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5월, 그리고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입니다. 사실은 수구언론이 창궐하는 이유에 대한 칼럼을 준비 중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오늘이 노 전 대통령 서거일이더군요. 작년 <오마이뉴스>의 청탁을 받고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조망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봐도 그 의미는 퇴색되지 않는 듯 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 분의 털털하고 구수한 목소리가 그리워지는 시간입니다.
전국이 노란빛으로 물들고 있다. 다시 5월이다. 노무현재단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5월 한 달간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비롯해 서울·부산·대전·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개최된다고 한다.
10주기 추모행사의 주제는 '새로운 노무현'이다. 주최 측의 고민이 행간에 묻어난다. 추모와 애도를 넘어 미완으로 남아있는 노 전 대통령의 꿈을 현실로 끌어내기 위한 의지가 읽힌다. 더디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또 하나의 여정이다.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를 기억하는(기억하려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추모행사가 열리는 곳에서는 머리 희끗한 반백의 노인, 말끔히 차려입은 회사원, 교복 입은 학생, 엄마 아빠 손을 부여잡은 아이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짐작컨대, 노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가치와 정신, 철학을 계승해 그가 못 다 이룬 꿈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가 없다는 사실은 여전히 아쉽고 쓸쓸하지만 그 빈자리를 이렇듯 시민들이 채워나간다.
햇빛, 물, 공기, 바람, 나무, 꽃, 건강, 친구, 가족...... 너무 흔하고 평범해서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본래 진정한 가치는 곁에 없을 때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삶이 넌지시 일러주는 부재의 '역설'이다. 해가 갈수록 인간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을 향한 추모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한편으론 그래서 더 씁쓸하고 애잔하다. 생전에 알아봤더라면, 조금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하는 회한이, 함께 하지 못하고 지켜주지 못한 안타까움이 사람들의 가슴 한 편에 묵직한 돌멩이를 남기고 있는 것일 테다.
노 전 대통령만큼 조롱과 멸시, 경멸을 한 몸에 받았던 정치인은 없었다. 그는 한미 FTA, 이라크 파병,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과의 대연정 제안 등으로 진보진영의 외면을 받았고, 보수진영은 처음부터 아예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모욕과 망신주기로 노 전 대통령을 끊임없이 공격했다. 재임 기간 일어난 정치·사회적 문제의 처음과 끝에 언제나 노 전 대통령이 있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노 전 대통령의 책임으로 몰아갔다. 이래도 저래도 모두 '노무현'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시 세간에는 "비가 와도 '노무현 탓', 비가 안 와도 '노무현 탓'"이라는 말이 돌기까지 했다. 문제는 노 전 대통령을 향한 공격이 사실 관계의 왜곡이거나 정치적 의도가 있는 악의적 폄훼가 대부분이었다는 것.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조롱과 멸시가 어느 정도였는지 한번 살펴보자.
참여정부 출범 4개월만인 2003년 6월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던 이상배 의원은 일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노 전 대통령을 향해 "이번 방일 외교는 한국 외교사의 치욕으로 기록될 것이고, '등신외교'의 표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발언해 논란에 휩싸였다.
이 의원은 "노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 준비 부족과 국빈방문 등에 집착해 국민 자존심에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야당 입장에서 정치적 수사로 이런 표현을 썼다"라고 해명했지만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 의원의 발언은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도 비판할 정도로 도가 지나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임기 초 불거진 막말 파문은 단지 서막에 불과했다. "생긴 게 개구리와 똑같다"(박주천 한나라당 의원), "뇌에 문제가 있다"(공성진 한나라당 의원), "'노무현이'를 대통령으로 인정 할 수 없다"(김무성 한나라당 의원), "그놈의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참 쪽팔리다"(심재철 한나라당 의원) 등 당시 한나라당은 예우는커녕 사사건건 노 전 대통령을 면박주기 일쑤였다.
보수진영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면서 노 전 대통령을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 불렀다. 그들은 멀쩡하던 대한민국 경제를 노 전 대통령이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고, 서민경제가 파탄이 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각종 경제지표를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경포대'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 참여정부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4.5%를 기록했다. 반면 '747 공약'을 앞세웠던 이명박 정부는 3.2%였다. 박근혜 정부는 심지어 3%에도 못 미치는 2.9%다.
청년실업률 지표도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참여정부 5년간 연평균 청년실업률은 7.9%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7.7%)보다는 높고 박근혜 정부(9%)보다는 낮은 수치다.
가계부채증가율 역시 마찬가지다. 참여정부는 연평균 7.5%의 증가율을 보이며 이명박 정부(7.7%)는 물론 박근혜 정부(8.7%)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의 정부 마지막 해인 2002년 1만 2100달러였던 1인당 국민총소득이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2만 1695달러로 높아졌고, 2002년 1234억 달러이던 외환보유액 역시 2007년 2620억 달러로 대폭 증가됐다.
중산층 붕괴로 인한 양극화 현상과 유동성 관리 실패에 따른 부동산 가격 폭등 등으로 서민경제가 어려워진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보수진영의 주장처럼 경제가 파탄난 것은 아니었다. 각종 경제 지표들이 이를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되묻고 싶다. 노 전 대통령이 '경포대'라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뭐라 불러야 하나.
