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 막판에 붉어진 '농약급식' 논란과 각종 네거티브 공세에도 불구하고 최종 득표율 56.1%(박원순) 대 43.1%(정몽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로써 박원순 서울시장은 향후 4년간의 임기를 보장받았을 뿐만 아니라 2017년 대선의 가장 강력한 야권후보로 부상하게 됐다. 미리보는 대선전초전의 성격을 띤 서울시장선거는 '미니대선'으로 불리며 지방선거 이상의 의미를 지녀왔다. 따라서 이번 선거 승리로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의원, 그리고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야권의 차기대권 경쟁이 매우 흥미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전혀 시장같지 않은 시장 박원순, 그의 등장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딸의 대학등록금 때문에 허리가 휘는줄 알았다는 수십억원의 자산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몽니사태로 자진사퇴를 했다. '무상급식'의 '무'자만 들어도 발끈하는 이 전시 행정가의 무모한 도박은 그러나 결과적으로 유능한 한 시민운동가를 현실정치로 불러들이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마치 도인을 연상시키듯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이었던 그는 당시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안철수 교수의 '깜놀랄' 양보로 인해 단숨에 가장 강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부상하였고, 그 기세로 2011년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며 서울시장에 취임하게 된다. 


서울시장 취임 이후 그는 이전의 서울시장들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시민운동에 잔뼈가 굵은 시민운동가 출신답게 보여주기식의 전시행정과 치적쌓기용 토목사업과 단호히 결별하고, 시민과의 소통과 교감을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시정에 적극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권위의식과 특권의식을 버리고 낮은 자세로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는 그의 모습은 확실히 전임 서울시장들에게는 볼 수 없었던 낯선 풍경이었다. 

 

