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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도넘은 노무현 비하, 그들이 잊고 있는 것들

지난 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내용물이 담긴 호두과자를 제작 판매해 물의를 빚은 천안소재의 한 호두과자 업체가 자사를 비난하는 네티즌 150여 명을 무더기로 고소하고, 당시 발표했던 사과문도 취소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013년 7월 말 이 업체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의미의 '노알라'(노무현 대통령과 코알라를 합성한 사진) 스탬프가 들어있는 '고노무 호두과자'를 제작해 일부 고객에게 제공했다. 이 제품은 '고노무 호두과자'라는 이름에서 보듯 의도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제품의 포장박스에는 '중력의 맛', '추락주의'라는 문구와 '일베제과점'이라는 로고까지 찍혀 있다. '고노무', '중력', '추락', '노알라' 등은 모두 일베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내뱉은 악의적인 표현들이다.


당시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해당 업체는 "정치적인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스탬프를 제작하거나 의뢰한 것이 아니고 재미 반 농담 반 식의 이벤트성으로 보내온 것"이라는 사과글을 올린 바 있다. 그러나  자신을 '일베충'(일베)이라고 밝힌 해당업체의 아들은 최근 업체 홈페이지에 "당시 사과문을 올렸음에도 사람들은 홈페이지에 심한 욕을 썼다. 그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다. 금전적인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당시) 사과는 일단 사태수습용으로 한 것이다. 내용을 읽어보면 사과보다 해명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마저도 이 시간부로 다 취소하겠다"고 밝혀 당시 사과글도 진심이 아니었음을 당당하게 커밍아웃했다. 


씁쓸하고 비통하다. 분노보다는 안타까움과 연민이 먼저 배어 나온다. 고인의 명예를 욕보이고 유족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반인륜적인 행동에 대한 어떠한 자성도 없이, 적반하장으로 자신이 오히려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내로부터 그 어떠한 인간적인 감정조차 읽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심각하게 일그러지고 뒤틀려 극도로 피폐해진 영혼은 이처럼 합리적인 가치판단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시켜 버린다. 사유의 빈곤과 철학의 부재가 만들어낸 우리 사회가 당면한 크나큰 문제다.   





잠시 동안의 시간이 흐르고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그러자 이내 한 사람의 모습이 오롯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녀사냥 하듯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에서 늘 공격과 조롱을 받았던 사내. 대통령 재임 중에도, 퇴임 이후에도, 심지어 서거 이후에도 갖은 멸시와 비아냥을 받으며 모욕을 받고 있는 사내.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사내. 불현듯 노무현 전 대통령의 웃고 있는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목숨처럼 사랑했던,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가슴 한 켠에서 쓰디 쓴 물이 역류하며 솟구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왜곡과 비하는 끊이지 않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중이다. 이같은 일은 우리사회의 집단적 광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베를 중심으로 온라인 상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쯤되면 하나의 현상으로 볼 수 있을 지경이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지극히 반사회적이며 비인간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이기 이전에, 정치인이기 이전에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고인과 유족의 명예가 악의적으로 훼손당하고 침해받고 있기 때문이다. 호두과자 업체의 네티즌 무더기 고소 사건으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왜곡과 비난의 사례들을 살펴 보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하와 왜곡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곳은 다름아닌 방송이다. 관련 꼭지를 내보내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고 희화화하는 의미로 만들어진 합성 사진들이 버젓하게 방송되고 있다. 지난 2013년 8월 20일 SBS 8시 뉴스에서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관련하여 한국이 수입하는 일본 수산물에 대한 위험성 여부를 살펴보는 뉴스가 방송됐다. 그런데 가자미류 방사능 검출량 부분을 다루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한 합성이미지가 사용됐다. 





자세히 보면 화면의 중앙 하단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노알라' 사진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이미지는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과 관련해 일베에 게시된 글을 SBS 8시 뉴스 측이 그대로 차용해 온 것이다. 일베가 의도적으로 합성한 사진을 지상파 방송에서 여과없이 방송한 방송사고였다. 


