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이뉴스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개헌안과 관련해 자유한국당의 입장은 '역시나'였습니다. 2일 의원총회를 통해 확정한 자체 개헌안에서 한국당은 '분권형 대통령제'를 권력구조 방안으로 채택했습니다.
국회에 의해서 선출된 국무총리가 행정부를 총괄하고 대통령이 통일·국방·외교 등을 담당하는 사실상의 이원집정부제를 당론으로 정한 것입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가 끝난 뒤 브리핑을 통해 이같은 내용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김 원내대표에 따르면, 한국당의 개헌안은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축소시켜 제왕적 대통령를 종식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김 원내대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의원내각제나 혼합체 정부지만 현실성 있는 것은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개헌안의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대통령제의 폐해가 극에 달한 만큼 이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국당은 이를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대신 국회의 권한을 대폭 강화시켰습니다. 책임총리제 구현을 위해 국회가 국무총리를 선출하도록 한 데 이어, 국무위원도 총리의 제청을 받는 뒤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습니다.
한국당의 개헌안에 따르면, 검찰·경찰·국세청·국정원·공정거래위 등 5대 기관장의 임명은 물론이고 사면권 역시 국회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만 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한국당은 '관제 개헌을 막아야 한다'며 대통령의 헌법개정 발의권도 삭제시켰습니다. 쉽게 말해 대통령의 손발을 묶어놓는대신 의회의 권한은 강화시키겠다는 심산입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병폐가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비단 정치권뿐만이 아니라 다수 국민 역시 대통령의 권한 축소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한국당에게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와 권한 축소를 거론할 자격이 있느냐는 점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멀게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가깝게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한국당은 '대통령제의 흑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특히 간과하지 말아야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제외하면 지난 수 십년 동안 대통령제를 주도적으로 운용해온 당사자가 바로 한국당을 위시한 현 보수야당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한국당이 문제삼고 있는 대통령에 의한 권력 오·남용과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폐쇄적 국정운영의 책임이 상당 부분 그들에게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면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향한 한국당의 맹렬한 공세는 결국 '자기 얼굴에 침 뱉기'나 다름이 없습니다.
대통령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분권형 대통령제'를 거론하는 것이 온당한지의 여부도 따져볼 일입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현재 국회는 뿌리 깊은 국민 불신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대통령 개헌안에 포함돼 있는 '국민소환제'에 찬성하는 여론이 90%에 달하는 것만 보더라도 이는 확연해집니다.
그런가 하면 국회는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도 조사 결과가 공표될 때마다 거의 예외없이 꼴찌는 차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떡검', '썩검', '섹검' 등 온갖 비아냥과 조롱을 받고 있는 검찰보다도 신뢰도가 더 낮습니다.
ⓒ 오마이뉴스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은 축소된 대통령의 권한을 국회가 갖도록 하는 개헌안을 당론으로 정했습니다. 국회를 향한 국민 불신이 극을 향하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손질하고 외려 의회의 권력과 위상을 높이겠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늘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는 국회의 현주소를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손발이 오그러드는, '뻔뻔함'의 극치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제왕적 의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표리부동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대통령 4년 중임제(대통령 개헌안은 연임제)로 가거나 현행 5년 단임제로 가자는 분들이 약 70%에 이릅니다. 그러면 저는 결정권은 국민에게 있기 때문에 대통령 중심제로 가야 되고 다만 대통령 중심제로 가더라도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키거나 대통령을 견제하는 시스템이 다양하다는 거죠. 다양하기 때문에 그중에 어느 걸 택할 것이냐로 논의가 모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한이 적은 대통령, 20%의 권한밖에 안 갖고 있는 대통령은 사천 만 유권자들이 뽑고, 국민들이 뽑고 그리고 실제 권력의 80%를 갖고 있는 총리는 300명의 국회의원이 뽑는다면 그걸 국민들이 용납하겠냐는 거죠. 그래서 저는 현실적으로 그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작동되기도 힘들거니와 그리고 주권자가 국민이라는 점에서도 안 맞는 방식이다(라고 봅니다)."
3월 28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여야 3당의 개헌 협상과 관련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권력구조의 결정권은 대통령이나 국회가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고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당이 주장하고 있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갖는 현실적 한계를 신랄하게 꼬집었습니다.
요약하면 주권자인 국민의 다수가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는 만큼 그 기반 아래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현재의 의회 수준과 제도적 문제 등을 감안하면 분권형 대통령제가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국민 여론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방증합니다.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 국민들은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보다 대통령제에 대한 선호도가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가 지난 3월 16~17일 이틀간 조사해 3월 18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통령제를 선호한다는 응답(4년 연임 46.3%, 5년 단임 22.2%)이 68.5%로 조사됐습니다. 이는 15.2%를 기록한 이원집정부제와 6.9%에 그친 의원내각제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입니다.
한국당이 맹공을 펴고있는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여론도 나쁘지 않습니다. 한국 갤럽이 3월 27~29일 사흘간 조사해 3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통령 연임제가 포함된 '대통령 개헌안' 발의를 '좋게 본다'는 의견은 55%로, '좋지 않게 본다'는 의견 24%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리얼미터가 tbs 교통방송의 의뢰로 3월 28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통령 개헌안 발의 찬성 여론이 64.3%로, 반대 여론 27.6%를 압도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권력구조 개편을 바라보는 한국당과 국민 사이의 괴리감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다수 국민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이, 국민 불신의 온상이 되고 있는 국회의 낯부끄런 현실은 상관이 없다는 듯이 한국당은 의회의 권력을 강화하는 이원집정부제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한국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분권형 대통령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권력구조 방안일까요. 한국당에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30년 만에 찾아온 개헌의 골든타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시장 선거..안철수가 질 수밖에 없는 이유 3가지 (5) | 2018.04.06 |
---|---|
문재인과 홍준표, 그들이 '4.3'을 기억하는 방법 (8) | 2018.04.04 |
'한국당·바미당' 선거연대? 유승민·김성태의 '입'을 주목하라 (10) | 2018.03.31 |
허수아비 대통령 살리자고 그리 거짓을 말했나? (13) | 2018.03.29 |
배현진의 '자기합리화'..친일부역자 생존 논리 빼다 박았다 (8) | 2018.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