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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문재인과 홍준표, 그들이 '4.3'을 기억하는 방법

ⓒ 오마이뉴스


"오늘 제주 4.3추념식에 참석합니다. 건국 과정에서 김달삼을 중심으로 한 남로당 좌익 폭동에 희생된 제주 양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행사입니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건국한 자유대한민국이 체제 위기에 와 있습니다. 깨어 있는 국민이 하나가 되어 자유대한민국을 지켜야 할 때입니다."

4.3 사건(이하 4.3) 70주년을 맞아 제주 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 참석하기에 앞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일 오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씁쓸하다. 대한민국 보수를 대변하는 제1야당 대표의 인식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왜곡과 극단적 편향성이 글 속에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4.3은 당시 제주도민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약 3만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발생한 안타까운 비극이자, 아직까지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있는 역사의 상흔으로 기억되고 있다. 4.3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배경과 좌우의 이념대립이 극심했던 해방 전후의 혼란스런 시대상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4.3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특별법에 명시된 것처럼 4.3의 시작은 1947년 삼일절 기념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제주는 일제의 혹독한 수탈, 계속된 흉년과 기근 등으로 최악의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는 해방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가운데 제주읍 북국민학교에서 열린 삼일절 기념식에서 어린아이가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다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시민들의 격렬한 항의가 이어지자 이를 폭동으로 오인한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시작한다.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 사건을 계기로 제주 전역으로 총파업과 시위가 퍼져나갔다. 몇 년째 이어지는 흉년, 고물가와 실업, 미 군정의 폭정, 이념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겹치면서 민심은 격앙돼갔고 시위는 점점 거세져갔다. 이 과정에서 남로당은 군중 시위를 주도하게 된다.

당시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길 원했던 미 군정과 정치기반이 취약했던 이승만은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이승만 정부는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월남한 지주출신 청년들이 주축이 된 서북청년단을 앞세워 무자비한 탄압과 폭력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1948년 4월 3일 이승만 정부의 폭압에 맞서 무장대가 제주경찰지서와 서북청년단 등 우익인사의 집을 습격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이에 이승만 정부는 즉각 무장대의 봉기를 빨갱이들의 선동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소탕작전에 나섰다. 군경과 무장대 간의 극렬한 대치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인 1954년 9월 21일까지 이어졌다.

문제는 당시 군경이 남로당 소탕을 이유로 무고한 양민까지 무차별적으로 살육했다는 사실이다. 당초 무장대의 병력이 350명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상자가 3만명에 달했던 이유였다. 희생된 사람들 중에는 여성과 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린아이와 심지어 젖먹이까지 있었다. 이는 당시 군경 토벌대가 얼마나 악랄하고 잔인하게 양민을 학살했는지를 드러내주는 방증이다.

실제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 2003년 확정 발표된 <4.3 진상조사보고서>는 4.3 당시 피해자가 "여러 자료와 인구변동 통계 등을 감안하면 25,000~30,000명으로 추정된다"면서 이 중 토벌대에 의해 희생된 사망자 비율이 무려 86.1%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무장대에 의해 희생된 사망자 비율 13.9%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로, 당시 군경 토벌대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참혹한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물론 보고서는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대가 선거관리요원과 경찰 가족 등 민간인까지 살해한 점은 분명한 과오이다. 그리고 김달삼 등 무장대 지도부가 1948년 8월 해주대회에 참석, 인민민주주의 정권 수립을 지지함으로써 유혈사태를 가속화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판단된다"며 무장대에게 4.3의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주지한 바와 같이 4.3은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과 동떨어져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후 정부 수립을 둘러싼 극심한 이념갈등과 제주도민을 향한 미 군정의  폭정, 민심의 혼란을 틈탄 남로당의 선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과정에서 군경에 의해 무고한 양민이 수없이 희생됐다는 사실이다. 남로당이 개입한 무장대의 무력봉기가 이승만 정부에 의해 자행된 반인륜적 인명살상을 정당화시키는 근거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오마이뉴스


"4.3의 명예회복은 화해와 상생, 평화의 인권으로 나가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제주는 깊은 상흔 속에서도 지난 70년간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외쳐 왔습니다. 이제 그 가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으로 이어지고 인류 전체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입니다. 항구적인 평화와 인권을 향한 4.3의 열망은 결코 잠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통령인 제게 주어진 역사적인 책무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추념식이 4.3 영령들과 희생자들에게 위안이 되고, 우리 국민들에겐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4월 3일, 문재인 대통령)

"제주 4.3 추념식이 열리는 4월3일은 1948.4.3 남로당 제주도당 위원장인 김달삼이 350명 무장 폭도를 이끌고 새벽 2시에 제주 경찰서 12곳을 습격했던 날입니다. 제주 양민들이 무고한 죽음을 당한 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좌익 무장 폭동이 개시된 날이 4월 3일입니다. 이 날을 제주 양민이 무고하게 희생된 날로 잡아 추념한다는 것은 오히려 좌익 폭동과 상관없는 제주 양민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88.CNN과 인터뷰할 때 제주 4.3은 공산폭동이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4.3사건 재조명시 특별법을 개정할 때 반드시 이것도 시정하여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날을 추모일로 고쳐야 할 것입니다." (2018년 4월 2일, 홍준표 한국당 대표)

4.3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인식은 이처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인류보편적 가치의 기반 위에서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으로 나아가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4.3의 진정한 의미를 폄훼하고 희생자들과 유족, 그리고 국민을 기망(欺罔)하는 사람도 있다.

역사 문제는 가치중립을 바탕으로 인류보편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홍 대표의 인식은 한 쪽으로 편향돼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 관계도 완전히 왜곡하고 있다. 그의 인식 속에는 무장대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만 존재할 뿐 군경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자리가 없다. 군경에 의해 좌익으로 몰려 희생당한 양민이 전체 사망자의 86.1%에 달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참으로 아찔한 현실인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홍 대표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실 왜곡도 서슴치 않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CNN 인터뷰 내용이 대표적이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의 '워딩'은 정확히 이랬다.

"원래 시작은 공산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지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문제는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해서 유가족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독해력이 조금만 있어도 당시 인터뷰의 방점이 '공산주의자의 폭동'이 아니라 억울한 죽음에 대한 '명예 회복'과 '위로'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터다. 그런데 홍 대표는 악마의 편집을 통해 마치 김 전 대통령이 4.3을 '공산폭동'이라 규정한 것처럼 사실 관계를  날조시키고 있다. 지난 2000년 '4.3 진상규명특별법' 제정에 앞장서며 4.3의 진실 규명과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 회복의 길을 열었던 김 전 대통령의 선의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4.3은 격동의 시기 좌우의 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 안타깝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홍 대표의 극우적 인식은 미래가 아닌 과거에 머문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커녕 현대사의 비극인 4.3마저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구시대에 횡행하던 색깔론과 진영논리로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왜곡하고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4.3의 의미를 기억하고 되새기려는 사람들 한쪽에는 이처럼 여전히 이념의 덫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개탄스럽기가 이를 데가 없다. 70년이 다되도록 4.3의 진상규명과 희생자의 명예 회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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