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대한민국에 제3의 대안정당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

ⓒ 동아일보

 

"조국 정국 이후 당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고 있다. 이렇게 민주당이 무기력해진 책임의 상당 부분이 이해찬 당대표에게 있다. 이 대표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

얼마 전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화제가 된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국 사태 당시 당 지도부의 안이한 대처를 질타하며 이해찬 대표를 정조준했다.

이 의원의 비판은 "내부 분열로 가면 안 된다는 분위기 때문에 의원들이 공개 발언을 자제하고 있지만, 지도부가 너무 안이하다", "(당이) 노쇠하고 낡았다", "너무 비겁하다", "(조국 사태를) 예방주사로 생각하고 심기일전하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이 올 가능성이 있다" 등 그야말로 거침이 없다.

당 지도부를 향한 이 의원의 일침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사태의 심각성에도 불두하고 당이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정치-사회 개혁을 갈망하는 시민의 요구에 집권당인 민주당이 제대로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의원은 그 중심에 이해찬 대표 등 노쇠한 지도부가 있다고 봤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진단이다. 민주당의 무기력함이 어제 오늘의 일이던가. 냉정히 말하자면 민주당은 집권당이 되기 이전인 야당 시절에도 비슷한 문제로 당 안팎의 비판을 받아왔다. 무기력한 여당이기에 앞서 민주당은 무기력한 야당이었다.

시계를 더불어민주당 창당 이전인 지난 2015년 무렵으로 돌려보자. 민주당의 전신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당시 당내 극심한 분열과 내분에 휩싸여 있었다. 당시 필자가 새정연을 비판했던 칼럼의 내용 중 일부를 옮겨본다.

"정치정당은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대리해주는 도구이다. 따라서 정당은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이념과 정치 철학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지난 60년 동안 민주당은 큰 틀 안에서 이를 놓치지 않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밝혀 왔다. 

그러나 중도층을 겨냥하겠다는 목표 아래 당의 노선을 '우클릭'한 이후 이 정당의 모습은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 시기는 당이 쇠락하기 시작하는 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제 이 정당과 새누리당의 차이는 누가 더 보수적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대동소이하다.

시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변화와 개혁, 정치 혁신을 위한 시대정신은 이 당에서 이제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반'새누리 말고는 내세울게 거의 없는 이 정당이 그들 못지않는 기득권에 대한 집착과 권력에 대한 강한 탐욕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바보가 아닐 바에야 모르는 이가 없다. 현재 혁신안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고 있는 지독한 내홍은 이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웃지 못할 촌극일 뿐이다"

"무색무취의 이 노쇠한 정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만의 색깔을 되찾는 일이다. 잃어버린 야성을 환기하는 일이며, 선명한 철학과 비전을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일이다. 설사 그것이 당의 분당으로 이어진다 해도 말이다. 그런데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심하다고밖에는 달리할 말이 없다.

자신이 맹수라는 사실을 잃어버린 호랑이는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해야 할 급선무는 형식적이고 허울뿐인 '봉합'과 '단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고 뚜렷한 색채를 가진 정당, 노동자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강력한 야당, 즉 과거의 민주당으로 복귀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어떤가.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날의 민주당과 비교해봐도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지 않은가. 불출마를 선언한 이 의원의 작심 비판과도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대한민국 정치의 비극은 사실상 양당제로 운영되는 정치지형이 수 십년 째 이어지고 있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유권자의 선택지는 지극히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시중에 유 통되는 제품을 떠올려보라. 한 두 기업이 물건을 독점하다시피 하면 시장에 이런 저런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상품 개발에 소홀해지고 이는 제품의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심지어는 담합도 가능해진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양당제는 망국적인 지역주의와 결합해 우리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엄청난 악영향을 초래하고 있다. 한국당과 민주당 두 거대정당이 정당개혁과 정치개혁의 당위를 망각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의 폭주와 실정을 뼈저리게 경험하고도,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어도 대한민국 정치는 여전히 이전투구 난장판이다. 대통령 탄핵과 국정농단의 원죄가 있는 한국당은 여전히 제1야당의 지위를 누리며 국정을 쥐락펴락하고 있고, (이 의원의 지적처럼) 민주당은 시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며 실망과 아쉬움을 안겨주고 있다.

역사적인 촛불혁명을 거치고도 정치가 이 모양 이 꼴이 돼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생물의 진화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몇몇 생물들은 진화를 거부한 채 수억년이 넘도록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살아간다. 굳이 진화할 필요가 없는 우월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자신들이 우월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정당이며, 민주당은 그렇다는 착각에 빠져있는 정당이다. 두 거대 정당이 이같은 믿음과 착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정치의 근본적-혁신적 변화를 기대하기는 난망이다.

선거는 일종의 구매행위나 다름 없다. 쉽게 말해 이 물건 써보고 마음에 안 든다 싶으면 다른 물건으로 바꿔보는 게 선거다. 그러나 문제는 언급한 바와 같이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선택지가 지극히 협소하다는 데 있다. 유권자들은 불행(?)히도 한국당 아니면 민주당 둘 중 하나를 골라써야 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온지 햇수로 무려 70년이다. 과연 그동안 무엇이 달라졌나. 사회의 거악인 한국당은 보편적 상식을 거스르며 정치의 저급-저렴화를 부추기고 있고, 민주당은 시민사회의 기대에 반하는 희망고문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제는 새로운 선택지를 한번 고려해 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이는 두 거대 보수 정당의 변화와 각성을 이끌어 내는 측면에서도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이 될 터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원내 1당과 2당을 차지할 수 있다면 저들이 굳이 유권자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할 까닭이 전혀 없지 않은가.

문제 있는 상품, 만족스럽지 못한 제품을 계속해서 구매하는 건 지극히 무의미한 일이다. 아니다 싶으면 주저없이 바꿔야 한다.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이 정치 개혁의 밑거름이자 첩경이다. 당신이 기득권 양당제의 폐해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