퇴임 이후 보여준 부적절한 언행 등으로 비판받기도 했지만, 고인이 대한민국 정치사에 남긴 족적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만큼 뚜렷하다. 정쟁을 일삼던 정치인들이 한 목소리로 애도를 표하고, 수많은 국민들이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 연합뉴스



고인을 향한 추모의 분위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진영논리를 떠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고인이 대한민국 사회와 정치사에 남긴 흔적은 한두 마디의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는 한 시대를 아우르는 아이콘이자 상징적인 존재였다. 비록 공과에 대한 시각차는 있을 지라도 고인을 떠나보내는 자리에 여야와 진영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슬픈 것은 슬픈 것이고, 비통한 것은 비통한 것이다.

빈소와 분향소에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의 엄숙함과 숙연함이 가득하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덮이는 순간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인이 남긴 족적을 무겁게 되새기고 있는 즈음에 한가지 기이한 장면이 눈에 띈다. 이 기이함이 나는 아주 낯설뿐더러 매우 불쾌하다.

민주화 투쟁의 역사이자 상징이었던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 정치인들의 조문 행열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 자리에 민주화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나라 민주주의를 권위주의 체제로 역행시킨 주역들도 심심치 않게 목격되고 있다. 그들이 삼삼오오 모여 민주화의 거목을 애도하는 이 장면은 그러나 뭔가 어색하고 대단히 불편하다.



ⓒ 경향신문



고인의 '정치적 상주'임을 자청하고 나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민주화 투쟁을 하던 시절이 생생한데..."라고 고인과 함께 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애통해 했다. 그러나 자신의 '민주화' 이력을 들먹인 그는 불과 며칠 전 있었던 민중총궐기대회를 불법집회라 규정한 장본인이며,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국정교과서를 강행시키는 등 이 나라 민주주의의 퇴행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는 인물이다. 고인과 함께 했던 민주화 투쟁을 생생히 기억하는 인물이 지금은 반민주주의의 선봉에서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상도동계의 대표적인 인사인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의원 역시 고인의 용기와 결단을 높이 평가하며,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 투쟁과 민주화 투쟁의 빛나는 성과를 극찬했다. 그러나 그 역시 고인이 목숨을 걸고 이루려 했던 민주주의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삶을 살아온 인사다. 고인에 의해 정치에 발을 들여 놓은 이인제 최고의원과 이완구 전 국무총리, 그 밖의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고인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올드보이들의 남다른 감회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고인과의 각별했던 인연과 추억들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남달랐을 것이다. 따라서 고인을 향한 애도와 추모의 마음은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저들에게 고인을 추모할 자격이야 있다고 하더라도, 고인이 평생에 걸쳐 쌓아온 '민주화'의 이력을 거리낌없이 거론하고, 그에 편승할 자격까지 있는지는 의문이다.



ⓒ 경향신문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이자 역사였던 고인을, 권위주의와 독재에 맞서 목숨을 걸고 투쟁해 왔던 고인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권위주의를 부활시킨 자들이 모여 추모하고 있다. 이 어색하고 생경한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내가 느끼는 어색함과 불편함은 인간의 끝모를 욕망에 대한 직관 때문이다. 물론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고인이 평생에 걸쳐 쌓아온 '민주화'의 성과들을 짓밟고 있는 주역들이, 천연덕스럽게 고인의 민주화 투쟁을 기리고 찬양하는 것은 대단히 이질스럽게 느껴진다. 이보다 더 지독하고 끔찍한 이율배반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YS 찬양이 어색하고 불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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