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박근혜는 박근혜다, 그는 달라지지 않는다

ⓒ 오마이뉴스


이제 '최순실 게이트'는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도 주목하는 대형 이슈가 됐다. CNN을 비롯해 AP, LA타임스, 뉴욕타임스, 폭스뉴스, 아사이 신문, 환구신보 등 세계 주요 언론에서도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최순실씨를 요승 라스푸틴과 비교해 눈길을 끌었다. 라스푸틴은 각료 인사는 물론 국정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제정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을 부추긴 문제의 인물이다. 라스푸틴과 비교되는 것만으로도 최순실씨의 국기문란과 국정농단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연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과 집회 등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3만여명(경찰 추산 12000)의 시민들이 모여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열렸다. 부산, 울산, 인천, 수원, 의정부,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도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촛불 시위는 평일인 주중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고 학생, 교수, 시민단체 등의 시국선언도 줄을 잇고 있다.

나라 안팎이 '최순실 게이트'에 휩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순실씨의 영향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것쯤은 예사였고, 국가 예산, 인사개입, 정책 결정의 과정에까지 그의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쯤되면 자신의 딸을 위해 학칙까지 바꿔가며 이화여대의 학사일정에 개입한 것은 조족지혈에 불과한 수준이다. 최순실씨의 위세가 이럴지니 굴지의 대기업들이 8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군소리 없이 내어준 것일 테다.

국민이 부여한 추상같은 권력을 일개 일반인이 행사할 수 있도록 수수방관한 대통령이나 헌법질서를 무시하고 국정을 사사로이 농단한 최순실씨나 절대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민의 자존감을 한없이 추락시키고, 존엄한 국가체계가 흔들리는 초유의 사태를 유발시킨 두 사람에게 반드시 법적,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온 나라의 이목이 '최순실 게이트'에 집중된 사이 정부가 국민이 한사코 반대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정교과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당사국 간 군사 기밀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협정)이 바로 그것이다. 정부는 역사학계와 교육계, 시민사회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국정교과서와 이명박 정부 당시 강한 반대 여론에 밀려 무산됐던 GSOMIA를 강행하겠다는 심산이다.


먼저 국정교과서의 경우 정부는 국정교과서가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 의식 함양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니만큼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교육부의 수장인 이준식 교육부총리와 국정교과서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신광수 교육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기획팀장 등을 통해 확인되는 일관된 기조다. 심지어 정부는 국정교과서가 '최순실 교과서'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다. 

일각에서는 국정교과서 추진 과정 당시 핵심인사였던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최순실 게이트'와 연관되어 있는 차은택씨의 외삼촌이라는 사실과 국정교과서와 관련된 대통령의 주술적인 발언들이 최순실씨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며 국정교과서가 '최순실 교과서'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정교과서를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국정교과서는 현재 북한 등 극소수의 나라에서만 채택되고 있는 교과서 체제다정부는 지난해 범국민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국정교과서를 강행시켰다. 그 결과 국민적 반발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중요한 것은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교과서에는 그 어떠한 명분도 없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국정교과서가 '최순실 교과서'라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전면 재검토 내지는 무효화해야 하는 것이 옳다. 



ⓒ 오마이뉴스



정부가 국방부를 움직여 갑자기 추진하고 있는 GSOMIA 역시 국민정서에 역행하기는 매한가지다. GSOMIA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12년 밀실에서 졸속 협상을 벌이다 발각돼 시민사회의 혹독한 비난을 받으며 무산된 바 있다. 국민적 거부 의사가 이미 명백하게 드러난 정부 정책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극도의 혼란에 빠져있는 와중에 다수 국민이 반대했던 GSOMIA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혀 그 저의를 의심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과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국방부가 아무런 암시도 없이 갑자기 올해 안에 일본과 협정을 체결하려는 배경이 의심스럽다며 이는 청와대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진표 의원 역시 국방부의 갑작스런 협정 재개에 강한 의문을 표시하며,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분산시키기 위한 의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가 일본과의 GSOMIA를 다시 꺼내든 저의가 무엇이든 간에 그보다 먼저 따져 물어야 할 것은 과연 이 정부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느냐는 점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사유화시킨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차대한 원리인 국민주권의 원칙을 저버렸다. 대통령의 세세한 법률 위반은 차치하고라도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타인에게 양도했다는 것 자체가 명백한 헌법 위반이다. 헌법질서를 어지럽힌 대통령과 그를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게 국가 정책을 수행할 자격과 권한이 없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거세지고 있는 추세다이 엄중한 시기에 대통령과 정부가 집중해야 할 일은 민심을 추스리는 일이며 국정 혼란을 최소화시키는 일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거취를 포함해 모든 방안을 열어놓고 국정공백과 국가마비 사태를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과 정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통령과 정부가 추진해왔던 국가 정책 역시 유보해야 마땅할 것이다. 국가 정책을 추진할 자격과 동력이 대통령과 정부에게 없는 탓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사태의 위급함과 위중함을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정
부는 이 엄중시국에 국민이 반대하는 국정교과서와 GSOMIA를 강행할 태세다. 어디 이뿐인가.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우병우 민정수석의 후임으로 전형적인 정치검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을 임명했다. 최순실씨 수사와 관련해 청와대가 검찰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는가 하면, 관련자들의 입맞추기와 증거인멸의 정황마저 드러나고 있다.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에 국민은 대통령의 철저한 참회와 반성,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대난망에 가깝다. 그는 달라지지 않는다. 박근혜는 박근혜다.



 세상이 보이는 정치·시사 블로그 ▶▶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