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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20일 오전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대위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놀랄만한 이야기를 꺼내들었습니다. 지역구 당협위원장들을 '일괄사퇴'시키는 인적 쇄신안을 비대위에서 만장일치로 의결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번 조치로 다음달 1일 전국 253개 당협중 사고 당협 22곳을 제외한 231곳의 당협위원장들이 물러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인위적 인적청산을 해서 특정인이나 특정계파를 지목하는 것은 아니다. 매년 당무감사를 하게 돼 있는데, 절차상 복잡하니 일괄사퇴로 처리한 것"이라며 이번 조치가 인위적인 인적 쇄신과는 무관하다고 밝혔습니다. 통상적인 당무감사 절차와 시기를 앞당긴 것일 뿐 당내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의도적인 '물갈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당안팎에서는 이번 조치가 본격적인 인적 청산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지리멸렬하다고 평가받고 있는 김병준 비대위가 당협위원장 일괄사퇴 카드를 통해서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입니다. 출범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김병준 비대위는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평가에서 드러나듯 한국당은 여전히 시대흐름과 동떨어진 수구냉전적 이념과 인식으로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당 쇄신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인적 청산은 전무하다시피 한 형국입니다. 김 위원장 역시 그동안 인적 쇄신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인위적인 방식의 물갈이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론은 냉정했습니다. 한때 한국당은 원내 5석에 불과한 정의당에게조차 지지율이 역전당하는 등 좀처럼 반등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집권 2년 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의 국정지지율이 하락하는 가운데에서도 한국당의 지지율이 정체 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일자리 대책, 부동산 정책 등 각종 논란이 이어지면서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한국당은 그 반사이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는 습니다. 이는 환골탈태를 공언했던 김병준 비대위의 당 혁신 작업이 그만큼 지지부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 한국당의 행태가 중도층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 위원장의 인적 쇄신안은 이같은 상황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됩니다. 지금과 같은 지리멸렬함이 계속돼서는 당의 미래는 물론이고 김 위원장 자신의 입지마저 심각하게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정치권에서는 김 위원장의 행보가 단순히 비대위 활동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합니다. 오는 12월 원내대표 경선과 내년 2월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는 만큼 김 위원장으로서는 그 이전에 강력한 지도력을 당안팎에 보여줘야만 합니다.
관건은 당협위원장 일괄사퇴안을 둘러싼 당내 내홍을 얼마만큼 최소화시킬 수 있느냐입니다. 당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김 위원장의 결정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습니다. 비대위원인 박덕흠 의원은 일괄사퇴안이 의결되기 전 모두 발언을 통해 "당헌·당규를 보니 당협위원장 일괄사퇴 규정이 없다"며 "지방조직운영 28조에 시·도당 위원장 의견 청취 후 비대위에서 당협위원장을 사퇴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이 규정의 취지는 문제가 있는 당협위원장을 사퇴시킬 수 있는 의미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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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전 서울시장 후보는 보다 직설적으로 김 위원장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19일 페이스북에 "자유한국당에서 가장 먼저 쫓겨나야 마땅한 사람은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다. 253개 당협 위원장을 뚜렷한 이유 없이 한꺼번에 무조건 사퇴시키는 건 폭거다. 이런 비민주적이고 무지막지한 폭거는 세계 정당 역사에 전무후무한 것이다. 이런 불합리하고 무지막지한 폭거가 그대로 통한다면, 자유한국당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존재 의미가 없다"고 맹비난을 쏟아냈습니다.
김 전 후보의 공세는 추석 연휴 기간인 22일에도 이어졌습니다. 그는 페이스북에 "'비상상황에 당협위원장 전원을 일괄 사퇴시킬 수 있다'는 규정이 어디에 있나, '시간 제약 때문에 당무감사 공고도 없이 일괄 사퇴 조치할 수 있다'는 규정이 어디 있나"고 반문하며, "당이 비상상황에 있고, 시간 제약 때문에 일괄 사퇴 조치했다"는 김 위원장의 해명을 적극적으로 반박했습니다. 적법한 절차와 당내 의견 수렴의 과정 없이 김 위원장의 독단대로 일괄사퇴안이 처리됐다는 주장입니다.
이같은 당내의 반발은 김 위원장의 인적 쇄신 작업이 녹록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당내 기반이 거의 없는 김 위원장의 리더십이 확고하지 않은 데다, 인적 쇄신이 결국 '친박-비박' 간의 치열한 권력다툼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기 때문입니다.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여파로 숨죽이고 있는 친박계는 김 위원장 취임 이후 복당파가 당내 주류로 자리잡자 불만이 팽배해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당협위원장 일괄사퇴안을 의결하자 친박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습니다. 인적 쇄신의 화살이 결국 자신들을 향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친박계의 의구심은 김병준 비대위 체제 하에서 복당파가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에 기인합니다. 실제 김 위원장은 당직인선을 통해 복당파인 김용태 의원을 당의 살림과 조직을 책임지는 사무총장으로 전격 발탁했는가 하면, 자신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장에 역시 복당파인 송철호 의원을 임명하며 친박계와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문제는 그동안 인위적인 인적 쇄신이 없다는 김 위원장의 말에 사태를 관망해오던 친박계가 당협위원장 일괄사퇴안 결정에 집단적으로 반발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사실입니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과 구심점이던 최경환(구속)·서청원 의원(탈당) 등의 이탈로 세력이 약화되었다고는 하나 친박계는 여전히 당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친박계가 인적 쇄신에 반발해 김 위원장과 다른 목소리를 낼 경우 한국당은 걷잡을 수 없는 내홍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김 위원장이 꺼내 든 인적 쇄신안이 당권을 둘러싼 '친박-비박' 간의 권력투쟁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에서 당내에 미칠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김 위원장이 예고한 인적 쇄신안이 수면 아래 잠자고 있던 해묵은 계파 갈등을 촉발시키는 도화선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당에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폭풍전야와 다름 없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한국당을 거세게 휘감는 모양새입니다. 일각에서는 2008년 친이계의 '친박 학살'로 시작된 '친박-비박'간의 구원(仇怨)이 김 위원장의 인적 쇄신과 맞물려 대폭발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됩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당은 또 다시 지독한 내분에 휩싸이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최악의 경우 분당 위기로까지 치닫게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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