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장과 회장을 지낸 방우영 고문이 지난 8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생전 언론계는 물론이고 정·관계와 재계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이름을 거론할 때마다 늘 따라다녔던 '밤의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그 대단했던 위세를 잘 묘사해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고인에 대한 추모 열기가 식을줄 모르고 있다. 주류언론은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논조의 기사를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고, 각계각층의 내노라하는 인사들이 고인의 빈소를 찾아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방우영 고문을 향한 애도의 정서는 조문객들의 추모의 변(辯)을 통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인과의 각별했던 인연을 떠올리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수많은 애도의 표현 중에서 유독 필자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것은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의 발언이었다. 안철수 대표는 9일 고인의 빈소를 찾아 "한국 언론사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라고 애도하며 "특히 기자들에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언론의) 독립성 유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것으로 안다"고 높이 평가했다.
ⓒ 오마이뉴스
어안이 벙벙해진다. 가뜩이나 고인을 향한 도를 넘은 추모 열기에 이질감과 혼란마저 느끼고 있던 차에 카운터 펀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다. 아무리 망자에 대한 예의를 소중히 여기는 동방예의지국의 문화적 관습을 감안한다 해도 이 발언은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됐다. 그의 발언이 사실 관계를 완전히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방우영 고문이 한국 언론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족적이 과연 어떤 족적인가 하는 점이다. 만일 한국 언론의 보수우경화를 선도하고 정치 권력과 결탁해 언론 환경을 편파적으로 왜곡시킨 것을 커다란 족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면, 무고한 시민을 총칼로 짓밟은 전두환이 한국 정치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도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기자들에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고 평가한 대목 역시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그는 안철수 대표의 평가와는 지극히 상반되는 행적을 보였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고인은 1975년 박정희 유신독재를 옹호하는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자사 기자 33명을 무더기로 해고시켰던 장본인이었다.
이후 유신정권을 거쳐 전두환 신군부가 들어서자 전두환 정권을 미화하고 칭송하는 기사를 연거푸 내보내기도 했다. 한때 민족정론지라 평가받던 조선일보를 정치권력과 결탁한 전형적인 어용언론으로 만든 것이 바로 고인이었던 것이다.
고인이 언론의 독립성 유지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평가하는 대목에서는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조선일보가 과연 대한민국 언론의 독립성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독립성은 정치권력의 외압과 탄압에 굴하지 않는 용기와 의지의 산물일 것이다.
그러나 고인은 권력과 결탁해 정권의 치부를 비호하고 옹호하는 한편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하는 반저널리즘의 중심에 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고인에 대한 안철수 대표의 평가가 아찔한 것은 이와 같은 사실 관계가 완전히 뒤틀려 있기 때문이다.
ⓒ 연합뉴스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것은 온전히 개별 주체들의 가치판단에 달려 있다. 그러나 고인을 추모하는 것과 평가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안철수 대표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추모와 평가를 동등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망자를 추모하고 기리는 사회 문화적 관습이 그 인물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가로막아서는 안된다. 양가 감정이 개입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특히 정치인이라면 공적 인물의 죽음과 관련해서 이 둘을 더욱 유념해서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자칫 공인에 대한 사후 평가의 선례(先禮)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슬프고 애잔하다. 그러나 그로 인해 공적인 인물에 대한 평가마저 관대해져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방우영 고문에 대한 안철수 대표의 애도의 변은 -그것이 고인의 삶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든, 아니면 평소의 언론관이 반영된 것이든, 그것도 아니면 특유의 기계적 중립에서 비롯된 것이든 상관없이- 대단히 부적절하고 끔찍했다. 그가 차기 대권을 강력하게 꿈꾸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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