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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월호와 노란 리본, 그리고 산 자들의 도리

ⓒ 오마이뉴스


2015년 여름도 더웠다. 홍대에서 지인을 만나기로 한 그날,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탓에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러던 중 사람들로 북적이는 한 켠에 서 있던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노란 티셔츠를 입고 있던 그는 한 손에는 피켓을, 다른 한 손에는 노란 리본을 들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동안 그 남자를 지켜 보았다.


그날 홍대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의 대부분이 그의 앞을 무심히 스쳐 지나갔다. 간혹 그에게 다가가 노란 리본을 건네 받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비할 바가 못되었다. 이 장면을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자니 괜시리 서글퍼졌다. 그에게 다가가 짦은 눈인사를 주고받고는 노란 리본 다섯개를 건네 받았다.

그날 받은 리본들을 자동차 열쇠고리와 컴퓨터 가방, 아내의 숄더백 등에 달아 놓았다. 언제든 볼 수 있도록 가까운 곳에 두고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1년을 노란 리본과 함께 했다. 집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리본은 그날의 기억을 또렷하게 상기시켜 주었다. 그런데 얼마 전 리본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것이다.

어디서 언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기억조차 없다. 리본이 사라졌다는 걸 인지한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렇게 기억들이 하나씩 하나씩 잊혀져가는 것일테지.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순간 울컥했다. 세월호도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는 직감 때문이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를 기억한다, (고 믿고 싶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여전히 애쓰는 사람도 있고,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기간을 조금이라도 연장해 보려고 단식투쟁에 나서는 사람도 있다. 그들처럼 직접적이지는 않아도 세월호의 아픔을 기억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하루 전의 일도 기억하기 힘든 복잡다난한 세상에서 2년도 훨씬 지난 일을 기억하고 함께 아파한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그 귀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문제는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출발한 세월호 특조위는 지난 6월 말로 사실상 강제 종료됐다. 특조위가 문을 닫게 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이다. (특조위 활동 시점에 대한 논쟁은 차지하고) 특조위 활동기간이 연장되면 그만큼 국민 세금이 더 투입되야 하기 때문에 종료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였다. 특조위가 어느날 갑자기 '세금 도둑'으로 둔갑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특조위를 강제 종료시킨 표면적 이유가 ''이였다면 본질적 이유는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향한 책임론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선박의 도입과 운항, 사고 이후의 대응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정부의 총체적 부실이 고스란히 드러난 인재이자 관재였다. 당연히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 비등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진상 규명은 난항을 겪는다.

사고 발생 이후 2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밝혀진 것들은 거의 없다. 사고 당일 대통령의 행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에 있고, 세월호 실소유주 논란도 여전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검·경이 세월호의 침몰 원인으로 꼽히는 철근이 강정해군 기지의 자재였다는 사실을 특조위에서 밝혀내기 전까지 함구하는 등 세월호와 관련된 의혹들이
 부지기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와 청문회, 세월호 특별법 등에 소극적이었던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행태가 모두 이해가 간다. 세월호 참사가 자신들의 책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이상 그들이 진상 규명에 적극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아직까지 세월호가 칠흑같은 바다 속에 잠겨 있는 이유다.


 오마이뉴스



문제는 앞으로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세월호를 돈 문제와 결부시키고, 민생과 경제, 보상과 배상 문제 등으로 본질을 오도하는 한 세월호가 물 밖으로 나온다 해도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세월호는 점점 대중들로부터 멀어져만 갈 것이다. 언제 떨어져 나갔는지도 모르는 노란 리본처럼 말이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머물던 4·16 기억교실이 이전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교실 이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지 3개월 여만의 일이다. 지난 6일부터 시작된 이전 작업은 오는 21일까지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많은 논란과 진통 끝에 이전되는 기억교실을 바라보는 마음이 한없이 착찹하다. 학생들의 손 때 묻은 유품을 수습하며 뜨거운 눈물을 토해내던 유족들의 모습과 세월호를 향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비릿한 속내가 겹치는 탓이다.

세월호의 흔적들이 이렇게 하나 둘씩 우리 곁에서 바래지고 엷어져 간다. 살아있는 자들의 도리가 못내 아쉽다. 하늘의 별이 되어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세월호와 노란 리본, 그리고 산 자들의 책임과 도리. 세월호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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