SBS는 지난 10월16일 방송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일베의 게시물을 또 다시 방송에 내보내 논란을 야기시켰다. 10월16일 SBS의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에서는 '종이로 만든 세상,종이 아트'란 주제로 가위를 이용해서 기발하고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화제가 되고 있는 '신의 손' 송훈 씨편이 방송됐다. 문제는 송훈 씨가 제작한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단오풍정' 작품을 원작과 비교하는 장면에서 발생했다. 방송에서 원작이라고 소개한 그림 속에는 목욕하는 여인을 훔쳐보는 동자승 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합성되어 있었다. 





SBS는 지난 번 후쿠시마산 가자미류 방사능 검출량 방송사고 당시 사고의 원인을 제작 담당자의 부주의에 의한 사고라고 해명했다. 당시 SBS는 사과문을 통해 "제작 담당자의 부주의로 고 노무현 대통령과 유가족, 그리고 관련된 분들께 큰 상처를 드리게 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SBS는 또 다시 같은 사고를 반복함으로써 사과의 의미마저 무색하게 만들었다. SBS가 방송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합성 이미지를 사용한 경우는 이외에도 더 있었다. 한번은 실수, 두번은 실력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세 번, 네 번 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방송사고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MBC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합성 이미지를 여러차례에 걸쳐 방송에 내보내며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 2013년12월 18일 MBC 아침 프로그램 '기분 좋은 날'에서는 '생활 속 희귀암'이라는 주제로 화가 밥 로스와 아이폰 창시자 스티브 잡스 등의 사례를 소개하는 내용의 꼭지를 내보냈다. 그런데 밥 로스의 사진을 사용하면서 그가 등장하는 그림 속에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들어 있었다. 이 역시 일베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의미로 만든 그림을 해당 방송에서 걸러내지 못하고 내보낸 것이었다. 






방송이 나가자 시청자 게시판에 비난이 폭주했다. 특히 누가 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확실한 폴 세잔의 그림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다분히 고의적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민주당의 최민희 의원은 이 사태와 관련해 "밥 로스는 국내에서 유명한 화가고 그의 사망사유를 전하면서도 얼굴을 몰랐다는 점, 문제 사진 크기가 크다는 점 등 실수로 보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며 MBC 측을 비난했다. 사태의 여파는 예상밖으로 커졌다. MBC의 공식적인 사과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비난이 사그라들지 않자 MBC는 해당 프로그램의 책임자를 보직해임하고 외주제작사인 트럼프 미디어를 프로그램에서 퇴출시켜 버렸다.  


MBC의 실수도 한 번으로 그치지는 않았다. 지난 10월 12일 MBC '섹션TV 연예통신'에서는 배우 차승원 아들 차노아의 친부 관련 뉴스를 전하면서 차노아 친부의 이미지를 음영으로 처리해 내보냈다. 방송이 나가자 네티즌들은 해당 이미지의 윤곽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혹에 대해 MBC는 "일반적인 중년 남성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 뿐"이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확인 결과 이 이미지 역시 일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이미지로 밝혀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일은 방송 밖에서도 일어났다. 지난 2013년 5월 19일에는 홈플러스 칠곡점과 구리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이미지가 스마트 TV 시연코너와 노트북 전시코너에서 동시에 노출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칠곡점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과 치킨업체 '또래오래'의 사진을 합성한 사진을 스마트 TV 시연코너에 기재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초 해당 매장을 방문한 초등학생의 소행이라는 매장 직원들의 해명과는 달리 CCTV 확인결과 입점업체 직원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같은날 칠곡점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일이 벌어졌다. 매장에 전시되어 있던 노트북의 화면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코알라를 합성한 '노알라' 사진을 띄워놓고 인증샷을 찍은 것이 문제가 됐다. 경찰수사가 진행되자 겁을 먹고 자수한 사람은 다름아닌 고등학생 신분의 앳띤 학생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일이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하와 모욕은 비단 民(민)뿐만 아니라 官(관)에서도 발생한다. 주류 방송과 언론에서는 이슈화되지 않았지만 지난 10월 말 오마이 뉴스에서는 '청남대에서 발견한 이상한 노무현 대통령 전시물'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화제가 됐다. 


