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의혹, BBK 투자금 반환 소송비 삼성전자 대납 의혹,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 불법자금 수수 의혹, 김소남 전 의원 공천헌금 의혹, 대보그룹 공사수주 청탁 의혹(이상 특가법 뇌물수수), 다스 실소유주 및 비자금 조성 의혹(횡령·배임), 다스 BBK 투자금 반환 소송에 LA 총영사관 동원 의혹(직권남용), 18·19대 총선 청와대 불법 여론조사 실시 의혹(선거법 위반), 다스 지하창고 청와대 문건(대통령기록물도관리법 위반), 가평 별장과 부천시 공장 부지 등 차명재산 의혹(부동산실명제법 위반) 등.
정말 어머어마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이 받고 있는 혐의라는 겁니다. 구린내가 진동한다는 세간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굳건하게 버텨오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오는 14일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는 이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는 모두 16개에 달합니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비롯해 100억 원대에 이르는 뇌물 혐의와 다스 관련 횡령·배임 의혹 등을 하나하나 소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연루된 범죄 혐의 가운데 유독 한가지만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공작 의혹이 바로 그렇습니다. 사안의 중대성과 그동안 사회에 미친 정치적 파장 등을 감안하면 고개가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관련 의혹이 국가기관을 동원해 국내 정치와 선거에 개입한 천인공노할 국기문란 행위라는 점에서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검찰이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검찰은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 댓글 공작의 정점에 이 전 대통령이 있다고 보고 적극적으로 수사를 해오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검찰은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 정치개입 의혹을 혐의에 추가하지 못한 채 이 전 대통령을 소환하게 됐습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관련 혐의를 극구 부인하고 있는 데다가, 결정적으로 주요 피의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연달아 기각되면서 수사 진행이 차질을 빚었기 때문입니다.
ⓒ 연합뉴스
지난해 9월 8일 이명박 정부 국정원 '사이버 외곽팀' 팀장을 맡아 여론을 조작한 혐의를 받던 양지회(국정원 퇴직자 모임) 전 기획실장 노모씨와 현직 간부 박모씨에 대한 영장이 기각됐습니다. 그러자 범여권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법원을 향한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피의자가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지우는 등 범죄 은닉과 증거 인멸 혐의가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법원이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13일에는 군 사이버사 댓글 공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습니다. 당시 법원은 "객관적 증거자료가 대체로 수집됐고, 주요 혐의 사실에 대해 피의자가 다툴 여지가 있으며, 관련된 공범들의 수사 및 재판 진행 상황, 주거 및 가족 관계 등을 종합하면 구속할 사유와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습니다.
김 전 기획관은 군 댓글 공작 수사와 관련해 이 전 대통령으로 가는 길목으로 평가받던 인물이었습니다. 앞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은 검찰 조사에서 이 전 대통으로부터 군 사이버사 증원 관련 지시를 받은 뒤 김 전 기획관과 실무회의를 했다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김 전 기획관을 이 전 대통령과 군 사이버사 사이의 연결고리로 보고 수사를 해오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장이 기각되면서 이 전 대통령 수사는 또 다시 난항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군 사이버사 댓글 공작 관련해 수사의 축소·은폐를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 전 장관에 대한 영장도 7일 기각됐습니다. 김 전 장관은 지난해 11월 군 사이버사 대선 개입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구속적부심을 통해 11일 만에 석방된 바 있습니다. 이후 검찰은 보강 수사를 통해 김 전 장관에게 국방부 직속 조사본부에 군 댓글 수사 축소를 지시하고 세월호 참사 후속 대응 과정에서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 내용을 무단 수정·삭제한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한 상태였습니다.
검찰은 김 전 장관 구속을 통해 이 전 대통령의 군 사이버사 댓글 공작 개입 의혹을 밝히겠다는 복안이었습니다. 법원의 영장전담판사 교체 이후에 영장을 재청구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러나 법원이 영장을 다시 기각하면서 검찰의 계획은 다시 틀어지게 됐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해서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의 동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주요 피의자에 대한 영장이 계속해서 기각되고 있는 데다가, 구속적부심으로 풀려난 김 전 장관에 대한 영장까지 또다시 기각됐기 때문입니다.
김 전 장관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종전에 영장이 청구된 사실과 별개인 본 건 범죄사실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고, 이미 진행된 수사와 수집된 증거의 내용을 볼 때 피의자가 도망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습니다. 앞서 영장이 기각된 피의자들의 기각 사유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다툼의 여지가 있다',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게 주된 이유입니다.
ⓒ 오마이뉴스
영장 기각이 이어지면서 그에 비례해 법원의 판결에 대한 의구심도 비등해지고 있습니다.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 마땅하나, 법리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의 시각에서 수긍이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다툼의 여지가 없는 공방이 있을까요?',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는 피의자가 있습니까?'. 이 상식적인 질문과 법원의 법리가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습니다. 국정농단 사건 피의자에 대한 잇따른 영장 기각에 법원을 향해 비판이 쇄도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원이 기각 사유를 제시하면서 구체적 설명을 생략하고 있는 것도 또다른 논쟁거리입니다. 법원은 피의자들의 범죄 혐의를 입증할 수많은 정황 증거들과 관련자 진술, 같은 사안으로 구속된 다른 피의자와의 형평성 등에 대한 문제 제기와는 별개로 '타툼의 여지가 있다', '증거인멸과 도주의 염려가 없다'는 기계적 설명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녹음기처럼 똑같이 재생·반복되는 바로 그와 같은 기각 사유로 인해 다수 국민들이 법원의 판단을 불신하고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재 이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범죄 혐의는 차고도 넘칩니다. 하나같이 모두 용납할 수 없는 중대 범죄들입니다. 그가 전직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국민이 느끼는 실망과 분노, 배신감은 이루 말하기 힘들 지경입니다. 그러나 우후죽순처럼 터져나오고 있는 이 전 대통령 관련 의혹 중 유독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 댓글 공작에 대한 수사만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유린한 중대 범죄이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좀처럼 납득하기 힘든 결과입니다.
검찰 소환을 앞둔 이 전 대통령의 범죄 의혹 중 유독 댓글 공작만 빠져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을테지만, 주요 피의자들에 대한 영장이 번번이 기각되면서 수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법원의 입장은 확고부동합니다. 범죄 사실에 대한 타툼의 여지가 있고,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툼의 여지가 없다"는 법원의 판단을 두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법리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국민도 상당합니다. 구속 수사가 부당하다고 법원이 판단했다면 그에 합당한 구체적 사유를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점점 비등해져가고 있는 국민과 법원 사이의 괴리감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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