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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청소년 범죄,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 오마이뉴스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의 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국 각지에서 그와 유사한 폭행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강릉, 인천, 서울 등 각지에서 중고등학생들의 폭력사건이 잇따르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어린 학생들의 행위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끔찍한 폭력사건이 연달아 발생하자 그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뜷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에서 진행 중인 '소년법 폐지' 청원에 25만명 가까이 서명했는가 하면, 정치권에서는 법개정 움직임마저 포착되고 있다.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의 CCTV 화면을 보면 잔인함과 폭력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공개된 영상은 조폭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잔혹한 장면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가해 학생들은 철골 등으로 후배를 가격하고 피투성이가 돼 있는 사진을 찍어 친구들과 돌려보는 잔혹함을 보이며 사회를 경악시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같은 끔찍한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도 가해 학생들이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가해 학생들을 엄벌에 처하라는 대중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기세다.

정치권도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사건건 부딪하기만 했던 여야가 오래간만에 의기투합하는 모양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경우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형량 완화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고, 같은당 이석현 의원 역시 미성년자에 대한 처벌 연령을 낮추고 형량은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형법, 소년법,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등 3개 법안을 발의했다.

보수야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도 법개정에 적극적이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6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소년법은 개정할 여지가 있는 것 같다"며 법개정을 시사했고, 김세연 바른정당 정책위의장은 국회의원·원외의원장 연석회의에서 "미성년자라 해도 집단폭행, 흉기폭행 등 특정 강력범죄에 대해선 처벌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볼 여지가 있다"며 법개정에 나서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의장 역시 7일 원내정책회의에서 현행 소년법의 관대함을 지적하며 정기국회에서 법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잇따르고 있는 청소년 강력범죄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이처럼 분명하다. 흉악무도한 범죄를 막기 위해선 처벌규정을 강화해야 하며, 미성년자라 할지라도 강력범죄를 저지른 경우 엄중히 '단죄'해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는 거다. 피해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에게 씻기 힘든 상처와 고통을 안겨준 가해 학생들의 잔혹한 범죄 행위를 떠올려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들이다. 여기에 반성조차 없는 학생들의 태도는 최소한의 관용마저 사라지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가해 학생들에게 분노하고 물러터진 소년법의 처벌 규정을 강력하게 바꾼다고 해서 사회문제로 비화된 청소년 범죄가 줄어들 수 있을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잠시 접어두고 이 사건을 들여다보면 문제의 본질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청소년 범죄의 폭력성과 잔인성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그들의 내면을 파괴한 실질적 요인은 무엇인지, 과연 우리 사회는 저들의 범죄 행위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지 면밀히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세상을 충격 속으로 밀어넣은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나 마찬가지다. 가해 학생들이 후배를 무릎꿇리고 무자비하게 짓밟는 장면은 갑질문화에 신음하는 뒤틀리고 일그러진 사회를 보는 것 같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반성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학생들의 모습에선 사회 지도층의 무책임과 도덕적 해이가 겹쳐진다. 범죄 의도와 수법이 점점 대범해지고 잔인해지는 것 역시 흉폭한 흉악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하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린 학생들이 살인, 상해, 폭력, 성폭행 같은 흉악범죄는 물론이고 부정·부패와 불법·편법 등이 난무하는 혼돈의 사회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현실은 학생들의 인격적 성장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봉쇄한다. 물질만능과 배금주의, 승자독식의 무한경쟁을 지고지순의 미덕인양 강조해온 사회문화를 상기하면 더더욱 그럴 터다. 소년법 개정 움직임에 일견 공감하면서도 강력한 처벌만이 대안인 것처럼 몰아가는 사회의 '공기'가 불편한 것은 그래서다. 가해 학생들을 그렇게 만든 책임이 다름 아닌 이 사회에 있기 때문이다.

'양익준'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확실히 각인시킨 <똥파리>는 '폭력'을 노골적으로 앞세우는 영화다. 사실주의 영화 문법에 충실한 이 영화의 대사와 장면 처리는 요즘 '핫'한 말로 진짜 '실화' 같다. 영화는 욕하고, 때리고, 부수며 자신이 받은 상처를 타인에게 그대로 되갚는, 탈출구 없는 군상들의 처철한 삶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폭력의 희생자가 폭력의 가해자로 변모하는 비극을 통해 폭력이 어떻게 인간의 내면을 파괴하고 해체시키는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보고 자란 상훈(양익준)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용역깡패가 되는 설정은 폭력이 악순환되는 해체된 가정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에서 '폭력'은 세상, 혹은 자아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표출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극단적 광기의 폭력이 만들어지게 된 원인이 바로 가정폭력이다. 이 불편한 진실은 환경이 올바른 인격 형성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환기시켜준다. 특히 자아와 인격이 형성되는 유년기의 경우 가정과 사회의 역할과 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터다.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은 폭주기관차처럼 달려온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나 다름이 없다. 가해 학생들의 폭력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 범죄의 본질을 외면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될 것이다. 황폐하고 살벌한 사회를 만든 책임은 전적으로 기성세대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어른들의 책임은 제처두고 청소년 범죄를 가해 학생들의 탓으로 몰아가는 것은 사건의 본질과 벗어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대안이 될 수 없다.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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