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대통령 기자회견의 진수를 보여준 문재인 대통령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의 형식과 내용이 달라졌다는 것은 이미 1년 전인 2018년 1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대통령이 질문할 기자를 직접 지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당시 기자회견은 문재인 정부가 과거 권위주의 정부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은 잘 짜여진 상황극이었음이 드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질문권을 얻으려는 치열한 경쟁으로 기자회견장은 연신 들썩였고, 다양한 주제와 현안을 두고 질문과 답변이 자유롭게 오고 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애나 파이필드 도쿄 지국장은 트위터에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이렇게 길게 이어지다니 굉장하다"면서 "이전 정부와 달리 미리 정해진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 이는 백악관과도 다르다"라고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2019년 1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두 번째 신년기자회견이 열렸다. 청와대가 지난 6일 공지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역시 질문자와 질문이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사회자 없는 타운홀 방식(주제에 관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토론 형식)으로 진행됐다는 것. 청와대는 기자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문 대통령이 직접 진행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이 사회를 맡았다. 

달라진 것은 또 있다. 지난해에 비해 분위기가 조금 더 차분하고 엄숙해졌다. 최저임금인상과 소득주도성장 논란, 실업률 증가와 고용한파 등 각종 경제지표의 악화로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40%대로 떨어진데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의혹과 적자 국채 발행 외압 의혹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청와대는 안팎으로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문 대통령의 두 번째 신년기자회견은 이런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이날 기자회견은 기자회견문 낭독28분, 질의응답 89분 등 120여분에 걸쳐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에서 약 30분 동안 기자회견문을 발표한 뒤 영빈관으로 이동해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외교안보·경제·정치사회 등 세 분야에 걸쳐 이뤄진 질의응답은 당면한 상황을 반영하듯 아주 진지하게 진행됐다. 

첫번째 질의자로 나선 <연합뉴스> 기자의 "지난 20개월 동안 가장 큰 성과와 아쉬운 점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문 대통령은 "촛불민심을 현실 정치 속에서 구현해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면서 "그 부분에서는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이어 "가장 힘들었고 아쉬운 점은 뭐니뭐니 해도 고용지표의 부진"이라며 "앞으로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후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다양한 질의에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과 구상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중국을 방문한 것에 대해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라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중국의 역할을 기대했다. 김 위원장의 답방과 관련해서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먼저 이루어지고 나면 그 이후에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수진영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선언 이후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관련해서도 문 대통령은 "김정은은 비핵화 문제와 그 다음에 특히 종전선언, 이 문제와 주한미군의 지휘 이런 것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며 "주한미군은 비핵화의 프로세스에 따라서 연동돼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주한미군 주둔은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과는 상관없는 한미 양국 사이의 현안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경제 현안 분야로 질의가 넘어가면서 기자회견장은 더욱 뜨거워졌다.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논란을 의식한 듯 문 대통령은 보다 신중하게 질의에 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고용지표가 나쁜 부분은 우리로서도 아픈 부분이다"라며 "고용이 나쁘니 정부가 할 말이 없게 됐다"고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가계소득이 늘고 고용보험 가입자가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일자리가 기대만큼 늘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들이 체감하는 그런 고용은 여전히 어렵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반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탄력근로제 확대 등에 대해 노동계가 "노동정책 후퇴, 노동존중 사회 공약의 후퇴"라고 비판하고 있다고 하자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노동자들의 우선 임금을 올리고 또 노동직을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도록 하는 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 전에 비해서 역대 어느 정부보다 정말 최선의 노력을 펴고 있다는 점은 노동계가 인정해 줘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또 다른 경제 부분에 비춰서 우리 경제가 어려워진다면 종국에는 노동자들조차도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게 된다든지 다시 또 그것이 노동자들의 고통으로 겪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노동 조건의 향상을 얼마나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 그것이 우리 경제나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것하고 종합적으로 살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노동계 역시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당돌하고 공격적인 질문도 튀어나왔다. <경기방송>의 기자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현실경제는 굉장히 얼어붙어 있다. 국민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희망을 버린 건 아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굉장하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현 기조를 바꾸지 않고 변화를 갖지 않으려 한다.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질의했다. 경제정책 기조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도가 깔려있는 질문이었다. 

거칠고 직설적인 질문에 심기가 불편해질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문 대통령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의 정책기조가 왜 필요한지 우리 사회의 양극화, 불평등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라는 점은 오늘 제가 모두 기자회견문 30분 내내 말씀드렸다"며 "그에 대해서 필요한 보완들은 얼마든지 해야 하겠지만 오히려 정책기조는 계속 유지될 필요가 있다라는 말씀은 이미 충분히 드렸기 때문에 또 새로운 답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을 수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 오마이뉴스


