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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권영진 자유한국당 후보는 왜 테러를 당해야 했나

6·13 지방선거 유세 첫날이었던 5월 31일 대구시장에 출마한 권영진 자유한국당 후보가 출정식 도중 장애인단체 회원으로 보이는 한 여성에 의해 밀려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최근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와 원희룡 제주지사 후보(무소속) 등 정치인에 대한 폭행이 잇따르면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갑론을박'이 아주 뜨겁습니다. 

권 후보는 이날 오후 12시 30분 대구 중구 반월당 동아홈쇼핑 앞에서 출정식을 가졌습니다. 이날 출정식은 시작부터 잡음이 있었습니다. 420장애인차별철폐 대구투쟁연대(420장애인연대) 회원 수십명이 권 후보에게 장애인 복지 공공시스템 구축 강화와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환경 조성 등을 위한 장애인 권리 신장 협약 체결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에 권 후보는 서둘러 출정식을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사고는 출정식을 마친 권 후보가 단상에서 내려와 이동하던 중 발생했습니다. 한 중년 여성이 권 후보의 앞을 손으로 가로막는 과정에서 권 후보가 뒤로 넘어진 것입니다. 현장은 이내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사고 직후 병원으로 옮겨진 권 후보는 허리와 꼬리뼈 등에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오마이뉴스


권 후보 캠프는 이번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권 후보 측은 성명서를 내고 "권 후보를 반대하는 진보 성향 장애인단체 회원으로 보이는 신원 불상의 사람들이 후보자를 밀어 넘어뜨리는 바람에 후보자가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며 "후보자 폭행은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다. 폭행 용의자가 누구인지, 배후에 어떤 선거 방해 세력이 있는지 철저하게 조사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반면 장애인단체 측은 말도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420장애인연대는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장애인과 장애인 부모들 요구를 외면한 채 이동하는 권 후보에게 장애인 부모인 한 여성이 권 후보 앞에서 한쪽 팔로 배 쪽을 막아서는 과정에서 권 후보가 뒤로 넘어졌다"며 "상대적으로 건장한 남성인 권 후보가 넘어지고 이를 폭행 또는 테러로 규정하는 부분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후보자에 대한 명백한 테러다", "폭행이나 테러가 아니다". 양측의 주장이 이처럼 서로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온라인 상에서도 논쟁이 뜨겁습니다. 배후가 있다는 주장에서부터 자작극의 냄새가 난다는 얘기까지 다양합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요. 다행히(?) 당시의 상황이 찍혀있는 영상이 존재합니다. 문제의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 시비를 가리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과 관련해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그날 420장애인연대가 권 후보의 출정식에 나타나 장애인 권리 신장 협약 체결을 요구한 배경입니다. 출정식은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재선에 도전하는 권 후보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날 권 후보는 출정식 행사를 황급히 끝내야 했습니다. 협약 체결을 요구하는 420장애인연대 때문에 원활하게 행사 진행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할 수도 있는 협약 체결 요구를 왜 하필 남의 집 잔치상에까지 찾아와 해야만 했던 것일까요. 420장애인연대의 활동 사례를 찾아보고 관련 기사들을 검색해 봤습니다. 지난 4년 동안 대구의 시정을 책임졌던 권 후보의 장애인 관련 대책과 공약 등도 함께 살펴봤습니다. 이것들을 토대로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날 출정식에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말입니다. 

420장애인연대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시장에 출마하는 후보들과 5개 주제 32개 세부 정책 등이 담겨있는 장애인 권리보장 정책협약을 맺고 있습니다. 장애인복지 공공시스템 강화,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환경 구축, 탈시설·자립지원 체계 강화, 지역사회 생활 안정화, 장애친화적 지역사회 조성 등 장애인의 실질적인 권리보장을 위해 대구시장 후보들과 정책간담회를 열고 협약식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까지 임대윤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장애인 권리보장 정책협약을 맺은 상태이며 권 후보와 김형기 바른미래당 후보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와 관련 420장애인연대 측은 권 후보 측이 5월 30일 협약식을 체결하기로 했던 약속을 갑자기 취소해 이날 출정식을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해용 권 후보 캠프 상황실장은 "단체에서 요구하는 안에 무리한 부분이 있어서 어제 저녁에 후보가 다시 협의하라고 지시했다"며 "어제(30일)까지 수정협의안을 협의하는 중이었지 협의안이 마련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습니다. 

