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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상급식 사라진 날, 홍준표도 사라졌다

어제(19) 경남도의회는 무상급식을 중단하고 이를 대체할 '서민자녀 교육지원 조례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재석의원 55명 가운데 찬성 44, 반대 7, 기권 4명의 숫자가 말해주듯 도의회는 압도적으로 홍준표 도지사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비례대표 포함 총 55명의 도의원 중 새누리당 소속 의원이 51명인 상황에서 이는 모두가 예상한 결과입니다. 도지사의 권력남용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가 오히려 권력의 거수기로 전락한 낯뜨거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날 경남도청은 격전을 앞둔 전장과도 같았습니다. 아이들의 밥그릇을 빼앗으려는 자들과 이를 지키려는 사람들과의 치열한 대치국면이 펼쳐졌습니다. 경남도의 무상급식 중단에 항의하는 수많은 도민들이 각지에서 몰려들어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경남도의회 측은 버스 16대로 도의회 입구를 막아 도민들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습니다. 불통과 독선, 오만의 상징 '준표산성'이 등장한 것입니다.

홍준표 도지사의 전횡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그의 독단적이고 오만한 도정 운영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100년이 넘도록 도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오던 진주의료원을 폐업시킨 장본인입니다. 도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으로 그는 가장 먼저 공공의료시설인 진주의료원을 폐업시켰습니다. 그것도 어떠한 의견수렴이나 합의의 과정도 없이 말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절차와 과정, 도민의 주권을 무시하는 명백한 권력남용이자 월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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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무상급식 중단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민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도민의 2/3가 반대하는 사안을 도지사가 독단적으로 결정해버린 것입니다. 새누리당이 장악하고 있는 도의회는 쪽수의 힘으로 홍준표 도지사의 독단을 편들어 주었습니다. 민주적 의사결정시스템이 붕괴된 의회의 폭거는 이처럼 흉기가 되어 시민들의 목줄을 겨누게 됩니다. 홍준표 체제로 갈아탄 후 저들은 두 차례에 걸쳐 도민의 심장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1991년 지방의회가 다시 부활한 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이 땅의 지방자치는 여전히 척박하고 이처럼 천박합니다.







정국을 대혼돈 속으로 몰고 가고 있는 홍준표 도지사는 얼마 전 인터뷰를 통해 무상급식 예산이 삭감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2012년 도지사 취임식의 발언을 문제삼는 사회자의 질문에 "취임사가 아니고 2012년 보궐선거 때의 일이다. 이전 김두관 지사가 만들어 놓은 예산을 집행할 수 밖에 없었다"라며 질문의 핵심을 비켜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는 분명히 2012 12 20일 취임사를 통해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지금의 재정상태로는  복지예산 확보는 물론이고, 시급한 현안사업을 해결할 최소한의 예산확보도 어렵습니다...(중략)...어렵다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줄여서는 안됩니다. 무상급식과 노인틀니사업 같은 복지예산이 삭감되는 일이 없도록 재정건전화 특별대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습니다"라며 무상급식 예산의 삭감은 없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힌 바 있습니다.

비록 인간의 기억은 퇴색될 지라도 기록은 영원합니다. 우리는 이런 정치인을 각별히 경계해야만 합니다. 정치공학에 따라 언제든 말을 바꿀 수 있는 표리부동함이야말로 정치문화의 저렴화와 저급화를 선도하는 주범이기 때문입니다. 홍준표 도지사의 행태라면 그가 다음 선거에 무상급식 공약을 다시 들고 나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자신이 했던 말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뒤집어 버리는 그의 행태는 도민을 우롱하고 기만하는, 사라져야 할 몹쓸 구태입니다.


1000명이 넘는 도민들이 도청 앞에 모여 무상급식 중단 반대를 외치며 거세게 항의하던 날 논란의 당사자인 홍준표 도지사는 그 곳에 없었습니다. 그는 이날 저녁 8시 인천공항을 통해 미국 출장길에 오를 예정이었고 그 이유로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타이밍이 기막힙니다. 마음만 있으면 본회의에 참석할 시간은 충분했습니다만, 그는 충직한 도의회 의원들을 둔 덕분에 골치아픈 현장을 유유히 떠날 수 있었습니다. 정치도의와 민의를 저버린 그에게는 무책임하다는 말조차 아깝습니다.

경남도의회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새누리당 경남도의회가 '서민자녀 교육지원 조례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킨 결과, 이제 경남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무상급식이 폐지되는 곳으로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당장 다음 달부터 21 9천여명의 학생들이 최대 80만원에 이르는 급식비를 부담해야만 합니다.





조례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SNS를 중심으로 홍준표 도지사와 경남도의회를 비난하는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홍준표 도지사를 재선시킨 경남도민들의 선택을 비판하는 내용들도 상당합니다. 경남도민 전체가 홍준표 도지사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도민 전체가 일률적으로 비난받는 현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변치 않는 지역민심이 홍준표 도지사의 독단과 독선, 도의회의 폭정을 이끌어 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직접적 이해당사자들인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국민들이 경남도의 무상급식 중단에 분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분노는 홍준표 도지사와 추악한 지방의회를 향한 것입니다만, 그 기저에는 이 논제가 단순히 경남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직감이 놓여 있습니다. 경남도가 시작한 이상 새누리당 소속의 광역자치단체와 지방의회가 호시탐탐 무상급식 폐지안을 추진하려 들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경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에 이어 다시 한번 나쁜 선례를 남긴 셈입니다.

지난 2012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마한 이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정치인 홍준표가 경남도지사 보궐선거를 통해 행정가로 복귀한 이후, 경남도는 우리나라 정치이슈를 선도하는 지역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느낌입니다. 홍준표 도지사의 무상급식 폐지 결정이 향후 어떻게 평가받게 될 지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만, 그의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도정 운영이 건강하고 민주적인 지방자치의 존립에 어떤 해악을 미치는 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건강한 지방자치를 염원하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대단히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날입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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