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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민중이 '개·돼지'라는 정신나간 정책기획관

지난해 개봉해 큰 화제를 불러모은 영화 <내부자들>은 청소년관람불가임에도 불구하고 1000만 관객에 육박하는 엄청난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정치와 경제, 언론이 결탁한 우리 사회의 검은 치부를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는 이 영화는 픽션과 넌픽션의 경계를 아슬하게 오간다. 실제 등장인물들은 현실 속 캐릭터들을 고스란히 차용했다고 해도 과함이 없다.

그 중 유력 일간지의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캐릭터다. 강력한 펜의 힘으로 정치판을 설계하는 그는 극중에서 관객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드는 대사를 날린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 입니다. 뭐하러 개, 돼지들에게 신경을 쓰시고 계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 연합뉴스



관객들의 분노를 유발시켰던 문제의 대사가 어제(87일) 하루종일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진원지는 다름 아닌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의 입이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그는 지난 7일 저녁 경향신문 정책사회부장, 교육부 출입기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문제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민중을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며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귀를 의심한 기자들의 확인 질문에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는 말실수가 아닌 그의 철학이자 신념이다. 그는 이날 민중을 99%에 해당하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로 규정했다. 단 한번도 스스로를 개·돼지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필자는 졸지에 개·돼지가 됐다.

여기서 발언의 시시비비를 논하는 것은 지극히 무의미하다.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굳어있는 그의 통념이 바뀔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저와 같은 신념과 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는 그 거대한 카르텔의 부속이자 부품일 뿐이다

사실 놀라운 것은 그의 몰지각한 발언보다 그가 교육부 소속의 고위 공무원이며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정책기획관이라는 사실이다. 교육정책을 연구·수립하고 이를 운용하는 막중한 책무가 그에게 있는 것이다.  이 나라는 민중을 개·돼지로 취급하는 인물이 교육정책 전반을 기획하고 총괄한다

세상이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사회적 양극화가 극단에 이른 '헬조선'에서는 이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체득하게 되는 삶의 굴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 그리고 올바른 정책이 필요하다.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세상이 조금이라도 평등해질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고 제도를 정비해야 하는 것이다. 정치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으며 국가정책 역시 이를 바탕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그런데 나향욱 기획관의 인식은 이를 철저하게 부정한다. 그에게 있어 정치는 그리고 지위는 자신의 신분상승을 위한 도구이자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1%가 되기 위해서, 공고한 카르텔에 진입하기 위해서 그는 정책을 만들고 제도를 정비해 왔을 터이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내부자들>의 이강희가 머물고 있는 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 오마이뉴스



문제의 심각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권력자들은 그들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더욱 확대 강화시켜 나가는데 반해 절대다수 민중들의 삶은 그와 반대로 점점 피폐해져 가기 때문이다. 이 땅에 삶의 양극화가 극성을 부리는 이유다. 그리고 이것이 나향욱 기획관의 기저에 있는 욕망의 본질이다. 국정교과서, 누리과정 같은 교육정책들이 그 비루한 손끝을 거쳤을 생각을 하니 아찔한 현기증이 난다.

그를 향해 대중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들 세계의 표현대로라면 개·돼지들이 짖어대고 있는 것이리라. 이들의 비난이 적당히 짖다가 잠잠해질지 아니면 더 극한 곳까지 향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대중의 공분은 이번 파문이 단순히 그의 사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껏 고위공직자의 숱한 망언들이 있어왔지만 민중을 개·돼지로 폄하하고 비하하는 끔찍한 망언은 일찌기 없었기 때문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향욱 기획관이 이번 기회를 통해 분명하게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그가 오매불망 고대하는 신분제 사회가 무너진 것은 개·돼지들이 목숨바쳐 짖어댄 결과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은 단순히 짖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물기도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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