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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찰 댓글 의혹으로 다시 주목받는 그 이름..'김용판'

"사실 이게 굉장히 큰 사건인데, 사건의 무게만큼 보도가 크게 안 되고 있는 것 같아요."

13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이다. 말 그대로다. 죄질의 정도, 범죄에 동원된 인력 규모, 사건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 등을 종합해 보면티난리가 나도 벌써 크게 났어야 할 '대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앞서 불거진 비슷한 사안과 비교하면 더욱 그럴 터다. 

물론 세간의 시선을 사로잡는 엄청난 일들이 정신없이 휘몰아치고 있는 형국이기는 하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타결 소식, 문화예술계, 학계, 종교계에 이어 정치권까지 옮겨붙은 '미투 운동' 등 어마무시한 사건·사고들이 잇따르면서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았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이 사안이 이렇게 조용하게(?) 지나갈 일인가.

"사실상 사정기관이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수사를 겸하는 기관 중에 최대 조직입니다. 그리고 군하고 국정원은 눈에 안 보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운전하시는 분들 보면 바로 경찰 보이고 경찰서 보이고, 굉장히 흔하죠."

이철희 의원에 앞서 12일 '뉴스공장'에 출연했던 하어영 <한겨레21> 이슈팀장은 마침내 꼬리가 잡힌 경찰의 댓글 공작 의혹이 충격적인 이유를 저렇게 설명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다. 국정원과 군은 철저히 은폐된 조직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시민들과 직접 부딪힐 일이 없다.

그러나 '경찰'은 다르다. 그들은 시민들 가까이에서 상존한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는 경찰과 시민이 교감을 나누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아니 실제 현실에서도 경찰은 늘 시민과 함께 하고 있다. 별다른 문제 없이도 시민들은 아무 때고 경찰서, 파출소 등을 찾아 길을 묻거나 불편함을 호소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시민들은 경찰에 특별히 거부감이나 위압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들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친근하고 살가운 존재들이다. 경찰을 일컬어 '민중의 지팡이'라고 부르는 이유일 터다.


ⓒ 오마이뉴스


그런 경찰이 국정원, 군과 마찬가지로 온라인 상에서 댓글 공작을 펼쳐온 사실이 드러났다. 건전한 인터넷여론을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댓글을 달고 여론 조작을 해온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이는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이철희·이재정 의원실(민주당)과 <한겨레>의 취재 결과 드러난 내용이다.

"2011년 2012년 사이, 그러니까 2012년 총선, 대선이 있기 전입니다. 그리고 있었던 당시이고요. 그때 당시 경찰국 보안국 산하에 있는 보안사이버수사대, 아마 낯선 명칭일 텐데요. 보안국 산하에 있는 보안사이버수사대에서 온라인 포털을 중심으로 특정한 의견을 표방하려 하는 보도어를 특정해서 댓글을 달았다 하는 진술이 나온 겁니다. 보안사이버수사대는 쉽게 생각해서 국정원의 심리전단, 그리고 군 사이버사령부의 심리전단에 해당되는 조직입니다."

하어영 기자에 따르면, 경찰은 2011년 무렵부터 보안사이버수사대를 통해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댓글 작업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앞서 검찰조사 결과 국정원 심리전단은 2009년 무렵부터, 군 사이버사령부는 2010년부터 여론조작을 펼쳐온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군·경찰까지 동원된 여론 조작이 대대적으로 자행됐다는 것을 의심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여론 조작에 가담한 경찰의 규모다. 이재정 의원실이 밝힌 2011년 4월 18일 '안보 관련 인터넷상 왜곡 정보 대응 방안' 문건에 따르면, 경찰청은 국가 안보와 관련해 왜곡 정보의 확산을 차단한다는 이유로 보안국을 중심으로 무려 2000여 명에 달하는 경찰력을 동원할 계획을 수립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국정원 심리전단 산하 댓글 공작 인원 70여 명, 사이버사령부 130여 명, 기무사 600여 명을 훨씬 상회하는 엄청난 규모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찰청 보안국은 경찰력만으로 부족하다고 판단될 시 보수단체 회원 8만 여명을 동원하려는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이재정 의원실이 공개한 '사이버 안보신고요원 운영계획 문건'에 따르면, 경찰청 보안국은 2012년 2월 인터넷 여론 대응을 위해 보수단체와 접촉해 비밀리에 '사이버신고요원'을 선발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해당 문건에는 '선발 대상', '모집 방법', '선발 기준' 등 사이버 안보 신고요원 운영에 대한 계획이 상세히 나와 있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기무사 등의 전방위적인 댓글 공작 사례를 감안하면 경찰청 보안국의 사이버 안보신고 요원 운영계획 역시 그대로 실행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관련 의혹에 대해 경찰청은 12일 관련자 32명에 대한 자체 진상조사를 실시한 결과, 2011년 보안국 사이버수사대 요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부터 정부정책 지지 댓글을 달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요원은 이것이 공식적 활동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상황을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2012년 댓글 사건 당시에 누가 댓글사건 초동수사를 했느냐 들여다보면 경찰이 했습니다. 그분이 이 보안사이버수사대에서도 등장을 합니다. 왜냐하면 보안사이버수사대 댓글을 할 당시에 진술이 어떻게 나왔냐면 '댓글은 지시를 받아서 했다' 라는 진술이 나왔거든요. 당연히 지시를 받아서 했겠죠. 그런데 그 지시를 받았다라는 당사자가 국장이예요. 보안국장이라는 자리인데 보안국장을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전임해 2011년~2012년에 걸쳐서 했습니다."

