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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오민석 판사의 영장기각에 김어준이 고개를 흔든 이유

ⓒ 오마이뉴스


살다보면 이해하기 힘든 상황과 마주치게 될 때가 있다. 살아온 경험과 상식에 비춰볼 때 수긍하기 힘든 그런 일들 말이다. 지난 8일 방송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김어준 공장장도 그런 감정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는 이날 방송 내내 "이해할 수 없다"는 탄식을 연달아 내뱉었다. 법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참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라고도 했다.

그는 오민석 부장판사가 18대 대선을 앞두고 민간인 신분으로 댓글 공작활동에 참여한 양지회(국정원 퇴직자 모임) 소속 전·현직 간부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을 대단히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연신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사유 중의 하나가 증거 은닉인데, 오 판사가 "범죄혐의는 소명되나 수사 진행 경과 등에 비쳐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한 것이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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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기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판사 출신인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지워 증거 은닉 혹은 증거 인멸 혐의로 영장이 청구된 사안에서, 과연 이것을 경미한 사안으로 본 사례가 있는가"라고 반문한 뒤, "증거 인멸 혐의로 청구했는데 증거 가치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고 비판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 역시 영장기각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박 의원은 이날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영장이 기각된 게 2건이다. 하나는 양지회 간부 노씨로 원세훈 전 원장과 동일한 혐의이고, 또 다른 건 양지회 현직간부 박모씨"라며 "박씨 케이스는 범죄혐의가 아예 증거 은닉이다. 혐의 자체가 증거를 인멸, 은닉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영장을 기각한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나, 법리에 밝은 법조인 출신이나 오 판사의 영장기각에 대해 깊은 의문을 표시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나 복잡난해한(?) 법리적 판단은 차치하고라도 이번 영장기각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결정을 비판하는 측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듯이, 범죄 은닉과 인멸의 가능성이 너무도 확연해 보이는 사안에 대해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정원이야말로 증거 인멸의 끝판왕이지 않나?". 영장이 기각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김 공장장은 방송 도중 저렇게 되물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의 진행 과정을 지켜본 이들이라면 모두가 알 터다. 이 사건이 이명박 정권과 국가기관이 전방위적으로 개입된 희대의 정치공작 사건이라는 것을. 증거 은닉과 인멸로 점철된 한편의 조직적인 '범죄 활극'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 오마이뉴스


실제 2012년 12월 꼬리가 잡힌 이후 국정원과 경찰 등이 증거를 인멸하고 은닉한 정황만 해도 한둘이 아니다. 원 원장의 파기 환송심 유죄를 이끌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국정원 녹취록과 SNS 장악 보고서 등도 새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 적폐청산 TF의 내부조사로 새롭게 드러난 부분이다. 댓글공작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양지회 등 민간인 댓글조직 역시 국정원이 따로 관리하던 비밀 조직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감춰진 것들이 더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만든다. 그동안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과정에서 보수정권과 국정원, 경찰과 검찰 등이 보여준 행태 등을 상기하면 그럴 개연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국정원 적폐청산 TF가 밝힌 바와 같이 이번에 발각된 민간인 댓글조직이 국정원 전체 여론조작 조직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이 같은 추론에 힘을 실어준다.

이번 영장기각이 거센 논란에 휩싸이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일 터다. 국가기관이 개입된 정치공작 사건이라는 사안의 중대성 그리고 이미 여러차례 드러난 관련자들의 증거 은닉과 인멸, 은폐의 정황 등을 종합해 볼 때 이번 결정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영장기각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도 들끓고 있다. 특히 오 판사가 과거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영장을 기각했던 일과 이래 저래 말이 많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임명한 영장전담판사라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사법부를 향한 비난이 솟구치고 있다. 공의와 정의에 입각해 누구보다 공정하게 판단을 해야 할 사법부가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영장기각에 대한 각계의 비판이 잇따르자 서울중앙지법은 "공정하면서도 신중하게 구속영장 재판을 수행 중"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영장 기각과 관련해 검찰이 법원에 강한 불만을 내비친 것을 겨냥해 "영장재판 결과에 불만이 있다는 이유로 도를 넘어서는 비난과 억측이 섞인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그러나 법원의 입장표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영장기각 사례가 잇따르면서 사법부의 판단에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사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016년 OECD가 35개 회원국의 사회신뢰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법시스템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27%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조사대상 34개국중 33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사법부 불신 풍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민 불신이 극에 달해있는 낯부끄러운 현실을 사법부는 무겁고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권위와 위상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음주단속에 걸린 운전자에게 '술을 마신 정황은 엿보이나 음주운전을 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운전대를 맡기는 것과 같은 비상식적 판단이 되풀이돼서는 곤란하다. 그런 식이라면, 사법부를 향한 의혹어린 시선이 사라질 리 만무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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