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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부검 아닌 특검해야 하는 이유

ⓒ 오마이뉴스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 논란이 점입가경으로 흐르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직접 사인과 사망의 종류를 둘러싼 의혹이 점점 증폭되고 있는 탓이다. 먼저 고인의 주치의였던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의 사망진단서 내용은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대단히 이해하기 힘들다.


백 교수는 급성 경막하 출혈로 317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 사망한 고인의 직접 사인을 '심폐정지'로 기재했다. 직접 사인은 말 그대로 사망의 원인이 되는 질환을 일컫는다. 심폐정지는 사망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일 뿐이다. 심폐정지가 직접 사인이면 모든 환자의 사인이 심폐정지라는 명제가 성립된다. 이런 식이라면 박종철의 사인도, 이한열의 사인도 '심폐정지'라는 소리다.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기재한 것 역시 전혀 납득이 안되는 부분이다. 고인의 사망의 선행 원인이 급성 경막하 출혈이라는 것은 서울대병원 측이 구성한 특별조사위원회에서도 인정한 부분이다. 특히 특위 위원장이었던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 교수는 "저보고 쓰라고 했다면 외인사로 쓰겠다"고 말해 백 교수가 지침대로 하지 않았음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백 교수가 작성한 사망진단서의 오류는 서울대 의대생 102명과 동문 365, 전국의 의대생 809명의 목소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들은 백 교수의 사망진단서가 자신들이 배웠던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들 역시 백 교수의 사망진단서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이뿐만이 아니다. 5일에는 사망진단서 작성 지침을 발간한 주체인 대한의사협회 마저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에 대해 "심폐정지는 절대로 사망원인이 될 수 없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의사협회가 발표한 '고 백남기씨 사망진단서 논란 관련 대한의사협회 입장'에 따르면, 의사협회는 백 교수가 작성한 사망진단서에서 직접 사인 항목을 '심폐정지'로 기재한 것은 작성지침과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심폐정지는 사망하면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이것이 절대로 사망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의사협회는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기록한 것 역시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의사협회는 "사망의 종류는 직접적인 사인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선행 사인으로 결정해야 한다" "고인의 경우 선행 사인이 '급성 경막하 출혈'인데 사망의 종류는 '병사'로 기재돼 있어 외상성 요인으로 발생한 급성 경막하 출혈과 병사가 서로 충돌하고 있다" 꼬집었다.

의사협회는 선행 사인이 급성 경막하 출혈이 명백한 만큼 사망의 종류가 병사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망진단서 논란이 부각될 당시부터 지적된 부분으로 백 교수가 작성한 사망진단서의 오류를 명징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이처럼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와 관련된 논란은 애초 논란이 될 여지조차 없었던 것이었다. 백 교수가 사망진단서 작성 지침의 원칙에 따라 직접 사인과 사망의 종류를 기재했더라면 지금처럼 논란과 혼선이 초래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백 교수는 작성 지침과 어긋난 사망진단서를 작성했고, 이 사망진단서가 검·경의 부검영장을 신청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유족들과 시민사회의 의혹이 집중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 오마이뉴스


백 교수는 왜 의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작성 지침대로 사망진단서를 작성하지 않았을까. 위원 전원이 문제 제기를 하는 상황임에도 특위가 사망진단서를 수정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의학전문가 대부분이 오류를 지적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백 교수는 왜 사망진단서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검찰은 과거 이와 유사한 사례에서는 '상해치사'라고 주장하더니 왜 이번에는 태도를 바꿔 '병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백 교수의 지시에 따라 고인의 사망진단서를 작성했던 레지던트는 왜 돌연 잠적한 것일까. 그는 왜 자신의 모바일메신저 계정 프로필에 "숟가락이 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건 불가능해요. 대신 진실만을 깨달으려 하세요"라는 영화 매트릭스의
장면을 게시해 놓았을까.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의문스러운 것은 다름 아닌 정부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타살이 명확한데도 대통령은 고인의 죽음에 일체의 언급이 없다. 피의자인 경찰은 사과와 책임 인정은 커녕 잘못된 사망진단서를 가지고 부검에만 매달린다. 집권여당은 또 어떤가.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부각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고인과 유족을 모욕하는 막말도 등장했다. 목불인견이 따로 없다.

정부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등 각종 시국 현안마다 그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도무지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사건의 진상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공권력'으로 겁박하고 위협했을 뿐이다. 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역시 그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정부는 이번에도 책임 대신 공권력에 기대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공권력이 오히려 시민을 향해 칼을 겨눈다. 박근혜 정권의 정체성을 이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또 있을까.

수많은 국민들을 분노케 만들고 있는 비상식적인 사망진단서와 부검 논란의 이면에는 이처럼 현 집권세력의 비민주성과 폭력성이 녹아있다.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국민의 시신마저 공권력을 동원해 탈취하려는 집권세력의 행태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을 떠올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확실한 것은 집권세력이 부검에 집착하면 할수록 국민적 의혹이 점점 짙어간다는 사실이다.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은 설명이 따로 필요없을 만큼 명백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부검'이 아니라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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