아직도 회자되는 '환생경제'를 통해서는 대놓고 쌍욕을 퍼붓기도 했다. 2004년 한나라당 국회의원 10여 명이 출연한 '환생경제'라는 연극에서 그들은 노 전 대통령을 '노가리'라 부르는가 하면, '육xx놈', '죽일 놈' 등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비속어를 섞어가며 조롱을 퍼부었다.
한나라당은 '환생경제'를 통해 경제 정책, 수도이전, 과거사 진상조사, 남북 화해 등 참여정부의 국가정책을 풍자하겠다고 밝혔지만, 노 전 대통령을 향한 무차별적인 인신공격과 성적 비하, 독설과 저주를 쏟아내며 커다란 파장을 낳았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거처가 될 봉하마을 사저를 '아방궁'에 비유하며 공격하기도 했다. 보수진영은 소탈하고 검소한 이미지를 갖고있던 노 전 대통령이 막대한 국민혈세를 투입해 초호화 사저를 지으려 한다며 전방위적으로 공세를 펼쳤다.
당시 보수언론들은 봉하 사저를 '노방궁', '노무현 타운', '노무현 캐슬' 등으로 표현했고, 한나라당 대변인이었던 나경원 의원은 "퇴임 후 성주로 살겠다는 것인가"라고 비꼬기도 했다.
2008년 국정감사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전직 대통령 살고 계신 현황을 보시라. 지금 노무현 대통령처럼 아방궁 지어놓고 사는 사람 없다"라며 노 전 대통령이 혈세를 낭비해가며 호화롭게 살고 있다고 몰아갔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봉하 사저는 '아방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중론이다. 당장 건축비용만 보더라도 당시 보수진영의 주장이 얼마나 악의적으로 날조된 것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2006년 12월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봉하 사저는 대지 1297평, 지상 1층 지하 1층에 연건평 137평, 부지매입비 1억 9455만 원, 설계비 6500만 원, 공사비 9억 5000만 원 등 총 12억 여 원이 투입됐다. 경호시설 부지매입 비용은 약 2억 6000만 원 가량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어떨까. 2011년 MB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후 지낼 사저 및 경호시설용 부지로 788평의 땅을 54억 원을 주고 매입했다. 이 중 경호시설 부지 면적 648평, 매입가격 42억 8000만 원을 국고로 부담했다. 단순 비교해도 봉하와의 차이가 무려 16배가 넘는다. 궁금하다. 노 전 대통령의 봉하 사저가 '아방궁'이면 이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는 도대체 어떻게 불러야 하나.
"지금도 용서가 안 된다. 지금도 그 사람들이 묘역에 참배까지 하러 오면서 지금까지도 그것에 대해서는 사과 한 마디가 없다. 그때 봉화산 숲 가꾸기 예산, 화포천 생태하천 복원 예산, 이런 것들을 다 합쳐서 액수를 때려 맞춰서 얼마짜리 아방궁이라고 덤터기를 씌웠다. 퇴임한 대통령을 가지고 이 집을 아방궁이라고 비난하면서 온 보수 언론에 도배를 했다. 정말로 야비한 짓이었다."
당시 보수진영의 공격이 얼마나 집요하고 비열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소회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봉하 사저 서재에서 녹화된 '유시민의 알릴레오' 19화에서 유 이사장은 특별 진행자로 나선 강원국 작가의 '전혀 아방궁 같이 안 보인다'는 지적에 "지금 그 당 원내대표 하는 분도 그런 소리를 했다"며 저렇게 일갈했다.
당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행태가 대개 이랬다. 그들은 노 전 대통령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조롱과 멸시, 면박과 망신주기로 인격과 자존감을 끊임없이 도발하고 훼손했다. 그 무렵 세간에 "노무현 탓 놀이"가 유행했던 것도 그와 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터다.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조롱은 서거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있다. 극우 커뮤니티 사이트인 '일베'를 중심으로 노 전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하하는 글과 이미지 등이 대량 유포·확산되는가 하면, 대학교 강의에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합성사진이 강의자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 대학교수는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시험문제를 출제해 학생들의 원성을 샀고, 한 일베 회원은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에 노 전 대통령의 얼굴에 코알라를 합성한 사진을 광고로 게시해 논란이 일었다.
어디 이뿐인가. 지상파 방송에서 '일베' 이미지가 공공연히 사용되고, 최근에는 노 전 대통령을 노비와 합성한 사진이 교학사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수험서에 실리기까지 하는 등 조롱과 멸시가 계속되고 있다. 정파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사람의 인격을 이렇게 잔인하게 짓밟아도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을 왜곡해가며 조롱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현재진행형이다. '호불호'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참여정부 당시 추진했던 정책이 실패로 끝난 경우도 있었고, 가식없는 직설적 화법이 비판을 받기도 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도 이 부분을 많이 아쉬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원칙과 소신으로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부르짖던 그,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온몸을 던졌던 그, 기득권과 권위주의에 단호히 저항했던 그가 남긴 유산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재임하는 동안 이 땅의 민주주의가 한층 성장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대통령을 욕함으로써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한 강연에서 했던 발언이다. 그는 이런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을 욕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던 건 과연 누구였던가. 주권자인 시민이었을까.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노무현'의 재탄생을 기대한다. 그것이 이 땅의 민주주의와 시민권 확장을 위해 온몸으로 싸워왔던 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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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향한 작은 외침..'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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