청와대를 겨냥한 민감한 질문도 있었다. <조선일보> 기자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김태우·신재민 의혹'과 관련해, "과거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이었다면 아마 가장 먼저 그분들에게 달려가서 국가 권력으로부터 잘못된 외압을 받는다거나 인권이 침해됐을 경우에 대비해서 아마 변호인을 구성했을 거라 확신한다"며 "그런데 정부의 태도를 보면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을 한다거나 의도가 불순하다거나 이런 식으로 매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두 사람에 대해 평가를 해달라"고 말해 장내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껄끄러운 질문이었음에도 문 대통령은 침착하게 답을 이어갔다. 문 대통령은 먼저 "특감반은 민간인을 사찰하는 것이 의무가 아니다"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특감반의 임무는 대통령과 대통령 주변의 특수관계자, 고위 관계자의 권력형 비리를 감시하는 것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김태우 행정관의 경우와 관련해선 "자신이 한 행위를 놓고 시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그러면서 "김태우 행정관이 한 감찰 행위, 그것이 직권의 범위를 넘어간 것이냐 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 부분은 지금 이미 수사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가려지리라 믿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은 신재민 전 사무관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김동연 전 부총리가 아주 적절하게 그 부분에 대해서 잘 해명을 했다"면서 "(정책의) 결정 권한이 사무관에 있다거나 사무관이 속한 국에 있는데 상부에서 다른 결정을 강요하는 거라면 압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정 권한이 장관에게 있는 것이고 장관이 바른 결정을 위해서 실무자들이 의견을 올리는 것이라면 그 장관의 결정이 본인의 소신있는 결정하고 판단이 달랐다 그래서 그것이 무슨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젊은 공직자가 자신의 판단에 대해서 소신을 가지고 자부심을 가지고 그런 것은 대단히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이다"라면서도 "그러나 정책 결정은 그보다는 훨씬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정책을 조율하고 조정하는 과정 속에 표출된 이견을 신 전 사무관이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지적이다. 

신 전 사무관에 대한 염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문제를 너무 비장하게 너무 무거운 일로 생각하지 말아 달라"며 "전체를 놓고 판단한다면 또 본인의 소신은 소신이고 그 다음에 그 소신을 밝히는 것도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다른 기회를 통해서 밝힐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 다시는 그런 주변을 걱정시키는 또 국민들을 걱정시키는 그런 선택을 하지 말기를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이번 신년기자회견은 여러 면에서 큰 화제를 낳았다. 질문지 없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질의응답이 이어졌고, 그로 인해 민감하고 저돌적인 질문이 나오는 등 회견 내내 긴장감이 흘러넘쳤다. 특히 올해는 별도의 사회자 없이 문 대통령이 직접 진행함으로써 대통령 기자회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역대 최장 시간(89분), 최다 질문(24개) 등의 기록들 역시 이번 기자회견이 남긴 '덤'이라 할 만하다. 

한편,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야당의 평가는 '역시나' 인색했다. 기자회견 직후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실망스럽다. 지금의 대한민국 비상 상황에서 허심탄회한 반성과 대안을 기대 했는데, 결국은 스스로 칭찬하는 공적조서만 내놓은 것"이라 혹평했고, 김삼화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은 반성문으로 시작해야 했다"며 "낙하산, 인사 파행, 채용비리 의혹 등 불공정에 대한 자기반성은 전혀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보수야당의 박한 평가는 질문의 순서와 질의 내용이 미리 정해져있던 박 전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떠올려보면 납득하기가 어렵다. 지금도 회자되는 박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손발이 오그라드는 낯뜨거운 연출극이었다. 기자들은 사전에 입수(?)한 각본에 따라 짜맞춘듯 정연하게 질문을 했고, 답을 미리 알고 있던 박 전 대통령은 맞춤 대답으로 이날의 촌극에 정점을 찍었다. 

2015년 1월 12일 신년기자회견 직후 당시 새누리당(현 한국당+바른미래당 내 탈당파) 박대출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전국단위 선거가 없는 올해 쇄신과 혁신의 호기라는 진단아래 신 대한민으로 가기 위한 실천적 청사진을 제시했다"고 극찬했다. 세간으로부터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냉소를 받았던 박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박비어천가'를 쏟아내던 그들이 예측불허의 질문과 그에 대한 유연한 대응이 돋보였던 이날의 기자회견은 마구 깎아내리고 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그래서 어안이 벙벙해지는 황당함의 극치다. 그러나 각본대로 읽고 말하는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소신을 (그것도 '번역기'를 돌릴 필요도 없이) 피력하는 대통령의 그것이 본질적으로 같을 수는 없는 일일 터다.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요, '비교불가'가 아닌가. 

물론 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정치와 경제, 남북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정국 구상이 보다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각계각층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그리고 문 대통령 자신이 직시하고 있듯이 이 정권의 성패가 전적으로 그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겸손함과 담대함, 분명한 목표의식과 의지를 가지고 국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개혁을 열망하는 시민의 힘을 믿고 뚜벅뚜벅 미래를 향해 담대히 걸어 나가야 한다. 실망한 이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건, 오롯이 이 정부의 '몫'이다.



♡♡ 바람 언덕이 1인 미디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세요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