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일 검찰에 나가 한국당 의원들은 소환에 응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황 대표는 이날 검찰에 자진출두하며 패스트트랙 법안 상정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소환에 응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어떤가요. 저는 자기부정과 이율배반의 끝판왕을 보는 것 같는 느낌을 받습니다. 왜 그럴까요.
국회선진화법은 19대 국회가 끝나기 직전이던 2012년 5월 당시 새누리당(현 한국당)이 주도해 만든 법안입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과 다수당의 날치기 금지가 주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국회선진화법의 세부조항인 패스트트랙은 법안 처리가 지연될 경우를 대비한 조치입니다. (한국당의 경우처럼) 특정 정당의 반대와 비협조로 법안처리가 무한정 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한 일종의 '안전핀'인 셈입니다.
따라서 패스트트랙이 불법이라는 한국당의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간 한국당이 선거제도·개혁입법 관련 논의에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해왔다는 점에서 설득력은 더욱 떨어집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주도해 만든 법을 자기들이 불법이라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웃지 못할 코미디입니다. 황 대표의 주장이 자기 얼굴에 침뱉기인 이유입니다.
패수트트랙 정국에서 한국당이 보인 불법 행태는 또 어떻습니까. 지난 4월 25일과 26일 이틀간 한국당은 동료 의원을 감금하고, 의안과를 점거해 집기를 부수며 법안 접수를 방해했습니다.
정개특위와 사개특위가 열리는 회의장을 점거해 회의진행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장면은 국회 CCTV 등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국회법 '제165조'(국회 회의 방해 금지)는 '누구든지 국회의 회의(본회의, 위원회 또는 소위원회의 각종 회의를 말하며,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를 포함한다)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력행위 등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회법 '제166조'(국회 회의 방해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165조를 위반하여 국회의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행, 체포·감금, 협박, 주거침입·퇴거불응, 재물손괴의 폭력행위를 하거나 이러한 행위로 의원의 회의장 출입 또는 공무 집행을 방해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165조를 위반하여 국회의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 또는 그 부근에서 사람을 상해하거나, 폭행으로 상해에 이르게 하거나,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사람을 폭행 또는 재물을 손괴하거나,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 그 밖의 물건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손상·은닉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사람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합법적인 법안처리 과정인 패스트트랙 상정을 물리적 폭력을 동원해 가로막고, 동료 의원과 국회 직원을 감금시켜 회의 참석과 공무집행을 방해한 한국당의 행태는 명백한 국회법 165조, 166조 위반입니다.
한국당은 그간 패스트트랙을 "입법쿠데타"요 "날치기"라는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패스트트랙은 쟁점 법안의 본회의 상정을 위한 절차일 뿐 법안 통과와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패스트트랙은 국회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하고, 그로부터 다시 협상을 시작하자는 의미이지, 한국당 주장처럼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날치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한국당은 법률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도무지 앞뒤 말이 맞지 않는 주장을 펴면서 패스트트랙 관련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간 세 차례에 걸친 경찰의 소환 통보에도 일절 응하지 않더니, 급기야 황 대표의 자진출두 '깜짝쇼'를 연출하며 검찰 수사 자체를 뭉개기 위한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죠.
황 대표는 이날 검찰에 출두하면서 자신의 목을 치고 의원들은 놔두라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일군을 이끄는 장수의 비장하고 결기 어린 이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이처럼 한없이 궁색해집니다.
국회법에 명시돼 있는 (그것도 자신들이 만든) 정당한 입법과정인 패스트트랙을 불법이라 왜곡·호도하는 것도 모자라 물리적 폭력을 동반해 국회 의사 진행을 원천적으로 방해한 한국당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닌 것이죠.
황 대표의 주장은 조폭 두목이 자신만 처벌하고 조직원들은 처벌하지 말라는 것과 똑같습니다. 전직 법무부 장관으로서 법치주의 기본을 망각하는 주장을 펴고 있으니 딱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더욱이 황 대표는 패스트트랙 사태보다 더 위중한 범죄 의혹에 연루되어 있는 인물입니다. 세월호 참사 수사 외압 의혹, 사법농단·재판거래 관련 의혹, 기무사 계엄령 문건 의혹, 그리고 국정농단 방조 의혹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정부 당시 정권의 2인자였던 그에게 쏠리는 의혹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만약 검찰이 원칙대로, 법대로 수사했더러면 어땠을까요. 그 목이 아직까지 남아날 수 있었을까요. 의혹과 관련해 황 대표는 현재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고발을 당한 상태입니다. 검찰이 마음 먹기에 따라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누가 누구를 걱정할 처지가 아닌 것입니다.
황 대표는 이날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날의 자진출두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국민 기만 쇼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셈입니다. 자신의 목을 치라면서 진술을 거부했다는 건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한마디로 검찰을, 법을 아주 우습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죠.
검찰은 황 대표와 한국당 의원들에 대해서도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하는 것과 똑같은 기준과 잣대로 철저하고 엄격하게 수사에 나서야 합니다. 그들은 벌써 수개월째 경찰 수사를 조직적으로 거부왔습니다. 법치주의를 조롱하고 농락하는 이들에게 법의 준엄함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검찰이 이번에도 머뭇거린다면 공정성 논란과 함께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촛불은 점점 더 거세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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