그의 낯선 행보에 대한 평판은 확연히 갈렸다. 소탈하고 친서민적인 그의 모습을 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지나치게 포퓰리즘을 의식한 행동일 뿐이라는 비판도 잇따랐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박원순 서울시장에 시정운영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와 격려는 높아져만 갔다. 시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귀담아 듣고 이를 시정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에서 시민들이 진정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과거 전임시장들의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시정운영과는 판이하게 다른 박원순표 시정운영은 이제 서울시민들의 자랑이 되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종북시장'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 다닌다. 물론 서울시민이 붙여준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붙여진 꼬리표다. 그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의 표본군은 의외로 다양하다. 집권여당의 정치인에서부터 정부관계자 및 고위공직자, 언론인, 정치평론가, 방송인에 이르기까지 대놓고 그에게 '종북시장'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심지어 국가기관인 국정원은 그의 2011년 서울시장 당선을 '종북세력'과 연결지어 해석하며 '박원순 서울시장을 제압'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향'이라는 문건까지 만들었다. 실제로 이 문건에서는 박원순 시장을 '범좌파 벨트 구축'의 주역이자 '야권 허브 역할'을 할 인물로 규정하고 '김두관·송영길 등 야권의 광역당체장들과 연대해 대북 교류사업 공조 및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등 야권의 주요 이슈를 시정 현장에서 선동'한다고 적혀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의 이면에는 인과가 존재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특정세력에 의해 '공공의 적'이 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당선되자마자 이명박·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전시행정과 방만한 운영으로 급증한 서울시 부채를 취임 1년만에 약 1조2천억 가량  감축했다. 59만명의 아이들에게는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했고, 공약대로 서울시립대의 반갑등록금을 실시했으며, 두 차례에 걸쳐 서울시와 산하기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근로자 1천54명과 6천2백31명을 순차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메트로 9호선의 기습적인 요금인상도 법적대응도 불사하며 막아내었고, 특혜 논란과 담합 등의 고질적인 비리를 양산하던 민자사업결정과정을 일반시민들에게 공개하기로 전격 결정하기도 했다.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정책으로 구현하기 위한 '정책 워크샵'을 마련해 서울시민의 의사를 정책에 반영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국가유공자의 현실적인 요구가 담겨있는 '서울시 보훈 종합계획', 장애인들을 위한 '장애인 희망 서울 종합계획', 공공의료 정책인 '건강 365', 서울시민의 복지개선을 위한 '서울시민 복지 기준선' 등의 정책들이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 모습을 드러내었다. 시민과의 소통을 통해 시의 정책을 수립해 나가는 것은 이전에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이 밖에도 '반값등록금'에 이어 '반값식당', 저소득층의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한 '저축식당', 노인들에게 저렴한 식사를 제공하기 위한 '추억의 도시락'등 박원순표 친서민 정책도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서울시의 부채를 감축하고, 학생들의 등록금을 낮춰 주고,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 사업의 투명성을 위해 민자사업결정과정을 공개하고, 시민들과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정책을 시정에 반영하고, 서민들을 위한 친서민 정책을 구현하는 것이 '좌파적 선동'이고 나아가 '종북'이라니 참으로 해괴한 논리다. 저들의 논리대로라면 방만한 경영으로 시의 부채는 늘려야 제맛이고, 사학재벌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학생들의 등록금은 인상해야만 하고, 가난한 아이들은 밥한끼마저도 눈치보며 먹어야만 하고, 비정규직은 죽을때까지 비정규직이어야 하고, 민자사업결정은 이해당사자들끼리 밀실에서 조용히 이루어져야만 하고, 정책결정은 시민들 모르게 일방적으로 진행되야만 하고, 친서민 정책은 포퓰리즘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되는 것인가. 생각할수록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분단이라는 비극에 갇혀있는 대한민국은 언제나 '종북'이 문제가 되어왔다. 정권을 잡을 때마다 집권세력이 '종북'을 체제유지와 안정을 위한 최적의 수단으로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정권의 유지와 안녕을 위해서라면 '종북'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붙여진 '종북시장'이라는 꼬리표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좌파는 모두 빨갱이', '국가를 위협하는 불순분자'라는 등식은 박정희 시대나 지금이나 변치않는 수구보수세력의 교본이다. 따라서 죽은 독재자의 그림자가 지배하는 땅 '경북'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인 '종박'이 득세하는 한 '종북'은 언제나 대한민국에서 저들의 대척점에 놓일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러나 서울시민들은 지난 2011년 보궐선거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좌파선동꾼'이자 '불순분자'이며 '제압할 대상' 박원순 서울시장을 선택했다. 그동안 수구보수세력에 의해 '종북시장'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 다니던 위험천만한 인물에게 또 다시 서울시정을 맡긴 셈이다. 그들은 왜 다시 종북시장을 선택했을까? 어쩌면 이 질문의 답을 아주 오래된 속담이 말해주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재선으로 서울시민들은 앞으로 체감할 수 있는 보다 다양하고 직접적인 정책들을 만나게 될 전망이다. 그는 그동안 여러차례에 걸쳐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보궐선거를 통해 보장받은 3년의 임기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재선을 통해 이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고 공언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3년 동안의 서울시정을 통해 예측해 본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의 포부가 서울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특히 75학번 대학동기로서 1994년 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하며 함께 활동했던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과의 정책공조는 매우 기대되는 대목이다.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함께 해왔던 두 사람의 공조는 서울시민을 위한 교육·복지 행정에 엄청난 시너지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박원순 2기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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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작심하고 쓴소리를 좀 해야겠다.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꼽고 눈꼴시려워서 더는 못봐주겠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고 하더니 세상에 무슨 꽃이 이렇게 지저분하고 더러운지 모르겠다. 악취도 이런 악취가 따로 없다. 차라리 하수구 시궁창이 이보다는 더 깨끗해 보인다. 


선거 승리를 위해 경쟁자의 약점과 잘못을 부각시키는 것, 물론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느 정도껏'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허위사실 유포와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는 인신공격 등은, 해서는 안되는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도덕률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최소한의 예의와 도덕률은 이 저급한 막장선거 풍토에서는 도무지 기대할 수 없는 난망함 그 자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타나고 있는 추잡한 작태들을 한번 보자.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부인을 상대로 '출국설, 잠적설, 성형중독설' 등등의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전을 감행하던 사람들이 막상 부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꿀벅은 벙어리가 된 듯이 조용하다. 마치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방송과 언론을 통해 그토록 물어뜯었으면, 자신들의 주장이 거짓이었음이 밝혀진 이상 공식적인 사과나 적어도 유감이라도 표명했어야 했다. 그것이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도리다. 그러나 누구 하나 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책임지라고 읍소하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가 되는 이상한  현실이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의 책임의식이 이모양 이꼴이니 이 사회가 제대로 구동될 까닭이 없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딴지 걸고 있는 박원순 후보의 '스시 도시락' 논란은 또 어떤가. 이 사람은 이제 저렴함과 저급함으로 인생 승부를 보기로 작정한 듯이 보인다. 시멘트처럼 단단히 굳어있는 그 편향적 뇌구조가 급기야 한 인간을 인격 장애에 이르도록 만드는 과정을 우리는 목도한다. 아울러  다양성을 도무지 인정하지 않는 획일화된 사고가 얄팍한 공명심과 결합했을 때 얼마나 반사회적인 폐해를 양산하는지가 이 자를 통해 여지없이 나타난다. 집권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는 상대 후보 부인의 사생활을 궁금해 하고, 자칭 보수논객이라는 자는  도시락까지 걸고 넘어지는 추잡함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구질구질함이 오히려 안쓰러울 정도다. 씁쓸하고 또 씁쓸하다. 


