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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란 특수? 나와는 상관없지 말입니다

이란을 국빈 방문한 박 대통령이 연일 화제다. 방문 첫날 박 대통령의 '히잡' 착용이 누리꾼의 관심을 불러 모으더니, 다음날은 사상 최대 규모의 '세일즈 외교'를 선보이며 화제의 중심에 우뚝 섰다.

북한의 전통적 우방국인 이란으로부터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지지를 얻어낸 것도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역시 최대 52조원에 달하는 사업 수주를 이끌어 낸 경제적 성과에 있다.

청와대는 2(현지시간) 오전 박 대통령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30개 프로젝트에서 총 66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42조원(최대 52조원) 규모의 경제 성과를 거두었다고 밝혔다. 이는 역대 최대규모의 경제적 성과다.

관련 사실은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됐다. 대다수의 언론은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의 의미와 역대 최대규모의 경제적 성과를 달성한 업적을 찬양하는 기사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철도, 공항, 수자원 관리, 석유, 가스, 병원,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MOU 및 가계약이 체결되었고, 이를 통해 최대 52조원 규모의 '잿팟'이 터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



ⓒ 오마이뉴스


그런데  이 장면은 어딘가 모르게 대단히 낯이 익다. 아무리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불과 1년 사이에 두번이나 똑같이 반복되는 장면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솔직히 어떻게 이렇게 비슷할 수가 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정도면 '싱크로율' 99%에 가깝다. 시기와 방문국가, 수주액만 다를 뿐 대통령과 청와대의 멘트, 그리고 이를 기막히게 포장하는 언론의 찬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황이 너무나 똑같다.

박 대통령의 중동 지역 순방은 이번이 두번째다. 그는 지난 2015 31일부터 79일간의 일정으로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UEA, 카타르를 차례로 방문한 적이 있다당시 정부는 에너지, 원전 건설, 플랜트, 투자, 보건 의료, ICT, 건설 인프라 협력, 교육, 농업,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 협력을 통해 양국 관계가 증진되고, 동반 성장 잠재력 역시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은 정부의 발표를 모국의 국민들에게 곧이곧대로 전달해 주었다.

당시 정부가 중동순방길에서 각국과 체결한 수주 규모도 어마어마했다. 특히 쿠웨이트 국왕과의 정상회담 직후에 발표된 수주액은 이번에 이란과 체결한 1단계 사업의 수주액인 42조원과 거의 흡사했다정부는 양국간의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면서 "교통 협력 MOU 체결 등을 통해 우리 기업의 수주가 기대되는 사업은 모두 381억 달러( 419595억원)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금액만 놓고 보자면 당시 쿠웨이트와 맺은 수주액은 이란과 맺은 수주액과 맞먹는다.

박 대통령은 중동 순방 이후 중동예찬론자가 되어 돌아왔다. 가는 곳마다 '2의 중동 붐'을 일으켜 경제위기 극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악으로 치닫던 청년 실업 문제 역시 중동진출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언론을 중심으로 각종 장미빛 전망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당시 정부와 언론이 경쟁하듯 토해냈던 수많은 청사진들이 대체 어디로 사라졌냐는 거다. 중동 산업 재편이 '하늘의 메시지'라 극찬했던 중동 특수의 실체가 뭐냐는 거다.



ⓒ 오마이뉴스


박 대통령의 이란 순방 성과를 깍아내리려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정부와 언론이 발표한 내용의 실체를 따져보려는 것이다. 철도 계약 53억달러, 고속도로 건설 10억달러, 플랜트 공사 20억달러, 해저 파이프 라인 프로젝트 15억달러, 수력 발전소 건설 19억달러 등이 매력적인 숫자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양해각서에 불과한 MOU와 확정되지 않는 가계약이 대부분인 박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는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정부와 언론의 태도다. 정부가 작심한 듯 숫자에 매몰되고 언론이 그 숫자의 의미를 제대로 짚어주지 못한다면 저 숫자는 왜곡되거나 악용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는 이를 입증하는 명징한 사례다.

이명박 정부는 자원외교의 성과를 '뻥튀기'하는데 집착했고, 언론은 이를 열심히 받아 적기에 급급했다. 숫자에 집착하는 순간 본질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가 남긴 교훈이다.

박근혜 정부라고 다를까. 현 정부와 언론의 태도는 이명박 정부 당시와 전혀 차이가 없다. 정부는 의미없는 숫자의 홍보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고, 언론은 정부의 강력한 확성기를 자처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이명박 정부의 끔찍한 악몽이 재현되지 말란 법도 없다.

냉정하게 말해 정부와 언론이 홍보하는 숫자는 박 대통령과 정부의 치적을 위한 도구일 뿐 대다수 서민들의 삶과는 별다른 연관이 없다. 마치 각종 거시경제지표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딴나라 이야기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숫자에 매몰되다 보면 본질은 휘발된다. 우리가 정부와 언론이 남발하고 있는 숫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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