청남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로 1983년 완공된 대통령 전용 별장이었다. 준공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즐겨찾던 휴양지였던 청남대는 2003년 4월18일 충청북도로 이관되어 지금은 국민적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남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대선공약을 지켰기 때문이다. 기사에 따르면 국민에게 개방된 이후 지난 10년 동안 청남대를 방문한 관람객은 총 664만30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하루 평균 2270명 정도가 방문하는 셈이니 청남대가 국민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높은지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청남대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기록을 보여주는 전시물 중 대통령 약력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석연치 않은 점들이 발견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약력을 기록해 놓은 자료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기록들이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빠져 있거나 잘못 기록되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약력을 소개한 글에서 '2009년 5월23일 서거'라고 되어 있어야 할 부분이 '2009년 5월 23일서'로 기록되어 있다. '서거'라고 기록해야 할 것을 '서'라고 잘못 기록한 것이다. 게다가 띄어쓰기도 되어 있지 않았다. 이상한 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약력의 그 어디를 살펴보아도 대통령 당선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약력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는 군 시절부터 대통령 약력에 이르기까지 빠지지 않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시절의 상임위원 약력과 국회의원 시절의 세세한 기록까지 모두 나열되어 있다. 그에 비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약력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자세한 약력은 고사하고 반드시 있어야 할 대통령 당선 기록마저 빠져 있고, 심지어 서거조차 잘못 기록되어 있다. 전시자료의 관련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해야 하는 담당자는 역시나 "실수였다"고 답변했다. 왜 유독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기록들만 잘못되어 있었던 것일까. 상식적으로 전혀 납득이 가질 않는 부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으로부터 도를 넘는 정치적 공세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들은 비가 너무 많이 와도 노무현을 탓했고, 비가 너무 오지 않아도 노무현을 탓했다. 그들에 의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구리가 되기도 했고, 등신이 되기도 했고, 후레아들놈이 되기도 했고, 정신이상자가 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육시럴 놈, 거시기 달 자격도 없는 놈, 개쌍놈이 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갖은 욕설과 비방, 험담과 조롱을 퍼붓던 자들이 이제는 대통령에 대한 모욕적 발언이 도를 넘었다며 공권력을 동원해 언로를 통제하고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 '종북 좌파'라는 낙인을 서스럼없이 찍어 댄다. 국민들로부터 국정 운영에 대해 감시받고 통제받아야 할 사람들이 이제는 권력을 동원해 국민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시작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비루함이 만들어낸 공공의 적이었고, 우리 정치의 비열함이 만들어 낸 희생양이었다. 위에 예로 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하와 조롱은 단지 몇 개의 사례들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곳에서 훨씬 다양한 방법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고 모욕하는 일들이 광범위하게 걸쳐 나타나고 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이보다 가슴 아픈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도를 넘는 비하와 조롱, 인신공격과 모욕주기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평소에 그가 보여주었던 언행들 속에서 어쩌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대통령을 욕함으로써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저 말이 오늘처럼 뼈아프게 귓전을 울리기는 처음인 것 같다. 세상으로부터, 시민들로부터 어떤 비아냥과 조롱을 받아도 그것으로 주권자의 스트레스가 풀릴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며 주권을 시민들에게 돌려준 바보같은 대통령 때문에 나는 오늘 잠을 못 이루고 있다. 


민주주의의 의미를 책으로, 글로 배워온 사람들은 실감하지 못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가 그 옛날 선배들의 숭고한 피와 땀이 녹아있는 희생의 산물이라는 것을. 노무현 전 대통령을 꺼리낌없이 욕하고 비하하고 조롱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른다. 대통령을 마음껏 욕해도 아무렇지 않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권위와 특권에 맞서 외롭게 싸워왔다는 사실을. 


나는 적어도 사람들이 이 정도쯤은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비록 반쪽짜리로 전락했지만) 이 땅의 민주주의를 누리는 수혜자로서, 시민의 권리에 올라탄 무임승차자로서 저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도리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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