이번엔 정몽준 후보측과 새누리당이 사활을 걸고 있는 '농약급식' 논란을 따져 보자. 정몽준 후보측과 새누리당이 올인하고 있는 '농약급식' 논란은 추잡함과 구질구질함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여기에는 고도의 정치적 기만술과 치밀함이 녹아들어 있다. 문제의 핵심은 '감사원이 지적한 허용치 이상의 농약이 검출된 농산물 생산업자에 대한 내용이, 이를 조사했던 기관인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에서 서울친환경유통센터로 보고되지 않아 공급중단 등의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감사원 역시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지 867개 학교에 납품된 농산물에서 농약이 검출됐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정몽준 후보측은 모든 학교에 납품된 식자재에서 농약이 검출됐다는 식으로 이를 호도하고 있다. 선거판을 흔들기 위해 관련사실을 '침소봉대'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이 문제를 '농약급식 게이트'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공세를 취할 태세다. 마치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 운운하며 어떻게 알았는지 '댓글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던 누군가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들이 과연 학교 급식의 1차 책임자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아니라 교육감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학교급식법 제 19조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 9조에 따라 교육부(교육청)는 농관원에 학교급식에 관한 안전성 조사를 실시할 수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부적합 농가에 대해서는 서울시가 아니라 서울시 교육청에 통보하도록 되어 있다. 감사원은 관련기관 사이의 정보공유가 안된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서울시와 서울시장의 책임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절차와 과정은 무시한 채 이를 오로지 정치쟁점화 하고 있는 정몽준 후보측의 부적절한 행태를 말하고자 함이다. 순리대로라면 이 결과에 대해서 절차대로 이행하지 않은 관련기관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 먼저다. 따라서 정몽준 후보측과 새누리당이 정작 문제삼아야 할 대상은 서울시장이 아니라 현 교육감인 문용린 교육감인 것이다. 그러나 오직 선거승리에만 집착하고 있는 저들에게 이런 기본적인 사실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 결과 서울시장 선거는 정말이지 눈뜨고는 못봐줄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정말 이렇게 까지 해야만 하는가. 이렇게 까지 하면서 선거에 이기고 싶은가. 


우리는 선거를 한 두번 보아온 것이 아니다. 매 5년 마다 대통령 선거를, 4년 마다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를 치루어야 하고, 때때로 보궐선거도 치루어야 한다. 이쯤되면 한 해 걸러 한 번씩은 선거가 열린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럴때마다 이렇게 진흙탕 개싸움을 봐야 하는 건 유권자의 입장에선 정말이지 짜증나고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선출된 인간들이 그에 합당한 역할과 책무를 수행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선거기간 중에 투입된 각종 비용을 뽑아먹기 위해 여러 이권에 개입하고 온갖 특혜와 특권을 물쓰듯 쓰면서, 나눠먹기와 제식구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의 선의에 물을 먹인다. 내세웠던 공약들 역시 언제든 정치적 입장에 따라 없던 일이 되기 일쑤니 사기꾼도 이런 사기꾼들이 따로 없다. 이런 사기꾼들에게 나라살림 맡기자고 매번 이 목불인견의 작태들을 봐야 하는 건지 정말이지 인간적인 회의가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대응했을 경우에 해당된다. 감정적 인간으로 변모했을 경우 어떤 상황이 초래될지는 가늠하기 조차 힘들다. 인간의 감정을 가장 원초적이고 말초적으로 배설시키는 수단인 욕으로 치자면 저들은 이미 죽어도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저들의 행태는 차마 눈뜨고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더럽고 또 더럽고 구질하다. 서울시장 선거, 정말 더는 더러워서 못봐주겠다. 


우리는 언제쯤 선거다운 선거를 치룰 수 있을 것인가. 이를 위한 첫번째 과제는 당연히 저질 쓰레기 정치인들을 걸러내는 일이 되어야 한다. 다시는 정치판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정레기'들을 분리수거해야만 한다. 투표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일뿐 만이 아니라 당선 되어서는 안되는 '정레기'들을 가려내기 위한 과정임을 잊지 말자. 이것 하나만은 절대로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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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 '의'는 성리학이 특히 강조하는 이념이었으며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절대가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모시는 주군에 대한 변치않는 충성심과 불의와 부정을 용납치 않는 의로움이야말로 유학자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습니다. 특히 '충'의 개념은 '효'와 함께 조선시대를 내내 관통했던 유교의 핵심 교리로 남게 됩니다. 


