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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메르스의 공포보다 더 두려운 것은

당초 수일 내 진정될 것이라던 정부와 보건당국의 전망을 무색케 하듯 메르스가 전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 부산에 이어 어제(15일)는 대구에서도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은 환자가 발생했다. 메르스로 인한 격리자도 5,000명을 돌파했다.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메르스 환자들과 급증하고 있는 격리자의 숫자는 메르스가 진정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당초 정부는 2차 감염자가 나온 이후 국민들이 동요가 심해지자 3차 감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3차 감염자는 정부의 장담을 비웃듯 지난 2일 처음으로 발생했고 이후 계속 늘어만 갔다. 정부의 주장과는 다르게 3차 감염자가 발생하자 국민들은 이번에는 4차 감염의 가능성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와 보건당국이 4차 감염의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우려대로 4차 감염자도 발생했다. 그러자 정부와 보건당국은 감염의 '차수'보다는 '장소'가 더 중요하다며 아직까지 병원 밖 지역사회 감염은 없으니 통제가 가능하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이제는 지역사회 감염자가 나와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닌 상황에 이르렀다. 정부와 보건당국의 말과는 다르게 사태가 흘러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정부와 보건당국이 감염경로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환자들이 아직도 상당수 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확진판정을 받은 사람들 중 격리되기 전까지 도심을 오가며 사람들과 무차별 접촉한 환자들도 다수 있다는 사실도 눈여겨 봐야 한다. 이같은 사실은 병원내 감염만 있을 뿐 지역사회 감염은 절대로 없다고 주장하는 정부와 보건당국의 주장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부산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143번 환자의 경우 보건당국의 관리대상에서 빠져 있는 동안 접촉한 사람만 7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한 삼성서울병원의 폐쇄를 불러온 이송요원은 증상이 나타난 이후에도 9일간이나 근무를 했으며, 대청병원의 전산업체 파견사원이었던 환자 역시 격리 전까지 부산에서 열흘이 넘게 일상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이처럼 정부와 보건당국의 방역망을 피해가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역사회 감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던 정부와 보건당국의 확신에 찬 주장이 다시 한번 깨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어제 정례 브리핑을 통해 아직까지 "지역사회 전파 사례가 없다" "메르스는 진정의 기로에 있다"고 밝혔다. 또한 "현재 위기계획을 상향조정할 것인지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해 메르스 대응단계를 올릴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정부와 보건당국은 관리·통제만 제대로 이루어지면 메르스의 추가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모양이다. 상황이 이처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보건당국은 여전히 메르스가 곧 진정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태도는 메르스가 처음 발생한 이후 보여준 당시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당시에도 그들은 메르스 사태를 초기에 진압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고, 곧 진정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들의 말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현재까지 사망자 수만 16명에 달하고 격리자 수는 곧 10000명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로의 감염은 시간문제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무능과 안일한 판단으로 화를 키웠던 정부가 여전히 상황을 낙관하고 있다. 참으로 대책없는 자신감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감염경료는 의료기관 내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저희가 관리가 가능한 상태로 지금 이 패턴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관리가 가능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 지난 2일 문형표 복지부 장관


"병원이 아닌 곳에서 일상생활을 하시는 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과도한 불안과 오해를 가지지 마시고 일상적 활동을 정상적으로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지난 10일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기업들의 경영활동이 하루 속히 정상으로 돌아와야 하겠다. 휴업 중인 학교들도 이제 의심자 격리, 소독 강화, 발열 체크 등 예방조치를 철저히 하고 정상적인 학사 일정에 임해주기 바란다" - 15일 박근혜 대통령 





많은 사람들이 메르스 사태가 확산된 가장 큰 이유로 정부의 무능과 독선을 꼬집고 있다. 정부의 안일한 상황인식과 늦장대처, 정보공개를 꺼리는 비밀주의가 상황을 점점 더 악화시켰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확한 지적이다. 지난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국민들은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서도 무능한 정부의 민낯을 여실히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메르스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크게 위협하고 있고, 경제와 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막심한 피해를 유발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사태를 해결할 만한 뚜렷한 대책과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를 반면교사로 삼지 못했던 박근혜 정부의 무책임이 바로 그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다. 정부는 참사의 진상과 책임소재를 규명하는 일을 사실상 방기했다. 따라서 사후 대책마련과 재발방지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메르스 사태를 세월호와 비교하는 것은 거의 모든 면에서 당시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사건의 흐름 탓이다. 국가위기관리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고 메르스 사태를 총괄하는 정부 내 사령탑은 부재했다. 정부는 관련사실을 감추거나 쉬쉬하기에 급급했고, 이에 국민들의 정부 불신은 극에 달했다. 이제는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국민들이 믿지 못하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세월호 참사를 타산지석과 반면교사로 삼았다면 메르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정부에는 사태의 원인과 진상을 규명할 사명도, 관련자를 색출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메르스 바이러스처럼 대한민국 곳곳으로 퍼져 나가는 말들의 성찬과 향연만 있을 뿐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모든 면에서 세월호의 데쟈뷰로 흘러가고 있는 메르스 사태, 어쩌면 무능한 것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무책임일 지도 모른다. 필자는 메르스의 공포보다 무책임한 정부가 그래서 더 두렵고 끔찍하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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