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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당이 지키려는 '표현의 자유'..'이명박근혜' 시절 망가졌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짜뉴스'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응을 시사했다. 이 총리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개인의 사생활이나 정책 현안은 물론 남북관계를 포함한 국가 안보나 국가원수와 관련한 턱없는 가짜뉴스까지 나돈다"며 "검찰과 경찰은 유관기관 공동대응체계를 구축해 가짜뉴스를 신속히 수사하고 불법은 엄정히 처벌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공권력을 동원해 가짜뉴스를 제작·유포하는 사람들을 엄중히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이 총리는 가짜뉴스와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사람들을 "공동체 파괴범", "민주주의의 교란범" 등으로 규정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표현의 자유 뒤에 숨어 여론을 왜곡하고 개인과 사회에 대한 증오를 유발시켜 궁극적으로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국론 분열을 조장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총리가 이날 관계기관에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도록 한 것은 가짜뉴스로 인한 폐해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가짜 뉴스가 양산되면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가짜뉴스는 내용을 교묘하게 편집하거나 억지 논리를 펴면서 특정 개인과 집단을 공격하거나 폄훼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주장의 근거가 조악할 뿐만 아니라 언론보도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객관성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허위사실을 바탕으로 증오와 혐오를 조장하고 확산시키는 가짜뉴스가 범람하면서 그에 따른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최근 <한겨레>가 단독보도한 한 개신교단체의 가짜뉴스 양산 사례는 이를 보여주는 비근한 예다. 제주 예멘난민 논란 당시 무차별적으로 유포됐던 가짜뉴스의 배후에 이 단체가 연루돼 있다는 사실이 <한겨레>의 보도로 확인된 것이다. 논란 당시 예멘 난민들은 온갖 억측과 비방, 인신공격을 받아야 했다. 그로 인한 막연한 공포와 불안감이 사회에 급속하게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예멘 난민들과 관련된 뉴스들은 이 개신교단체의 조직적 활동에 의해 확산되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단체는 동성애 반대, 인권조례 폐지, 차별금지법 반대 등과 관련된 내용도 유튜브와 카카오톡 등에 퍼뜨린 것으로 드러났다. 특정인과 단체, 정부정책 등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빠르게 확대·증폭시키는 가짜뉴스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2017년 12월 28일 JTBC는 "시청자가 뽑은 2017년 최악의 '가짜뉴스'"를 보도했다. 그에 따르면 1위가 '태블릿PC 조작설', 2위는 '세월호 피해자만 과도한 보상 받는다', 3위는 '5·18 당시 북한 특수군이 내려왔다', 4위는 '청와대 직원 500명 탄저균 예방접종', 5위는 '헌법재판소 8인 체제 위헌'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허위 사실을 기반으로 여론을 왜곡시키고 민주주의의 질서와 사회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는 악의적인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가짜뉴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날이 커지고 있는 배경이다. 

가짜뉴스와 관련해 흥미로운 것은 자유한국당의 태도다. 이 총리가 가짜뉴스와의 전면전을 선포하자 한국당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양수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국회의원 등의 최고위 공직에 봉직하는 공인에 대한 비판은 가슴이 아플 정도로 따끔하거나 조금 지나친 면이 있더라도 국민의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해 감수해야 한다"며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이어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충분하게 가짜뉴스는 막을 수 있고 처벌할 수 있다"며 "정부와 여당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처벌규정 양산이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발전과 표현의 자유 보호에 역행한다는 '민주적' 시각을 빨리 되찾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가짜뉴스를 막기 위한 입법조치를 예고한 데 이어, 이날 이 총리가 검찰과 경찰 등 관계기관에 엄정 대응을 지시하자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일리있는 지적이다.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인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고 허용돼야 한다.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은 이상 표현의 자유가 권력에 의해 억압받거나 침해받는 일은 결단코 없어야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고개가 갸웃거린다. 한국당의 과거 행태를 떠올려 보면 표현의 자유를 강하게 역설하고 있는 이 모습이 여간 생뚱맞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오마이뉴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언론 자유가 심각하게 후퇴하고 표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되었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매년 세계 언론자유지수를 평가해 발표하는 '국경없는기자회'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한민국의 언론자유지수는 크게 후퇴한 것으로 나타난다. 참여정부 시절이던 지난 2006년 31위를 기록했던 언론자유지수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47위로 급락했고, 2009년에는 69위까지 떨어졌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50위를 기록한 언론자유지수는 2014년 57위, 2015년 60위로 떨어지더니 2016년에는 70위까지 추락했다. (정권이 교체된 이후인 2018년에는 43위로 반등). 세계 최대의 인권단체인 '국제엠네스티'의 평가 역시 다르지 않다. 국제엠네스티는 미네르바 사건, PD수첩 사태, 제주 강정마을 사건, 세월호 참사 보도, 통합진보당 해산, 백남기 농민 사건 등 논쟁이 뜨거웠던 사회적 현안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인권이 크게 후퇴하고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언론 환경과 인권 상황, 표현의 자유는 한국당 집권 시기를 거치며 이전보다 크게 후퇴했다는 것이 국내외의 일반적인 평가다. 언론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다수 국민이 반대했던 미디어법이 날치기 통과된 것도,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는 박 전 대통령의 발언 이후 다음 카카오톡과 네이버 밴드 등에 대한 사이버 검열과 통제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모두 그들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벌어진 일들이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 와서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고 있으니 그저 황당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가짜뉴스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시사한 정부여당을 향해 한국당이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맞서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터다. 이는 보수적 색채의 정치·시사 채널이 유튜브 등에서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여당의 조치로 관련 채널들이 위축받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규재TV', '신의 한 수', 황장수의 뉴스브리핑', '조갑제TV', '뉴스타운TV' 등 보수적 성향의 유튜브 채널 등은 현재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컨텐츠로 빠르게 구독자수를 늘려가고 있는 추세다. 


그렇다면 이같은 표면적인 이유 외에 한국당이 정부여당의 가짜뉴스 제재 소식에 과거와는 180도 다른 행태를 보이는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지난 9월 25일(현지시간) 방미 기간 중 폭스뉴스와 인터뷰를 가진 문재인 대통령의 다음 발언에서 어쩌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문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 통일을 위해 북한편을 들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 원칙이 반해서 교과서에서 관련 내용들을 삭제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을 빌자면 이 모든 것을 페이크 뉴스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는 사회자의 질문에 "북한과의 어떤 관계 개선이나 통일을 지향하는 것은 역대 어느 정부나 똑같다. 북한과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헌법에 규정돼 있는 대통령의 책무다. 방금 그렇게 비난했던 분들은 과거 정부 시절에는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대박이고 한국 경제에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선전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이제 정권이 바뀌니까 또 정반대의 비난을 하는 것이다"라고 답한 바 있다. 

한국당이 태도를 바꾼 본질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민주주의의 가치를 거스르며 시대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았던 그들이다. 그런 그들이 민주주의의 필수 요건인 표현의 자유를 외치기 시작했다. 정권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변화를 목도하고 있는 셈이다. 정권교체가 만들어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 속에 담긴  함의가 더욱 중요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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