유교를 국교로 삼았던 조선왕조 오백년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사회는 '충성'을 강조하는 관행이 아직까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두차례에 걸쳐 무려 30년 가까이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상명하복을 거스를 수 없는 절대가치로 여기는 군부에게 그 기간은 우리나라의 정치 관료 사회를 권위에 복종하고 절대권력에 충성하는 조직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10여 년의 짧았던 민주정부 집권으로는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충성'을 강조하는 뿌리깊은 군 문화가 우리나라의 정치 관료집단 내에 자연스레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전쟁같은 국가위기 상황에서 최상의 매뉴얼로 작동하는 '충성'의 개념은 국가와 국민의 개념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작동하는 보편적 정서의 범주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국란의 위급함에서나 발현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충성'의 개념이 활개치는 곳은 군이나 조직폭력배같은 엄격한 위계질서와 규율이 요구되는 특수한 집단에서나 나타날 뿐 일반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조금 특수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유교적 전통이 아직도 우리사회 내부에 강하게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군사독재정권의 구습이 정치와 관료집단에 거머리처럼 달라 붙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임진왜란이나 일제로부터의 독립, 6•25 등의 국란상황에서 선조들이 목숨을 버리면서 까지 지키고자 했던 '충성'의 개념을 우러러보며 고귀하게 여깁니다. 여기에는 국가의 존립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국가를 지키고자 했던 선열들에 대한 존경과 경외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선열들이 보여주었던 국가에 대한 충성의 마음은 이제 소개하려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그것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지금 새누리당에서는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예비후보를 가리기 위한 경선이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충성'의 개념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언급한 바와 같이 본질적으로 차원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어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의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김황식 전 국무총리 측은 지난 5일 논평을 통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박심 공방'에  대해 (정몽준 의원이) '박 대통령을 돕기 위해 나선 김황식 후보의 충정'을 비난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서울시장 예비후보 경선에 뛰어든 이후 박 대통령이 자신의 출마를 권유했다고 밝히는 등 '박심'이 자신에게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는 김황식 후보가 '충정'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까지 박 대통령을 향한 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모습에서 선열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의 마음이 떠올랐던 건 이 둘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이 완전히 다르게 읽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자기 목숨을 희생하면서 지키고자 했던 충성의 대상은 '국가'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1960년대 경제개발의 실질적인 주역이었던 이 땅의 노동자들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것이지 독재자 '박정희'를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5공화국의 눈부신 경제성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국민들은 '국가'를 위해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것이지 '권력자'를 위해서 자신들의 피와 땀을 흘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충성하는 자들은 언제나 이같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국가'보다 '사람'에게, '민주주의'보다 '절대권력'에게 우선순위를 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불행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지난 대선에서 자행된 국정원 등 다수의 국가기관이 개입된 선거부정사건이야말로 '사람'에게 충성한 결과가 어떤 비극으로 나타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겁니다.


'사람''국가'가 되지 않는 이상 '충성'의 대상이 결코 '사람'이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충성', '충정' 등의 말은 '국가', '국민', '민주주의' 등의 숭고한 개념에 어울리는 단어이지, '사람'이나 '권력자'에게 바치는 헌사가 아닙니다. 서울시장에 출마하게 된 배경이 박근혜 대통령을 돕기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새누리당 김황식 예비후보의 발언은 그래서 적잖이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그가 자신의 '충정'이 향해야 할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장의 눈과 마음은, 다시 말해서 서울시장의 '충정'은 온전히 천만 서울시민을 향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새누리당 김황식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이런 기본적인 인식조차 갖추지 못한 채 서울시장이 되기 위해 출마했다면, 이는 천만 서울시민에 대한 모독이며 기만입니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1. Favicon of https://chamstory.tistory.com BlogIcon 참교육 2014.05.07 06:36 신고

    구석구석 썩은 내가 진동합니다.
    늙어 추태를 부리는 모습이 역겹습니다.

    • Favicon of https://windyhill73.tistory.com BlogIcon 바람 언덕 2014.05.07 07:42 신고

      그러게나 말입니다.
      양심과 시대흐름은 어디다 내팽게치고
      시류만 쫓아가는지 참,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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