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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박근혜 '사면설' 솔솔, 적폐 청산의 당위는 어디가고?

ⓒ 오마이뉴스


"과거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피길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 장미꽃이 피길 바라는 거라고 했었다. (촛불시위를) 몇 백만이 하는데 평화롭고 시민권 행사를 한다. 자기들이 볼 때는 듣도 보도 못한 나란데 '제법이네' 하는 거다. 미국에서 미국 유학생들이 어깨에 힘준다고 한다. '탄핵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쟤들도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해'하는 모양이다."


유시민 작가는 지난 16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헌법재판소가 인용한 대통령 탄핵에 대한 해외의 반응을 이렇게 소개했다. 아닌게 아니라 촛불집회와 탄핵 과정에 대한 해외의 시선은 놀랍고 경이롭다는 반응 일색이다. 


BBC와 뉴욕타임즈, CNN 등 세계 유수 언론들은 광화문 촛불집회를 실시간으로 전하면서 대한민국 시민들이 집회·시위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고 극찬했다.

과거였다면 이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정권이 무너진다는 것은 극도의 무질서와 사회적 혼란이 동반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화염병이 등장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고, 정권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공권력을 무자비하게 남용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표현은 그렇게 생겨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탄핵 과정은 대한민국의 성숙한 민주주주의와 사회의 역동성이 확인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탄핵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있었지만 그 모든 과정이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평화롭고 질서있게 마무리됐다.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사태를 겪으면서도 우리 사회는 큰 혼란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떠받쳐온 위대한 시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시민들은 헌법과 법률을 어겼다면 누구라도 합법적 절차에 따라 그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과 그 일당에게는 없었던 헌법수호의 의지가 시민들에게 오롯이 녹아있는 것이다. 세계가 대한민국의 성숙한 시민 의식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 이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일 새벽 법정 구속됐다. 그는 현직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파면된 데 이어 검찰에 구속된 세번째 전직 대통령이 됐다. 사필귀정이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당사자는 그 누구도 아닌 박 전 대통령 본인이다. 그는 일일히 열거하기가 벅찰 만큼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가며 주권자인 국민을 배신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드러났을 때 잘못을 시인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결과는 지금과 사뭇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거짓 해명과 변명으로 일관하며 범죄 혐의를 부인하는가 하면, 국민과의 약속을 번번히 저버리기 일쑤였다. 뿐만 아니라 끝까지 범죄 혐의를 부정하고 은폐하는 등 헌법가치를 유린하는데 누구보다 앞장 섰다.

헌재가 "대통령의 행위가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함으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만 봐도 박 전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지가 얼마나 박약한지는 여실히 드러난다.

구속된 박 전 대통령은 현재 혐의 자체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헌재의 결정에 승복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던 그 모습 그대로다.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서에서 "국격을 실추시키고 국민의 신뢰를 저버렸음에도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관계까지 부인으로 일관하는 등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적시했다.



ⓒ 오마이뉴스


이 모습은 국정농단 사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박 전 대통령이 보여온 일관된 행태다. 국가의 위신을 한없이 떨어트리고 국민의 자존감을 무참히 추락시킨 대통령으로서 민망하고 부끄럽기 이를데 없는 모습이다. 잘못은 대통령이 했는데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라는 자조섞인 푸념이 괜히 세간에 유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 와중에 정치권과 언론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가능성이 '솔솔' 풍겨져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홍준표 경남지사는 후보 수락연설에서 "박근혜 구속은 이중처벌이라는 느낌이다.이제 국민들도 박 전 대통령을 용서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밝혔다.

언론 역시 유력 대선주자들을 향해 노골적으로 사면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다. 구속된지 만 하루가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가능성이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뜬금 없다. 아니, 심히 불쾌하다. 어불성설도 이런 어불성설이 없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단지 박 전 대통령 한 사람의 탄핵과 구속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사태는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짓누르던 불공정과 불평등, 부정과 부패 등의 적폐가 곪아 터져나온 사건이었다. '박근혜'로 상징되는 적폐들을 도려내고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나라, 특권과 반칙이 없는 나라, 부정과 부패를 용서하지 않는 투명한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과제가 이 사회에 주어진 것이다. 

국정농단의 몸통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엄격한 수사와 처벌은 무너진 헌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자, 새 시대 건설을 위한 당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권력에 굴종하고 기생하며 민주주의와 헌법가치를 유린한 부역자들과 공범들에 대한 책임도 엄중히 물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무슨 가당찮은 소리인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촛불집회의 대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다시 거꾸로 돌리자는 무책임한 주장에 다름 아니다. 친일 세력과 군부독재 세력를 단죄하지 못했던 실착이 오늘의 적폐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와 헌법가치를 짓밟은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추상 같은 단죄가 먼저여야 하는 이유다. 관용과 용서, 화해는 그 다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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