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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가슴 아픈 밥상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이야 연휴기간도 길어지고 도로망이 잘 정비되어 고향길이 비교적 수월해졌다지만 불과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상황은 지금과 달라도 한참은 달랐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려면 열 대여섯 시간은 족히 걸려야 했고, 그것도 이른 새벽에 출발하지 않으면 하루를 꼬박 차에 갖혀 있어야 했다. 국도와 고속도로 가릴 것 없이 도로란 도로는 모두 주차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북새통도 그런 북새통이 없었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고향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렘과 기대가 있었고, 웃음과 즐거움이 있었다. 각박하고 삭막하기만 한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 데 모여 보름달처럼 풍성한 정과 마음을 서로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살림살이는 넉넉하지 않아도 가족들이 둘러 앉아 밤새 이야기 꽃을 피우다 보면 세상의 근심과 걱정은 어느새 눈 녹듯이 사라져 갔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그때나 지금이나 추석 명절의 풍경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은 손이며 가슴에 선물 보따리를 한아름 안고 어디론가 발길을 분주하게 재촉할 것이고,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들로 밤을 꼬박 지새울 것이다. 이는 이맘때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추석의 풍경 중 하나다. 그런데 대다수의 서민들이 명절 준비에 한창일 오늘,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가슴 아픈 추석을 보내게 될 사람들의 사연이 내게 들어 왔다. 





추석을 나흘 앞둔 지난 4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세월호 참사로 실종된 단원고 학생 황모(17)양의 부모는 딸을 위한 추석밥상을 차렸다. 세월호가 침몰한지 5개월이 다되도록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딸을 위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바다를 바라보며 덩그러니 놓여있는 밥상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5개월이면 가슴 속 깊은 곳에 응어리져 있을 눈물조차 메말라 버릴만큼의 긴 시간이다. 지금 팽목항에는 그 긴 시간을 눈물과 한숨으로 버텨온 유족들이 여전히 머물고 있다. 


아직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수는 모두 열명에 달한다. 싱그러운 햇살을 머금고 풀꽃들이 화사롭게 피어나던 봄날에 집을 떠난 사람들이 추석이 다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그 여름이 가고 가을이 찾아 오도록 열명의 실종자들은 아직도 깊은 바다물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따뜻한 밥 한공기에 담긴 온기로 차디찬 바닷속 한기를 덜어낼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이럴땐 매서운 바닷 바람이 그저 야속하기만 하다. 


그러나 어디 야속하기만 한 것이 바람뿐이랴. 무려 300명이 넘는 목숨이 희생된 참사 앞에서 (심지어 진상규명조차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피로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유족들을 향해 대놓고 욕설과 조롱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통령의 마음은 떠난 연인의 그것처럼 차갑기 그지없고, 정치권은 여전히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뻔뻔하다. 불과 얼마전 방한했던 교황의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메시지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언론과 일반대중의 관심 역시 교황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모두 야속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든 잊혀지는 것(이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잊혀지는 것을 거부해서도, 두려워 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잊혀질 때 잊혀지더라도, 잊을 때 잊더라도 잘 잊혀져야 하고 잘 잊어야만 한다. 그래야 후유증을 최소화 할 수 있고,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거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우리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잘못되도 한참은 잘못됐다. 세월호 참사를 잊기 위한 절차와 과정을 생략한 채 '잊으라고'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글 ☞ 세월호 참사, 사람들은 벌써 잊은걸까? ☜ (클릭)


세월호 참사는 정상적인 국가사회시스템이 작동했다면 '왜 잊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잊어야 하는가'에 집중하고 총력을 기울어야 하는 사안이다. 이를 위해 명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및 유가족과 희생자에 대한 범국가적 지원 등이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져야만 했다. 이같은 과정이 전제가 될 때 유가족 뿐만 아니라 사회공동체 역시 이 참사의 충격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런데 지금 보여지고 있는 모습은 이와는 정반대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잘 잊을 수도 없고, 잘 잊혀지지도 않는다. 잊을 준비가 전혀 안된 사람들에게 (잘 잊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절차와 과정도 제공해주지 않고) 시간이 꽤 흘렀으니 그만 잊으라고 한다면 이는 야박함의 정도가 아니라 엄연한 폭력이며 야만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는다는 것은, 떠나보낸다는 것은 물리적 시간의 흐름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물리적 시간의 양 따위로 계량화시키고, 근거없는 경제 문제와 결부시키고, 이념의 문제로 탈바꿈시키며 그만 잊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들에게서 생물학적 인간의 껍질을 덜어내고 나면 과연 무엇이 남아 있을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사흘 뒤면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다. 여느 때 같았으면 세월호 유족들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추석 명절을 보내기 위한 분주한 일상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다시는 예전과 같은 명절을 보낼 수 없게 되었다. 이 나라와 정부, 이 사회가 저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나는 이 사회가 이 시각에도 팽목항에서 광화문에서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고통을 가슴으로 삭이고,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고,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정도는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가슴 아픈 밥상에 담겨있는 유족들의 간절함을 사람들이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물학적 인간으로서가 아닌 사회적 인간으로서 말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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