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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차별' 바이러스

ⓒ MBC뉴스 화면 갈무리

 

페이스북을 통해 링크를 하나 건네 받았다. 뭔가 하고 봤더니 '월거지, 전거지, 빌거지, 휴거지'에 관한 내용이다.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주거행태로 친구를 차별해 부르는 이름이라 한다. '월거지'는 월세 사는 거지, '전거지'는 전세 사는 거지, '빌거지'는 빌라 사는 거지, '휴거지'는 임대아파트 휴먼시아에 사는 거지란다.

몇 년 전 영구임대아파트 사는 사람과 일반 분양 아파트 사는 사람을 구분해 '영구와 범생이'로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꼈던 씁씁함과 자괴감이 또다시 고개를 들이민다. 주거형태로 사람을 차별하고, 낙인과 딱지를 붙이는 사회라니. 서늘하고 공포스럽다.

이번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우리사회가 얼마나 공고한 신분제를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강남과 강북, 정규직과 비정규직, 도시와 농촌, 서울대와 지방대,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에 따라 삶의 등급과 사람의 등급이 매겨진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가 역사의 뒷안길로 사라진지 100년도 훨씬 넘었지만 신분(계급)에 따라 사람을 나누는 풍토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 옛날 천민이 양반이 될 수 없었듯, 지금은 '영구'구들과 '거지'들이 도무지 '용'이 될 수 없는 시대다. 한 번 정해진 삶의 등급은 어지간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꼰대들은 '노~력'이 부족하다는 둥,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둥 갖은 쉴드를 쳐대지만 현실에는 영구와 거지들이 넘어설 수 없는 높은 성벽이 존재한다.

사농공상의 구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부와 권력은 대대로 세습되고 가난과 빚은 지긋지긋하게 되물림된다. 뿌리깊게 형성된 신분제의 구습은 다양한 형태로 변형돼 사회 곳곳에 칡뿌리처럼 엉겨붙어 있다.

출신과 서열, 지역과 직업, 주거하는 동네와 집의 크기 등에 따라 삶의 등급이 나뉜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직업이 무엇인지, 월소득이 얼마인지, 재산이 얼마인지, 몇 평에 사는지, 강남에 사는지 따위로 사람의 등급과 격을 구분한다. 신분제 사회였던 고대-중세 사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어 차별하는 태도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 인간을 동물과 구분짓게 하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전혀 발견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있지만, 내게는 그보다 '월거지, 전거지, 빌거지, 휴거지'라는 말이, 그 안에 내포돼있는 폭력이 차별이 더 두렵다.

재산으로, 주거 형태로, 외모로, 성별로, 지역으로, 학력으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꼭 가르쳐야 아는 일인가. 돈보다, 학력과 지역보다, 아파트 평수보다,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이 먼저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