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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박희태 봐준 경찰, 영국에서였더라면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이 전용차를 타고 부리나케 회의장으로 향하던 중 교통신호 위반을 했다. 교통경찰은 차를 정지시키고 직무대로 면허증을 제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운전사는 차에 수상각하가 타고 계시고 회의시간에 늦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니 그냥 보내달라고 했다. 하지만 교통경찰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이 나라의 법질서를 책임지고 있는 수상 각하의 차량이 교통법규를 어겼을 리가 없으며, 설령 수상 각하가 타고 있다 하더라도 교통법규를 위반했으면 규정대로 딱지를 떼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처칠 수상은 딱지를 떼이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회의가 끝나자 마자 경시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정을 설명하며 해당 경찰관을 특진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경시청장은 런던 경시청의 내규에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람에게 딱지를 뗀 교통경찰을 특진시키라는 조항은 없다며 이를 거절했다. 처칠은 이날 영국 총리로서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한번 쯤은 들어보았을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뻔한 이야기에 우리나라에서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특별함이 묻어 있다. 교통경찰이 신호를 위반한 차량을 정지시키고, 고위공직자의 수행운전기사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특권을 행사하려는 장면까지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 전개다. 우리나라에서 늘 있는 관행이자 관례로 심심치 않게 보아온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상황은 우리가 알고 있는 스토리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무모한 건지 교통경찰은 운전사가 수상의 차량이라고 밝혔음에도 규정을 내세우며 딱지를 부과하고 수상은 이를 받아들인다. 우리나라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장면들이다. 


교통법규를 어긴 고위공직자의 차량에 원리 원칙대로 과태료를 부과시키는 소신있고 강단있는 교통경찰의 모습은 현실과는 대단히 유리된 느낌이다. 과태료 딱지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고위공직자의 모습도 우리나라의 경우였다면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처칠의 요청을 단호히 묵살한 런던경시청장의 모습 역시 우리나라와 비교해 본다면 대단히 이질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했다간 당장 목이 달아나거나 적어도 후환을 걱정해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골프라운딩 중 캐디에게 지속적인 성추행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큰 논란이 벌어졌다. 해당 캐디는 홀을 돌 때마다 계속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고 성적 수치심을 느낄 정도의 신체접촉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내가 딸만 둘이라서 여성들을 보면 내 딸처럼 귀엽고 손녀처럼 정답고 해서 내가 등을 쳤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며 성추행백서에나 나올법한 해명을 했다. 


내 딸처럼 귀엽고 손녀처럼 정답다고 해서 모두가 여성의 등을 주무르고 팔을 만지고 손가락 끝으로 가슴을 툭 찔러보지는 않는다. 그는 등허리를 친 것과 팔뚝을 만진 것쯤은 별 문제되지 않는다고 투로 말하고, 자신의 성추행을 캐디가 딸아이처럼 귀여워서 나온 습관으로 치부해 버렸다. 캐디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성추행을 범한 것 그 자체도 문제지만 성추행에 대한 천박한 인식은 더 큰 문제다. 그의 해명을 보고 있자면 그가 전직 국회의장까지 지냈던 사회지도층 인사였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박희태 전 의장은 어제(27일) 새벽 4시30분 경 경찰에 출두해 3시간 가량 경찰조사를 받았다. 해당 캐디가 박희태 전 의장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를 제출했지만, 지난해 6월 성추행 친고죄가 폐지되어 합의와는 무관하게 경찰조사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원래 박희태 전 의장은 26일 저녁 8시에 경찰에 출두하려 했으나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자 되돌아 갔고 어제 새벽에 다시 출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경찰이 박희태 전 의장을 위해 여러가지 편의를 제공한 사실이 밝혀졌다. 언론의 노출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늦은 새벽으로 시간대를 조율했고, 정문에 남아있던 취재진을 의식해 박희태 전 의장의 차량을  외부에 두고 청사 뒷문으로 들어오도록 안내했으며, 조사를 마친 뒤 오전 7시30분 경 경찰관 소유의 차량을 타고 청사를 빠져나가도록 해준 것이다. 






