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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민불신 증폭시키는 청와대의 비밀주의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청와대는 경호상의 이유로 사고 당일의 대통령의 행적을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경호상의 이유란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의 표현을 빌자면 '국가안보'와 관련된 문제라는 뜻이다. 김기춘 비서실장 역시 지난 달 28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같은 입장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이날 박 대통령이 줄곧 경내에 머물러 있었고, 청와대는 제한된 구역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어디에 머물고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국가안보와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경호는 설명이 따로 필요없을 만큼 중차대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따라서 대통령에 대한 경호는 한치의 빈틈도 없이 철통보안 속에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런데 대통령에 대한 경호는 국가안보의 일부일 뿐 그 자체가 전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국가안보는 국가를 이루는 국토, 국민, 주권이 포괄적으로 적용되야 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당일 행적이 국가안보의 문제라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 역시 국가안보의 문제다. 청와대의 일관된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 한가지는 저들은 대통령의 행적을 보호하는 일을 삼백명이 넘는 국민들의 목숨을 잃게 만든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지 못한 사람들이 대통령의 안위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활을 건다. 이 극명한 이율배반은 대통령의 행복이자 곧 국민의 불행이다. 





지난 달 끝난 국정감사에서 단연 화제가 됐던 인물는 뜻밖에도 윤전추 청와대 3급 행정관이었다. 유명한 헬스 트레이너였던 윤전추 씨가 청와대 3급 행정관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에 알려진 것은 지난 8월 경이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의 뜨거운 관심이 집중됐다. 사람들은 윤전추 씨가 역대 최연소 3급 공무원에 채용된 경위와 담당업무, 이력 등에서 의문점을 제기하며 그녀가 박 대통령의 개인 트레이너로 고용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녀의 이력(헬스 트레이너)이 청와대 내에서의 담당업무(소외계층 민원담당)와 전혀 상충하지 않는데다, 34살의 나이로 3급 공무원에 오른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의혹에 대해 청와대는 윤전추 행정관이 박 대통령의 트레이너가 아니라는 입장만 내놓았을 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윤전추 행정관이 다시 여론의 뜨거운 감자로 부각된 것은 국정감사를 통해 청와대가 1억원 상당의 운동기구를 구입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사실은 윤전추 행정관의 담당업무가 세간의 의혹대로 박 대통령의 개인 트레이너라는 주장을 재점화시켰다. 지난달 28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최민희 의원은 이재만 총무비서관에게 윤전추 행정관과 관련해 나이와 청와대 근무 이전의 직업, 고가의 헬스기구를 구입한 경위 등 몇가지 질문을 했다. 돌아오는 답은 한결 같았다. 청와대는 이번에도 역시 국가안보와 기밀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국가기밀이기 때문에 윤전추 행정관의 나이와 인적사항, 과거의 이력 등을 말해줄 수 없고, 헬스장비 구입내역 역시 납품업체의 영업비밀이 있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철두철미하고 투철하기 그지없는 직업의식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는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국가기밀로 만들어 버리는 요상한 재주가 있다. 윤전추 행정관의 나이와 이력쯤은 인터넷을 통해서 누구나 취합할 수 있는 정보에 불과하다. 윤전추 행정관. 나이 34세, 전직 유명 헬스 트레이너. 사회체육학 전공으로 유명 연예인과 대기업 CEO들의 전담코치를 역임. 저자들은 기밀과 정보의 차이조차 분별하지 못한다. 국민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 국가기밀로 취급되는 황당함이야말로 저자들의 고루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저들은 국가를 국토, 국민, 주권이 아닌 국토, 대통령(정권), 주권으로 인식하는 전형적인 국가주의자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대통령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국민의 알권리보다 체제의 안정이 우선이다. 따라서 이 나라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일 국가안보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대통령의 행적이 돌연 국가기밀로 탈바꿈되고, 대의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헌법을 유린한 국정원 여직원의 신상도 국가기밀로 보호 받으며, 하다 못해 대통령의 헬스 트레이너로 고용된 행정관의 신상과 관련업무까지도 역시 기밀이 되어 버리는 것쯤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저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1항과 2항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이 얼마나 반민주적이고 초법적인 발상인가. 민주주의의 기본질서와 헌법가치를 부정하는 자들이 국가안보와 국가기밀이라는 비밀주의를 내세워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는데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과거 군사독재시절과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든 것으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환경이 얼마나 후퇴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예다.


수십년 전 현 대통령의 아버지와 현 집권세력의 정치적 선배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헌법가치를 부정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감담했을 뿐만 아니라 영구집권을 위해서 아예 헌법 자체를 새로 만들기까지 했다. 그들의 후예들이 모여 집권한 이 정부에서 국가안보와 국가기밀이라는 미명 하에 비밀주의가 기승을 부르는 것은 그래서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훗날 역사는 이 시대를 어떻게 기록하게 될까.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부끄러움과 함께 두려움이 한없이 치밀어 오른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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