12일 방송에서 김어준 공장장이 경찰이 어떻게 '국정원보다 더 은밀하게 댓글 공작을 감추었을까' 라고 의구심을 나타내자 하어영 기자가 응답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대화 중에 아주 낯익은 이름이 나온다.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인 김용판 전 청장이 등장하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하어영 기자는 "김용판 국장이 지시를 했다는 진술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라면서도 당시 경찰청 보안국장의 지시로 댓글을 달았다는 관련자 진술은 나왔다고 설명했다. 앞서 경찰청이 밝힌 자체 진상조사 결과에 등장했던 댓글 공작을 지시한 인물이 누구인지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 말이 그 말이예요. 그 말이 그 말인데, 어쨌든 사이버수사대에서 이런 걸 해야 한단 말이죠. 전문지식이 여기 있으니까. 여기가 그런데 정작 댓글을 달던 곳이에요. 경찰의 댓글을 단 조직이 국정원의 댓글을 달던 조직을 수사한다는 거예요. 이게 말이 됩니까? 제대로 수사 결과가 나왔을 리가 없죠, 이게. 갑자기 화가 나네요."

하어영 기자의 설명에 김어준 공장장은 아주 황당하다는 듯이 저렇게 반응했다. 난해한 퍼즐처럼 따로 놀던 그림들이 이제서야 비로소 '착착' 맞아떨어진다. 국정원 댓글 사건 당시 경찰의 초동 수사가 달리 산으로 향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니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가 제대로 될 까닭이 만무했을 터다.

이와 관련해 눈여겨봐야 할 인물은 단연 김용판 전 청장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축소·은폐한 혐의로 기소됐던 그는 2015년 1월 29일 대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 판결받는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피고인이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려는 의도로 여러 지시를 했다는 주장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그러나 경찰청 보안국 댓글 의혹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참여연대가 15일 조현오 전 경찰청장과 김용판 전 국장을 불법적 여론 조작과 정치개입 지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양홍석 소장은 이날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누구보다 불법을 엄단하고 엄정하게 법과 질서를 수호해야 할 경찰이 불법행위의 직접적 수행자였다는 점에서 사안의 중대성이 크다"며 이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강력히 촉구했다.

국정원, 군 사이버사령부, 기무사 등의 국가기관이 국내 정치에 개입했다는 사실은 이미 검찰 수사를 통해서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상태다. 그런데 여기에 그동안 의혹이 무성했던 경찰까지 여론 조작에 가담한 정황이 드러났다. '댓글 공작'이 대의민주주의와 헌법가치를 뒤흔든 중대 범죄라는 점은 불문가지다.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터다.

이미 경찰청 보안국의 자체 진상조사 결과 윗선으로부터 댓글 공작 지시를 받았다는 관계자 진술이 나온 상황이다. 경찰의 댓글 의혹과 관련된 문건 역시 전격 공개됐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아주 낯익은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김용판 전 국장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일 테다. 박근혜 정권 시절 국정원 댓글 사건을 축소·은폐한 혐의에서 벗어난 바 있는 그가 다시 찾아온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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