성추행 피의자에  대한 경찰의 관대함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여론이 경찰과 박희태 전 의장 모두를 비난하고 나섰다. 경찰의 행태가 사회공동체의 보편적 상식과는 한참은 떨어져 있으니 비난여론이 거세게 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가만히 당하고 있을 경찰이 아니었다. 경찰은 비난여론을 의식한 듯 "박 전 의장이 새벽에 갑자기 전화로 조사를 받겠다고 한 뒤 사무실을 찾아와 차마 돌려보낼 수 없었다"며 "나이가 많은 박 전 의장이 조사 중에도 지병 등을 이유로 계속 힘들어 해 귀가 차량을 지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경찰의 해명은 어딘가 모르게 궁색하기 그지없다. 새벽에 갑자기 전화하고 찾아와 조사받겠다는 요청을 받아들인 것까지는 이해한다 치자. 경찰이 성추행 피의자의 신변을 언론으로부터 보호해주겠다는 의도가 아닌 이상 굳이 뒷문을 택할 이유가 없다. 또한 드라이버로 티샷을 날리고 아이언 샷을 과감하게 휘두르고, 캐디의 등과 팔은 물론이고 가슴까지 쿡 찌를 기력이 남아 도는 사람이 세 시간 가량의 조사를, 그것도 보지 않아도 능히 짐작되는 형식적 조사를 견뎌내지 못한다는 건 더더욱 이상한 일이다. 


평상시엔 사지육신 멀쩡하다가도 검찰에 소환되기만 하면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는 재벌총수와 정치인들을 무수히 경험해 왔던 국민들에게 경찰의 해명이 납득이 될 리가 없다. 식상하고 또 식상하다. 어쩌면 이 나라 정치집단과 국가기관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상상력과 창의력일지도 모른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성추행 혐의를 수사하는 경찰의 태도는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밥먹듯이 내팽개치며 제식구 감싸기와 제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국회의원, 역시 제식구 감싸기는 물론이고 정치권력의 공복임을 자처하며 사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망각하고 있는 검찰, 정치권력에 굴종하며 사법정의를 땅에 떨어뜨리고 있는 사법부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저들 모두는 표면적으로 법과 원칙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법과 원칙이 평등하고 공평하게 적용된다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2명은 우리나라가 불투명하고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국민의 3분의 2가 우리나라를 불신하고 있다는 것으로 매우 충격적인 결과다. 이 불신은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필두로 행정부와 사법부, 검찰과 경찰 등 정부와 국가공공기관 등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세계의 정치•경제를 선도해가는 나라치고 정부와 국가기관에 대한 공신력이 높지 않은 나라가 없는 것을 보면, 국민에게 신뢰를 주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국가개혁과 국민화합에 나서야 할 정부와 국가공공기관들이 오히려 국민불신을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비정상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비근한 예다. 



캐나다 국빈방문과 미국 뉴욕 유엔총회 참석차 미주를 방문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교민들의 규탄시위를 받았다. 새누리당은 이를 두고 국격의 추락이고 나라망신이라며 맹비난을 했다. 그러나 나는 박 대통령이 임명한 대변인이 미국순방 중 인턴의 엉덩이를 더듬고, 역시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차관이 건설업자로부터 성접대를 받고, 대통령이 임명장을 수여한 현직 지방지검장이 대로변에서 음란행위를 하고, 대통령이 몸담고 있던 당의 전임 당대표이자 국회의장까지 역임한 사람이 캐디의 몸과 가슴을 만지는 이 추하고 천박한 장면 중 어느 쪽이 더 대한민국의 국격을 훼손하고 나라망신을 시키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서두에 언급한 처칠 수상의 일화를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특수한 경우라 여기거나, 우리나라의 사정과는 상관없는 먼 나라의 특별한 이야기라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고위공직자의 특권의식을 견제하고 법과 원칙을 무시하는 국가기관의 이같은 전횡과 일탈을 막을 방법은 없다. 우리는 박근혜 정부 들어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 검찰과 경찰 가릴 것 없이 본연의 직분을 벗어난 역주행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국가기강과 공직기강이 무너지고 정권 차원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다는 명징한 표시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를 비판하는 국민 여론조차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들은 과거 군부독재시절의 권위주의 정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로 명백한 퇴보이자 역행이다. 자정기능을 상실한 정부와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견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이 가로막지 않는다면 우리시대의 시대적 역사적 퇴보는 점점 가속화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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