주장이 서로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장애인 권리보장 정책협약과 관련해 권 후보 측과 420장애인연대 측이 갈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4년 전에도 지금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2014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5월 27일 420장애인연대는 권영진 당시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에게 장애인 권리보장 공약 수용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했습니다. 당시 420장애인연대는 대구시장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에게 장애인 권리 보장 관련 정책협약을 제안했고, 김부겸(새정치민주연합)·송영우(통합진보당)·이원준(정의당) 후보 등으로부터 수용 입장을 받아냈습니다. 

420장애인연대는 대구시장 후보들에게  장애인 이동권, 탈시설·자립전환, 발달장애인 지원대책, 활동보조 24시간 보장 등 11개 주제 40대 세부정책을 요구하며 정책간담회 등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후보들이 정책협약을 수용한 반면 권 후보는 그때까지 거부 입장이었습니다. 천막농성이 계속 이어지자 권 후보는 결국 30일 오후 420장애인연대의 요구안을 수용하며 정책협약을 맺었습니다. 당시 권 후보는 "그동안 캠프와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여러분을 속상하게 했다"고 사과하며 당선되면 장애인들의 권리보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 오마이뉴스


지난 5월 10일 420장애인연대는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들은 지난 4년 동안 장애인 권리보장 정책협약 중 불과 22%만 이행됐다며 권 후보를 비판했습니다. 420장애인연대가 협약사항 50개의 이행 상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권 후보가 시장으로 재임하던 지난 4년 동안 특별교통수단 도입 등 11개 정책이 이행된 반면, 활동보조서비스 예산 확대, 발달장애인 지역사회 정착 지원 등 24개 가량의 정책이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미이행된 정책 중에는 탈시설·자립지원 체계 강화와 관련된 내용도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420장애인연대는 대구시립희망원 사태의 문제 해결을 위해 대구시가 별도의 예산을 편성했음에도 2018년 관련 예산이 '0원'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꼬집었습니다. 앞서 대구시는 지난해 3월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 사건과 관련해 장애인의 탈시설을 위해 2018년 48억 원, 2019년 84억 원, 2020년 이후 106억 원의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혁신대책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종합해 보면 이렇습니다. 420장애인연대는 장애인 권리보장 정책협약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는 권 후보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이날 출정식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권 후보에게 무릎을 꿇고 정책협약을 맺어줄 것을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장애인들이 직면해있는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한 것입니다. 지난 4년 동안 공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또다시 권 후보에게 간곡히 읍소했습니다. 그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가혹하고 끔찍한 '형벌'이나 다름 없습니다. 사회적 편견과 불평등은 말할 것도 없고 시스템과 복지 체계 역시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단지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은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차별과 고통 속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는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들의 유일한 소원은 자녀들보다 하루만 더 오래 사는 것이라 합니다. 홀로 남겨질 자녀들에게 어떤 시련이 닥칠지 부모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 후보를 막아선 이 여성의 심정이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그는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입니다. 삶의 절박함이, 그리고 간절함이 그로 하여금 권 후보 앞을 막아서게 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목이 터지도록 절규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좀 알아달라고 외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람과는 다르게 사건은 엉뚱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그는 권 시장을 폭행한 테러범으로 지목받고 있습니다. 

권 후보 측은 이번 사건을 명백한 테러라고 규정했습니다. 이 여성의 행동이 테러인지 아닌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비쳐질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펼쳐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권 후보 테러 논란에는 보다 중요한 함의가 녹아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육신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420장애인연대가, 그리고 이 여성이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부디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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