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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홍콩의 우산혁명과 한국의 민주주의

홍콩의 중심가인 센트럴 공민광장은 지금 노란우산을 펼쳐든 시민들의 물결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홍콩은 현재 홍콩 행정장관 선거의 자유직선제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도심점거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시위 사흘째인 어제(30일) 저녁에는 5만명이 넘는 시위대가 홍콩 행정청과 금융기관들로 둘러싸인 8차선 대로를 가득 메웠다. 


지난 8월 말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는 2017년 홍콩 행정장관을 뽑는 첫 직선제 선거의 후보자를 친중국계 인사로 제한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홍콩에 대해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중국 당국의 통치정책이 만들어낸 처사였다. 일방적인 중국 당국의 결정은 시민들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시민들은 홍콩의 민주주의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는 한편 홍콩의 미래를 염려하며 가슴에는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희망의 상징인 노란리본을 달고 한 손에는 우산을 받쳐 들며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중국 당국의 비민주적 결정에 반대하는 이번 시위는 우리에게는 매우 낯익은 장면들이다. 우리에게도 민주주의와 자유를 부르짖고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군부독재정권의 압제와 비민주적 통치에 저항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렇게 까마득히 먼 기억은 아니다.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가 도화선이 된 4•19 혁명이 1960년에, 전두환 신군부의 철권통치에 종말을 고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시킨 6월 항쟁이 1987년에 있었다. 그 중간에는 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하며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위들도 있었고, 불과 1년 전에는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에 분노한 수많은 시민들이 서울광장에서 촛불을 밝혔으며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비판하는 대규모 시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1960년의 4•19 혁명과 1987년의 6월 항쟁은 모두 거악의 정치권력에 맞서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시민들의 힘으로 승리를 일구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4•19 혁명은 무능한 독재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3•15 부정선거의 주범 이기붕의 몰락을 이끌어 냈고, 6월 항쟁은 무자비했던 전두환 신군부로부터 역사적인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실질적 시작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물론 4•19의 성과가 채 꽃피우기도 전에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고, 6월 항쟁 역시 승리의 과실이 연말 대산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이 두번의 기억은 시민들의 위대한 역량을 보여주는 역사의 한 장면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두번의 승리를 제외하면 정치권력의 불의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은 언제나 좌절을 맛보아야만 했다. 멀게는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반대했던 사람들로부터 아주 가깝게는 세월호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했던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은 승리의 기억보다는 패배의 기억에 더 익숙해져 있다. 자신들의 분노가 제도권 정치에 수렴되기를 바라는 열망은 승리했을 때나 패배했을 때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부당한 것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내재된 욕구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의미다. 엄숙함과 숭고함, 열정과 열망, 변해야 하고 바꿔야 한다는 당위를 가슴에 품고 사람들은 불의에 맞서 온 것이다. 그러나 그 성과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한쪽은 눈부신 두번의 승리를 이루어 냈고 다른 한쪽은 쓰디쓴 실패의 연속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이상하고 괴상하기 짝이 없다. 누구는 승리의 유전자를, 다른 누구는 패배의 유전자를 타고 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나는 어제 이 둘 사이의 엄청난 차이를 불러온 결정적 원인 중의 하나를 목도했다.


 



여야는 어제(30일) 세월호특별법 협상을 타결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67일 만이다. 그런데 여야가 합의한 이번 특별법의 내용이 여전히 논란이다. 마침내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했다는 언론의 자극적인 제목이 무색하리만큼 전혀 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차의 여야 합의안에 더해 특검후보 전원에 대해서 야당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것을 빼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얻어낸 것이 전무하다. 애당초 진상규명을 위한 절대조건인 기소권과 수사권을 논외의 대상으로 하고 협상에 임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이 합의와 약속을 지켜주기만을 바라는 처량하고 군색한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양당의 합의사항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모호하고 뜬구름잡는 내용 일색이다. 특히 합의사항 제2조 '특별검사후보군 선정에 있어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는 후보는 배제한다'와 제3조 '유족의 특별검사후보군 추천 참여 여부는 추후 논의한다'는 조항은 합의문에 넣기에는 부실하기 그지 없는 내용으로 구두약속과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다. 국정원 사건의 진상규명조차 너무 더워서 못하겠다던 새누리당이고 보면 이처럼 모호한 문구가 훗날 커다란 암초로 작용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협상을 주도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이제는 국회에서 이렇게 해서라도 세월호특별법을 만들어 진상규명을 해야하는 시점"이라며 "세월이 가면 갈수록 진실들이 지워져 가고 있지 않느냐"고 협상타결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는 세월호특별법 협상과정에서 그 역량과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그녀의 또 다른 오판이자 실기다. 이처럼 빈약한 장치들로 진상규명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있는 그녀의 순진함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거듭되는 결정적 악수들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들은 완전히 지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세월호 정국이 지난 대선의 불법부정선거에 대한 진상규명은 커녕 국정원 개혁이라는 지엽적인 문제조차도 해결하지 못한 국정원 사건과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두 사건 모두 당위와 대의는 분명히 새정치민주연합에게 있었고 시민들은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출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은 시민들이 부여해준 당위와 대의에 대한 확신도, 불의에 맞서 싸울 당당한 용기도 없었다. 시대의 흐름을 읽어낼 만한 혜안도 시민들의 염원과 열망을 담어낼 만한 가슴도 없었다. 이런 한심하고 무능력한 자들이 집권을 꿈꾸고 있다는 것도 새누리당의 오만과 위선만큼이나 끔찍하기 짝이 없다. 


그동안 새누리당의 폭주를 견제할 정치세력으로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것이 새정치민주연합 스스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정치의 저급저렴화를 부추기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과 마찬가지로 지역주의에 안주하는 한편 당내 권력다툼과 계파문제로 끊임없는 논란과 불신을 유발하며 국민들을 실망시켜 왔다. 박근혜 정권과 집권여당을 비난하고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문제들은 개혁하지도 혁신하지도 못했다. 서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닦아주고 보듬어 주기에는 그들의 몸은 너무 비대해졌고, 그들의 마음 역시 거만해질대로 거만해져 있었다. 사회적 약자와 대다수 서민들의 편에 서기엔 그들 자신이 이미 기득권이 되어 있었다. 


홍콩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우산혁명에 참가하고 있는 시민들이 외치는 구호 중에 "가짜 민주주의는 가라"라는 문구가 있다. 사람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퇴보와 후퇴에 안타까워하고 분노하면서도 시대 흐름과 국민 열망을 외면하는 무색무취한 거대 야당의 과오에 대해서는 둔감한 것 같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퇴행과 퇴보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라면 이를 정면에서 견제하고 저지해야 하는 것이 야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자 책무다. 그러나 2014년 현재 우리나라에 야당은 없다. 정치공학적 이해득실로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정치공학도들만 득실거릴 뿐이다. 시민들은 이제 야당에 대해서도 분명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이런 비겁한 정치가 판을 치는 정치환경 속에서 건강한 민주주의와 시민들의 권리와 권익이 개선될 리가 없다. 이제 시민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을 향해 "가짜 야당은 가라"라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표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시대의 흐름과 시민의 열망을 담아내지 못하는 새정치민주연합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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