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한국당과 막걸리 회동? 당원과 시민 물 먹이는 바른정당

오마이뉴스


바른정당이 27일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줬다.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다고 할까. 바른정당이 통합이냐, 자강이냐를 두고 내부 갈등에 휩싸여 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건강하고 따뜻한 보수를 재건하겠다며 창당했지만 이후 가시밭길의 연속이다. 조직과 세력 등 모든 면에서 열세인 바른정당은 결정적으로 자유한국당과의 차별화를 보여주는데에도 실패하며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창당의 당위와 명분으로 내세웠던 보수재건의 기세가 꺾이자 통합론이 힘을 받는다. 왜 아니 그럴까.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자강'의 길보다는, 현찰(?)이 확실히 보장된 '통합'쪽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다. 광야 생활 몇개월 만에 이집트 노예 시절을 그리워했던 히브리인의 심정이 바로 그랬을 터.

대표적인 자강론자인 이혜훈 전 대표와 남경필 경기지사의 잇따른 구설은 통합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당의 진로와 관련해 섯부른 예단을 차단하려 애쓰고 있지만, 바른정당 내부에서 자강의 목소리가 급속히 줄어들고 통합의 기운이 꿈틀대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27일 바른정당을 둘러싸고 벌어진 양극단의 모습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바른정당 중앙당사에서는 국회의원·원외위원장 연석회의가 열렸다. 당의 미래와 진로를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진 가운데 이 자리에서 아주 의미심장한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바른정책 연구소가 지난 23일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 면접 조사결과를 발표한 것.

조사결과에 따르면, 당원들은 통합보다 자강을 더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기롭게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잘라야 한다는 것이 당원들의 생각이다. 상식에 입각한 합리적 보수 재건을 위해 창당한 만큼 초심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의 원외위원장 역시 당원들과 생각이 같은 것으로 알려졌다. 명분 없는 통합보다는 더디더라도 국민의 지지를 얻을 때까지 한번 해보자는 것이다.

그날 오후, 한국당과 바른정당 내 통합파 3선 중진 의원들은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을 가졌다. '막걸리 회동'이라 이름 붙여진 이날의 회동은 '멍석 깔기'의 성격이 짙다. 요컨대 통합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 맞설 힘을 키우고 내년 지방선거에 대비하자는 거다. 이철우 한국당 의원과 김영우 바른정당 의원의 주도한 이날 회동에는 의원 13명이 참석했고, 바른정당에서는 김영우 의원을 비롯해 황영철, 이종구, 김영우, 김용태 의원이 참석했다.

이철우 의원은 회동 이후 기자들에게 "보수 우파 통합 추진위 구성 계획을 추석 연휴인 10월11일에 다시 만나 의논하기로 했다"며 "3선 의원들이 한번 더 만나서 출범을 하기로 한 건데, 결론을 내리면 추진위는 어떤 형태로 만들건지를 논의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영우 의원 역시 "보수가 뭉치면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있었고, 이는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나라가 제대로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 가장 크다"며 넌지시 통합의 운을 뗐다.


ⓒ 오마이뉴스


그런가 하면 바른정당 내 통합파의 리더 격인 김무성 의원은 같은날 정진석 한국당 의원과 '열린토론 미래' 정례토론회를 갖고 문재인 정부를 맹렬히 성토했다. 김무성 의원과 정진석 의원이 주축이 돼 출범한 '열린토론 미래'는 보수통합을 위한 전초기지라 평가받고 있는 한국당과 바른정당 의원들의 정책토론 모임이다. 모임의 성격 자체가 '반문재인'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정부정책 비판과 정책공유는 물론이고 연대 및 통합 논의 역시 자연스러운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날 모임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사정 움직임에 두 당이 공동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뜨겁게 분출됐다는 후문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방송 정상화 움직임, 블랙리스트 수사와 화이트리스트 수사,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 수사 등에 힘을 합쳐 대처하자는 것이다. 말이 좋아 초당적 정책토론 모임이지 내용을 뜯어보면 이미 같은당이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끈끈한 연대감을 보이고 있다. 한쪽에서는 통합의 물꼬를 트기 위한 막걸리 회동이 열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문재인 정부에 맞서 연합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두 당이 다시 하나가 되는 날이 머지 않아 보인다.

당원들과 원외위원장들은 이대로 끝낼 수 없다며 심기일전 하자는데, 정작 의원들의 마음은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벌써 콩 밭에 가 있다. 결사항전을 외치는 백성들을 뒤로 한 채 백기투항 하려는 장수 꼴이다. 지난 대선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바른정당 의원 12명이 집단 탈당했다. 좌파집권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속내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탈당극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막장 정치극의 궁극을 보여준 저질 코미디였다. 오죽하면 한국당 내에서조차 "벼룩도 낯짝이 있지"라는 비아냥과 조롱이 나왔을까.

의원들의 집단 탈당은 곧 바른정당의 위기를 의미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바른정당은 발빠른 대응으로 파장을 최소화하려 노력했다. 당 지도부는 유승민 후보를 재신임하는 한편 당의 결속과 화합에 전력을 쏟았다. 그러자 기적같은 일이 연출된다. 유승민 후보를 후원하겠다는 문의가 쇄도하고 당원으로 등록하겠다는 요청이 빗발친 것이다. 평소 하루 50여 건 안팎이던 후원이 300여 건으로 급증했는가 하면, 당원 가입 숫자도 무려 10배나 증가했다. 당이 풍비박산 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이자 시민들이 화답한 것이다.

당시 시민들이 바른정당에 뜨거운 성원을 보냈던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건강하고 따뜻한 보수, 상식에 기반한 합리적인 보수를 재건해달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시민들이 바른정당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했다는 의미다. 색깔론과 지역감정에 의지하는 '거짓' 보수가 아닌 보수적 가치를 추구하는 '참' 보수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창당한지 3개월 만에 감춰두었던 본색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이제는 당명 빼고는 바뀐 게 없는 한국당과의 통합을 위해 본격적인 몸풀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창당 정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당원과 원외위원장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보수를 만들어주기를 기대한 시민들에게 제대로 '물'을 먹이고 있는 것이다. 잘 해보라고, 포기하지 말고 창당 정신을 지켜내라고 기껏 후원했더니 도로 한국당이 되겠다 한다. 이런 걸 전문용어로 '먹튀'라 한다. 웃프다. 고작 이런 모습 보여주려고 창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바람 언덕의 정치 실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