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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은 윤석열을 해임하라

ⓒ 경향신문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이명박 정부 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가장 잘 보장됐다"는 취지로 답변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대검찰청이 18일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전날 대검 국감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윤 총장에게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중 어느 정부가 그나마 중립적입니까?"라고 질의했다. 논란은 이 질문에 대해 윤 총장이 답변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윤 총장이 "제가 직급은 달랐지만 하여튼 제 경험으로만 하면 이명박 정부 때 중수부 과장으로, 특수부장으로 3년간 특별수사를 했는데, 대통령 측근과 형 이런 분들을 구속할 때 별 관여가 없었던 것으로 쿨하게 처리했던 기억이 나고요. 박근혜 정부 때는 다 아시는 거고 그렇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문제는 윤 총장의 답변이 이명박 정부 때 검찰 중립성이 가장 잘 보장됐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실제 관련 내용이 알려지자 SNS를 중심으로 윤 총장을 향해 각계각층의 비난이 거세게 분출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검찰의 활약상(?)을 익히 알고 있는 시민들의 항의가 봇물터지듯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대검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이날 입장문을 통해 "검찰총장은 과거 본인이 검사로서 직접 처리한 사건을 예로 들며,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검찰 수사 과정의 경험 및 소회를 답변하려 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현 정부에서는 과거와 달리 법무부에 처리 예정보고를 하지 않고, 청와대에서 검찰의 구체적 사건 처리에 관해 일체 지시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하려 했으나, 해당 의원이 답변 도중 다른 질의를 이어감에 따라 답변이 중단됐다"고 덧붙였다. 발언의 진의가 왜곡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설령 대검의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이명박 정부 당시 검찰의 중립성이 보장됐다는 윤 총장의 인식에 공감할 이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명박 정부 당시 검찰은 정권의 충실한 '개'였다.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정치탄압수사를 시작으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 대한 전기통신기본법위반 수사, 정연주 전 KBS 사장에 대한 배임혐의 수사, PD수첩 명예훼손 수사, 김상곤 경기교육감 직무유기 수사, 최열 환경재단 대표 횡령혐의 수사, 사회주의 노동자연합 국가보안법 수사, 전교조 교사 정당가입 수사 등에서 정권 편향적인 수사를 자행해 왔다.

 

끼워 맞추기 수사, 표적수사, 망신주기 수사, 피의사실공표 등 검찰의 악랄한 행태는 한명숙 전 총리 수사와 조국 법무부 장관 수사 등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반면 이명박 검찰은 정권의 부담이 되는 정권비리와 부정부패 사건, 측근비리 사건 등에 대해서는 그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봐주기 수사, 축소 수사, 전관예우, 제식구 감싸기 등의 이중적인 행태로 여론의 지탄을 받았던 것이다.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 천신일 회장 대우조선해양 관련 수사, 한상률 국세청장 그림로비 수사, 효성그룹 비자금 수사, 그랜저 검사 수사, 스폰서 검사 수사, 박희태 국회의장 돈봉투 사건 수사,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수사,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수사, 이상득 의원 정치비자금 수사, BBK 편지 의혹 수사,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의혹 수사 등 정권의 주구(走狗)였던 당시 검찰의 악행은 일일히 열거하기가 벅찰 지경이다.

그런데도 윤 총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검찰 중립이 잘 지켜졌다며, '쿨'했다고 소회하고 있다. 윤 총장의 기억하는 검찰은 도대체 어느 나라, 어느 정부의 검찰을 말하는 건가.  소가 웃을 얼토당토 않은 말에 그저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윤 총장이 기억하는 이명박 정부 검찰과 시민이 기억하는 그것 사이에는 지구와 안드로메다의 거리만큼이나 깊고 깊은 간극이 놓여있다. 윤 총장이 생각하는 검찰 중립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 극명한 괴리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나.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여러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제대로 감당해 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의심어린 눈길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이후 이 의구심은 언론, 한국당, 검찰의 환상적인 콜라보에 의해 가공·윤색되고,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됐다.

윤 총장 역시 마찬가지다. 윤 총장은 현재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에 대한 먼지털이식 수사로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정부 검찰을 높이 평가하는 윤 총장의 인식과 태도는 '윤석열 체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기고백이나 다름이 없다.


이런 윤 총장이 과연 검찰개혁의 시대적, 시민적 요구에 제대로 부응할 수 있을까. 역대 최악의 정치 검찰이라 평가받는 이명박 정부 검찰이 중립적이었다는 윤 총장의 아찔한 고백 속에서 어쩌면 그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윤 총장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희대의 명언을 남겼다. 그러나 (필자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간과했던 것처럼) 그에 앞서 "조직을 대단히 사랑한다"고도 했다. 이 둘의 교집합이 바로 대한민국을 휘몰아치는 검란 사태의 본질이다.

행정부에 딸린 외청기관인 검찰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권을 휴지조각으로 만들며 조직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다. 머뭇거릴 이유도, 시간도 없다. 청와대와 여당은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노무현과 문재인의 오랜 염원이, 시민의 간절한 열망이 하룻밤의 꿈처럼 사라지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