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스타검사다. 그것도 국민적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른바 전국구 스타검사다. 그만큼 뭇사람의 기대와 신망을 한 몸에 받는 검사는 없었다.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골검사요, 원칙과 정의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사람, 바로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그의 삶은 그 자체가 스토리다. 대학 재학 당시 계엄군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에 대한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한 것은 아직도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다. 사법시험 1차 합격 이후 2차 시험에서 9년간 낙방하다 1991년 합격해 검사에 임용된 늦깎이 전력도 범상치 않다.
검사 인생은 더 파란만장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3년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하던 중 검찰 지휘부와 마찰을 빚었고, 이로 인해 좌천성 인사 조치를 당하며 한직으로 밀려났다.
그대로 끝나는가 싶었지만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해 10월 열린 국정감사가 그 시작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국정원 사건 수사 당시) 검사장의 외압이 있었고 그를 모시고 사건을 더 끌고 가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했다. 여당 국회의원의 질의에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답변으로 국감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기도 했다.
'윤석열'은 불신의 온상이었던 검찰조직의 '기린아'였다. 살아있는 권력의 외압에 굴하지 않는 그의 강단과 소신, 원칙에 사람들은 환호했고 뜨거운 성원을 보냈다. 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는 훗날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 된다.
와신상담 끝에 그는 2016년 말 국정농단 의혹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출범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을 맡아 중앙 무대로 복귀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얼마 전에는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스토리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혹독한 고난과 시련을 딪고 부활한 감동적 서사는 검찰개혁에 대한 장미빛 전망이 겹쳐지면서 극에 달했다. 윤석열 총장 체제라면 시대적 과제인 검찰개혁이 이뤄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와 희망이 무르익어 간 것.
그렇게 한 달 하고 십 여일. 희안한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많은 이들의 뜨거운 환호와 기대를 받으며 출범한 '윤석열호'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대검찰청 앞으로 '엿' 소포가 배달되는 등 분위기가 싸늘하게 바뀌고 있다. 검찰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의혹을 광범위하게 수사하고 난 뒤부터다.
검찰이 고위공직자 의혹과 관련해 수사에 착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수사는 조금, 아니 많이 의아하다. 수사 시기, 내용, 방법 등 석연찮은 구석이 한 둘이 아니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민감한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검찰 수사는 상식을 벗어났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청문회를 앞둔 고위공직 후보자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것부터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청문회를 통해 후보자의 해명과 소명을 듣고, 정책과 소신 등 직무 관련 능력을 꼼꼼히 검증하는 것이 먼저라는 반론이 만만찮다. 청문회 이후 그럼에도 의혹이 가시지 않을 경우 사법적 절차를 밟는 것이 순리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검찰은 "국민적 관심이 큰 공적 사안으로서 객관적 자료를 통해 사실관계를 규명할 필요가 크고, 자료 확보가 늦어질 경우 객관적 사실관계를 확인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라며 득달같이 수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는 검찰의 기존 수사 행태와 비교하면 상당한 간극이 있다. 당장 시민들은 세월호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 김학의 사건, 장자연 사건, 버닝썬 사건,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 패스트트랙 관련 사건, 엘시티 사건 등에서는 왜 지금처럼 신속하게 수사하지 않았느냐고 되묻고 있다. 검찰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수사 내용과 방법도 논란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번 수사에 투입된 검사만 30명에 이른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의 수사팀이 특별검사 1명, 특검보 4명, 파견검사 20명 등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규모가 아주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권력형 비리가 아닌 사안에 이렇게 대규모의 수사팀이 꾸려진 것 역시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검찰은 벌써 수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부산대의학전문대학원·서울대·고려대·웅동학원·동양대·한국국제협력·배우자 사무실 등 검찰이 압수수색을 펼친 곳만 해도 벌써 수십 군데다.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법으로 금지된 피의사실이 계속해서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된 문건이나 내용, 수사계획 등이 야당과 언론을 통해 계속해서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문건 내용이 <TV조선>에 보도되고, 조 후보자 딸의 생활기록부가 불법 유출됐다. 6일 열린 청문회에서는 조 후보자 딸의 단국대 논문 파일을 포렌식으로 분석한 자료도 공개됐다.
조 후보자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근무할 당시 버닝썬 유착 의혹을 받고 있는 윤규근 총경과 찍은 사진 역시 이날 공개됐다. 이 모두 검찰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들이다.
이와 관련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청문회에서 "검찰과 본인 외에 아무도 갖고 있지 않을 생기부가 버젓이 돌아다니고 증거인멸 의혹들이 기사화되고 있다"며 "급기야 오늘은 검찰의 포렌식 자료가 청문회장에 돌아다닌다. 검찰 말고 누가 포렌식 자료를 갖고 있나"라고 날을 세웠다.
같은 당 박주민 의원 역시 "청문회를 앞두고 권력 기관이 선택적으로 정보를 흘려 청문회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있다"며 "한국당 주광덕 의원실에서 코링크PE 관련 피의사실을 알고 접근했다는 증언 녹취파일도 있다"고 피의사실이 유포된 데 대해 강한 의문을 표시했다.
피의사실 유출 의혹에 대해 검찰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적극 반박하고 있다. 청문회 도중 의혹이 불거진 포렌식 자료 등과 관련해서도 "확인 결과 언론사가 관련 대학·단체 등을 상대로 자체적으로 취재해 확보한 것"이라며 의혹을 전면 부정했다.
그러나 검찰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조 후보자를 둘러싼 갈등은 이미 정권과 검찰의 전면전 양상으로 비화된 상황이다. 현직 총리와 법무부 장관, 여당 대표와 소속 의원들이 검찰 수사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검찰의 반발 역시 그에 못지 않다. 양쪽이 강대 강으로 부딪히면서 불신의 파편이 서로를 할퀴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장면이다. 윤 총장이 검찰 수장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은 그가 법무부 장관이 유력하던 조 후보자와 함께 검찰개혁에 앞장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검찰개혁이 숙원이던 문 대통령과 조 후보자, 국민적 신망이 높은 윤 총장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섞인 기대였다.
그러나 불과 한 달 여만에 이 기대는 '회의'로, '절망'으로 변해가는 모양새다. (검찰 수사의 의도와 결과를 예단할 수도, 해서도 안 되겠지만) 정치검찰의 구태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윤석열호'의 행보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제로의 현 상황이, 이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얄궃고도 아이러니하다. 시대적 과제를 위해 문 대통령이 발탁한 두 사람이 시선이 엇갈리고 있는 것도, 검찰개혁의 상징인 조 후보자의 운명이 검찰 손에 쥐어진 모습도 그렇다.어쩌면 그 때문일지 모른다. 청문회 도중 이철희 의원이 전한 2003년 3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던 시점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메모가 더더욱 애절하고 뼈저리게 다가오는 이유 말이다.
"거기 보면 인간적인 수모, 대통령 품위, 이런 단어를 적시하며 '불만도 있다'고 적었습니다. '외로이 떠 있는 대통령'이라는 고통스러운 소회도 적었고요. 마지막엔 이렇게 돼 있습니다. '검찰을 지켜주자, 그리고 바로세우자.' 그렇게 대통령이 지켜주고자 했던 검찰이 5년 뒤인 2009년 4월 30일 (노 전 대통령을) 검찰에 출두시켰습니다. 저는 그게 검찰의 민낯이라고 생각합니다"
* 검찰은 청문회 종료를 1시간 앞두고 조 후보자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표창장 조작 혐의로 전격 기소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당사자에 대한 소환 조사가 없는 가운데 이뤄진 검찰의 기소는 지극히 이례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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