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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얼떨결에 과거 적폐 '커밍아웃'한 자유한국당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이 '커밍아웃'을 선언했다. 자신들이 과거 적폐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다. 커밍아웃은 한국당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방송문화진흥회 보궐이사 선임을 막으려고 시도하는 가운데 터져 나왔다. 내막은 이랬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26일 과천시에 있는 방통위를 찾았다. 방통위의 방문진 보궐이사 선임을 저지시키기 위해서였다. 방통위는 이날 유의선·김원배 이사의 사퇴로 공석이 된 이사 선임을 위해 비공개 전체회의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한국당 의원들은 득달같이 방통위로 달려갔다. 방통위가 구 여권 몫이었던 이사 자리에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김경환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와 이진순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을 선임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방통위를 찾은 한국당 의원들은 이효성 방통위원장과 보궐이사 선임을 놓고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한국당은 보궐이사 후임 인사권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방통위를 압박했다. 사퇴한 이사들을 구 여권에서 추천했으니 보궐이사들의 추천권도 자신들에게 있다는 논리였다. 이는 방송문화진흥회법 제6조 1항 '보궐임원의 임기는 전임자의 잔여임기로 한다'는 내용에 근거한 주장이다. 해당 규정의 잔여임기를 사퇴 이사를 추천한 쪽에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이와 관련 정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이 조항을 예로 들며 추천권이 한국당에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자의적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해당 규정은 보궐임원의 잔여임기에 관한 것일 뿐 그 어디에도 보궐이사의 추천권이 전임 이사를 추천한 측에 있다는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당의 추천권 역시 법률적 근거가 없는 일반적인 관행에 불과할 뿐이다. 실제 방송문화진흥회법 6조 4항을 보면 '이사는 방송에 관한 전문성 및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통위가 임명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한국당 의원들은 막무가내였다. 정 원내대표는 "방통위가 KBS 및 방문진 보궐이사를 선임해서는 안 된다"면서 "오늘 이것이 강행된다면 우리당으로서는 공영방송 장악 시도로 보겠다"고 항의했다. 그러면서 "방통위 결정에 따라서 국회 의사일정 전체를 중단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고 방통위를 강하게 압박했다. 방통위가 보궐이사 선임을 강행할 경우 국회 국정감사 일정을 보이콧 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반면 이효성 위원장은 "정권 교체 이후에는 여당 추천 몫은 바뀐 여당에서 하고, 야당 추천 몫은 바뀐 야당에서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전례가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도 그렇게 했다"며 기존의 관례대로 보궐이사를 선임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이효성 위원장이 예로 든 과거의 전례는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방통위가 KBS 이사 일부를 교체해 정연주 KBS 사장을 퇴진시킨 경우를 말한다. 당시 방통위는 열린우리당 몫으로 추천된 신태섭 이사를 해임시키고 그 후임으로 한나라당 성향의 강성철 부산대 교수를 보궐이사로 선임한 바 있다.


ⓒ 오마이뉴스


한국당의 커밍아웃은 이 와중에 터져 나왔다. 이효성 위원장이 과거 이명박 정권의 전례를 들어 뜻을 굽히지 않자 당시 행태가 잘못된 것이라고 털어놓은 것이다. 박대출 의원은 "이명박 정권에서 그렇게 했으니 그 뒤를 따르겠다는 것인가. 이명박 정권이 적폐라고 하지 않았나. 잘못된 원칙을 상속받으면 안 된다. 적폐를 청산한다면서 자기들 편할 때는 계승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함께 있던 신상진 의원 역시 "이명박 정부 당시 전례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법 원칙이 아니다. 우리가 속했던 정당이 다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못한 것도 많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이 주창하는 것이 잘못된 것을 없애고 올바르게 한다는 것 아니냐. 과거에는 욕했는데 지금 와서 된다고 하면 그것은 적폐를 쌓는 것이다"라며 당시 이명박 정권의 행태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시인(?)했다.


그러나 얼떨결에(?) 이루어진 한국당의 커밍아웃에도 불구하고 이날 방통위는 김경환 교수와 이진순 정책위원을 방문진 이사로 선임했다. 방문진 이사 구도가 여야 '3대6'에서 '5대4'로 역전된 것이다. 이사회가 재편됨에 따라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불신임안 처리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전망되며, 김장겸 MBC 사장 해임안 처리 역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현 여권 추천 인사 3인은 지난 25일 다음날 2일로 예정된 이사회에 고영주 이사장 불신임 결의안 상정을 요청해 놓은 상태다.


이에 한국당은 뿔이 단단히 난 모양새다. 당 차원에서 보궐이사 선임을 강력하게 항의하고 보이콧 압력에, 커밍아웃까지 했음에도 뜻을 관찰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결국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국정감사를 중단하고 국회 의사일정을 거부하는 '보이콧'에 들어갔다. 방통위의 보궐이사 선임이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며 폭거"라는 주장이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국당이 과연 방송장악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지난 9년 동안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무력화시키는 데 앞장섰던 당사자가 바로 한국당이기 때문이다. 이해당사자들인 MBC와 KBS노조가 경영진 퇴진과 방송 공정성 회복을 요구하며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현실 자체가 한국당의 주장이 가당치 않다는 명백한 방증이다. 공영방송의 가치를 훼손시킨 한국당이 방송의 공정성을 거론하는 건 자기 얼굴에 침뱉기나 다름이 없다.


그동안 한국당은 정치권 안팎으로부터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터였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한국당이 여야정 협의체 불참 선언, 이낙연 총리 예방 거절, 추경예산 심의 반대, 인사청문회, 대통령 국회 차담회 거부, 여야 영수회담 거부, 헌법재판소장 표결 불참 등 사안마다 반대만 해왔기 때문이다.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자기들이 할 때는 관례, 남이 할 때는 폭거라는 '내로남불'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김장겸 MBC 사장 체포영장 발부에 발끈해 국회를 보이콧했던 전철도 그대로 밝고 있는 중이다. 그를 통해 방송장악 여론전을 대대적으로 펼치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그러나 분기탱천하고 있는 한국당과 달리 방통위의 이사진 개편이 MBC 사태 해결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달 7일 발표한 'KBS-MBC 경영진 퇴진과 방송 정상화'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 공감한다는 응답이 66.4%로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24.5%)를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절대다수의 국민이 공영방송 정상화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당은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명분 없이 보이콧을 남발하다가는 국민으로부터 '보이콧'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교통방송 TBS의 의뢰로 9월 6일 하루 동안 전국 19세 이상 성인 1만5395명을 대상으로   임의 전화걸기 방식으로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4.3%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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