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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전운 휩싸인 새누리, 2차 빅뱅 오나?

ⓒ 오마이뉴스


지난달 27일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 등 비박계 의원 30명이 새누리당을 집단 탈당했다. 지난 2000년대 중후반 무렵부터 시작된 치열한 계파 갈등에도 깨지지 않던 새누리당이, 비정하기 이를 데 없던 '공천학살'과 금도를 넘는 이전투구의 패권싸움 속에서도 끄떡없던 새누리당이 거짓말처럼 쪼개진 것이다.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새누리당 친박계였다.

그들은 비박계의 탈당을 '분열'이라 비판했고, 개혁보수신당(가칭) 창당은 결국 '실패'로 귀결될 것이라 평가절하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비박계의 집단 탈당 직후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개혁보수신당은 당초 발표한 35명을 채우지 못했는데 '인명진·정우택표' 개혁안이 일정 부분 그분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라며 "혁신을 내세운 오늘의 탈당이 실제로는 개인의 정치적 야심이나 정파적 구원, 특정 대선주자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형태로 비춰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힐난했다.

그러나 이는 새누리당이 처한 현실에 비춰 지극히 군색한 비판이었다. '내 코가 석자'인 친박계가 비박계의 집단 탈당을 비난할 처지가 아닌 탓이다. 애초 친박계는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 영입해 당 쇄신과 개혁을 추진하고 이를 통해 분위기 반전을 모색한다는 방침이었다. 정 원내대표가 '인명진·정우택표' 개혁안에 의미를 부여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러나 인 위원장이 영입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비박계가 집단 탈당해 버렸다. 친박계의 구상이 시작부터 틀어진 것이다. 이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당이 풍비박산이 난 이상 새누리당의 출구는 오직 하나였다. 당 쇄신에 박차를 가해 개혁보수신당과의 보수 적통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친박계로서는 개혁보수신당이 선점한 개혁의 이미지를 되찾아 오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조기대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대선주자가 없는 새누리당으로서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영입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입장이다. 새누리당이 인 위원장을 영입해 환골탈태를 외친 것도 반 전 총장 영입을 위한 사전정지작업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친박계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인명진 비대위 체제'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인 위원장의 인적청산에 포함된 친박 핵심인사들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당 내홍이 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인 위원장과 친박 핵심인사들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당 분위기는 외려 비박계가 집단 탈당하기 전보다  더 흉흉해진 모양새다.


인 위원장과 친박계의 맏형 격인 서청원 의원 사이의 밀약설이 터진 지난 4일 새누리당 내홍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인적청산 대상자 중 한사람인 서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짓말쟁이 성직자'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제 당을 떠나 주시기 바란다"며 인 위원장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했다. 당의 쇄신과 재건을 위해 영입한 비대위원장을 불과 며칠만에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날 서 의원은 작심한듯 인 위원장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그는 인 위원장을 "거짓말쟁이 성직자"라 칭하는가 하면, "악성종양 성직자", "정치적 할복" 등의 원색적인 표현을 섞어가며 비난했다. 하루 전 인 위원장이 친박 핵심인사들을 향해 "악성종양", "일본같으면 할복할 일"이라고 비난한 것을 고스란히 되갚은 것이다.

서 의원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인 위원장이 지난달 25일 '대선이 끝나면 제가 노력해서 복당 후 국회의장으로 모시겠다'고 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여기에 인 위원장이 일부 친박 핵심의원들에게 탈당계 제출을 요구한 뒤 나중에 다시 돌려주겠다고 했다며 '위장 탈당' 의혹까지 제기했다. 내일은 없다는 듯 인 위원장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이렇듯 친박 핵심인사들이 결사항전으로 버티는 이유는 절박함에 있다. IMF, 차떼기, 디도스 사건 등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은 그들이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 비박계의 집단 탈당으로 위기 극복의 기반이 되야 할 지지세력의 절반 가량을 잃었다. 게다가 미증유의 사태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지역민심마저 급속히 이반되고 있다. 당을 나가는 순간 '죽는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실 따로 있다. 지난 수십년간 기득권에 머무르면서 체내에 쌓인 지독한 '관성'이다. 그동안 새누리당은 숱한 위기를 겪으며 위기를 탈출하는 '노하우'를 체득했다. 그들은 당의 이름을 바꾸고 비대위를 꾸리고, 이미지를 세탁하는 것으로 번번히 위기를 극복해왔다. 친박 핵심인사들은 이번에도 인 위원장 영입을 통한 당 쇄신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이 인적 쇄신의 일환으로 탈당이 아닌 '2선 후퇴'와 '백의종군'을 염두에 뒀던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러나 정치 지형에 일대 격변이 일어났다. 새누리당의 존재 이유였던 '박정희·박근혜' 신화의 허상이 백일하에 드러났고, 친박계의 수구적·패권적 행태도 재확인됐다. 이에 1000만 촛불 민심은 대한민국의 비정상화를 주도한 새누리당의 해체를 단호히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이는 새누리당이 즐겨쓰던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꼼수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민의 엄중한 경고였다. 그런데 개혁보수신당이 눈치 빠르게 대응한 것과 달리 친박계는 사태의 위중함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시대흐름과 거대한 민심의 파고에 역행하며 기득권에 집착하는 행태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고인 물은 반드시 썩게 돼있고, 새로운 피가 수혈되지 않는 조직은 괴사하기 마련이다. 그동안 새누리당은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당안팎의 목소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오직 기득권에 집착하는 패권정당의 면모만을 보여왔을 뿐이다. 폐쇄적인 의사결정 과정, 불투명한 정당시스템, 극심한 계파 패권주의에 함몰된 정당이 부정·부패, 줄서기, 공천비리, 성추문 등의 구태를 답습하는 건 필연에 가깝다. 이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친박계에 국민적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다.

당초 인 위원장이 제시한 친박 핵심인사들의 탈당 시한은 6일이다. 그리고 8일은 자진 탈당이 없을 경우 인 위원장이 위원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못박은 날이다. 이 기간 동안 모종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의 또 다시 분열할 가능성이 높다. 인 위원장의 당 쇄신과 개혁안이 실패할 경우 의원들의 연쇄 탈당이 점쳐지기 때문이다. 환골탈태에 가까운 당 쇄신과 개혁은 새누리당이 오매불망하는 반 총장 합류의 최소 조건이기에 그렇다. (이와 관련 반 전 총장 측은 새누리당에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 위원장은 지난달 23일 비대위원장 수락 기자회견에서 "제가 택시를 타고 오는데 택시기사가 어디 가냐고 해서 '새누리당 당사 간다'고 했더니 '망한 당 뭐하러 가는냐'고 했다"면서 "그래서 '조문하러 간다'고 얘기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새누리당이 처해있는 현실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그 표현 그대로다. 새누리당은 지금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졌다. 그것도 그들이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퍼펙트 스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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