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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부자 감세를 막아낸 국민들의 분노

'비지니스 프랜들리'라는 말은 '줄푸세'와 함께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과 국정철학을 상징하는 의미심장한 구호였다. 이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기업에게 법인세 인하와 각종 기업감면혜택 등의 규제완화를 해주면 기업들이 잉여자본을 기업투자에 활용하고 대대적인 고용창출이 이루어져, 기업과 국민 모두에게 부가 분산되는 이른바 '낙수효과'가 발생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 장미빛 청사진은 결과적으로 한쪽이 파이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반쪽짜리 정책으로 판명이 났다. 그 결과 이명박 정부 5년동안 대기업들은 유례없는 세계경제의 침체 와중에도 엄청나게 몸을 불리며 양적 성장을 이루어 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난 2013년 2월 27일 기업 경영평가 사이트 CEO스코어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20대 그룹의 경영 성적표를 분석해 발표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2012년 말 기준으로 국내 20대 그룹의 총 자산규모는 1202조 8000억원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의 677조 1000억에 비해 77.6%가 증가한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20대 그룹의 총 자산규모가 2003년 396조 2000억원에서 2007년 553조 1000억원으로 39.6%가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두배 가량 몸집을 불린 셈이다. 특히 현대자동차는 이 기간 동안 자산총액이 2008년 73조 9870억원에서 2013년 154조 6590억원으로 무려 109.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는 최근 한전부지 매입에 10조 5500억원이라는 화끈한 배팅을 선보였던 현대자동차의 비약적인 성장도 결국 이명박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대기업 우선정책과 부자감세정책의 결과로 서민과 중산층에게 상당한 혜택이 돌아갔다고 주장해왔고, 현 박근혜 정부 역시 같은 말을 되풀이해 왔다. 그러나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각종 세금감면 혜택을 준 결과로 나타난 것은 소득재분배 악화에 따른 사상 최악의 양극화현상 뿐이었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담뱃세와 주민세, 자동차세 등 간접세와 지방세를 올리는 증세방침을 천명했다. 부족한 세수를 마련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증세의 타겟이 배를 잔뜩 불린 재벌과 부자 및 고소득층이 아니라 서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여전히 손사래을 치고 있지만 대다수 서민들에게는 증세를, 소수의 부자들에게는 감세를 해주고 있는 정황들은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지난 9월 12일 정부는 '상속세 및 증여세•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담뱃세 인상 논란으로 사회가 격론에 빠져 있던 시점에 슬쩍 입법예고된 이 법안은 설립된지 30년이 넘는 기업에게 가업상속공제한도를 1000억원까지 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명문 장수기업'이라는 인증만 받게 되면 무려 1000억원의 돈을 자식에게 세금없이 상속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법안이다. 


정부가 지난 8월 세제개편안을 통해 '배당소득 증대세제'를 내년에 도입하겠다고 밝힌 것 역시 주식부자에 대한 감세정책의 일환이다. 이 정책이 시행되면 고배당 기업의 주식에서 발생하는 배당소득에 대한 원천징수 세율이 기존 14%에서 9%로 인하되어 5%의 세금을 덜 내게 된다. 또 금융소득종합과세를 받는 고소득자의 경우도 25%의 분리과세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이렇게 되면 소액주주의 경우 36%, 대주주의 경우 20%가량의 원천징수 세부담이 줄어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책이 누구에게 유리한 정책인지는 코끼리와 개미의 차이만큼이나 확연하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는 담뱃세와 주민세, 자동차세 등 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부담을 주는 간접세와 지방세를 인상하며 서민부담은 가중시키면서도, 부자들에세는 노골적으로 상속•증여세와 주식배당의 원천징수 세율을 낮추어 주고 기업들을 위해서는 법인세율 현행유지라는 당근을 안겨주고 있다. '줄푸세'를 통해 재벌과 부자의 세금은 깍아주고 부가가치세나 유류세같은 간접세를 올리는 방법으로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갔던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 역시 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류성걸 의원은 지난달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조부모가 손주의 교육비로 쓰도록 재산을 물려줄 경우 1억원까지 증여세를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류 의원은 "지난 20년간 서민가계의 소득은 4.5배로 늘어난 반면 교육비 지출은 5.9배 증가했고, 특히 초등학생 또는 중고교생 자녀를 둔 40대 가구의 교육비 지출 비중은 17.4%에 달한다"며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고령층의 자산 중 일부를 손주 세대의 교육비 지출로 순환시키면 서민가계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법안을 발의한 취지를 설명했다. 


관련 사실이 알려지자 민심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대다수 서민들의 경제 상황과 가계 상황과는 동떨어진 부자들을 위한 또 다른 부자 감세일 뿐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서민들의 곳간은 텅텅 비어 있는데 부자들 곳간만 더 채워주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법안에 서민들이 분노하는 건 당연했다. 국민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자 결국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류성걸 의원은 슬그머니 법안을 철회하고야 말았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왜 그럴까?


살펴본 바와 같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서민증세, 부자감세'라는 대원칙에 충실한 경제정책을 펼쳐오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의 거대한 화두이자 시대적 당위였던 경제민주화와 일찌감치 결별한 것에서 이는 예고되어 있던 수순이었다. 정부여당이 그럴듯한 수사와 거짓 통계를 섞어가며 서민 증세와 부자 감세가 아니라고 아무리 주장한다 한들 사슴이 말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류성걸 의원이 대표발의했던 '조세특례제한법' 역시 부의 대물림을 더욱 공공히 만들어주는 대표적인 부자 감세 법안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강력한 반발이 이 법안을 휴지통 속으로 사라져 버리게 만들었다. 국민들의 힘으로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법안의 발의를 막아낸 것이다. 


프랑스 정치가인 토크빌은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격언을 통해 국민의 정치의식이 곧 그 나라의 정치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임을 강변했다. 이 명징한 선언은 국민들의 깨어있는 정치의식이야말로 좋은 정부와 좋은 정치인을 만들기 위한 제일 요건이라는 것을 환기시켜 준다. 자발적인 정치참여를 통해 국민들이 정부와 정치인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은 좋은 정치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정치행위다. 국민들이 정부와 정치인을 견제하고 감시하지 않는다면 휴지통에 있던 불합리와 불공정의 악습들은 언제든지 슬그머니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새누리당의 류성걸 의원이 대표발의한 부자감세 법안에 국민들이 분노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 분명한 차이야말로 두 눈을 부릅뜨고 국민들이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이자 당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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