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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추석 차례상

ⓒ 뉴시스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 사람들이 어디론가 분주히 발걸음을 옮긴다. 가족을 찾아가는 것이리라. 각박하고 고단한 세상살이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이날은 다르다. 비록 살림살이가 넉넉치 않아도 밤새 이야기 꽃을 피우다 보면 세상살이의 고충과 애환도 잠시 덜어낼 수 있을 터다.


가족이란 본디 그런 것 아닌가. 가는 길이 더디고 몸이 고단하다 할지라도 삼삼오오 둘러 앉아 굶주린 정을 나누다 보면 세상의 근심과 시름이 눈 녹듯 사라질 터. 추석은 제각기 뿔뿔히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그날 아침. SNS로 한 장의 사진을 건네 받았다. '슬픈 추석 차례상'이라는 제목과 함께 덩그라니 놓여진 사진 한 장. 광화문 광장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안에 차려진 차례상이다. 또 잊고 있었다. 잊지 않겠다던 다짐도, 반드시 기억하겠다던 결기도 시간 앞에선 이렇게나 나약하고 무력하다.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아이들 영정 밑에 적혀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세월호 속에 아직 OO가 있습니다'라는 선명한 글귀. 모두 9개다. 아직도 세월호 속에 9명의 사람들이 갖혀 있다는 거다. 그 들은 왜 아직까지 차디찬 바다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걸까. 순간 슬픔이 회한으로, 회한이 분노로 바뀐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2년 하고도 5개월. 어느 따뜻한 봄날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와 함께 집을 나선 사람들이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꽃이 피고 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계절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

2 5개월은 결코 짦은 시간이 아니다. 세상은 하루 전의 일도 기억하기 힘들만큼 정신없이 돌아간다.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아픔과 상처를 지워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인 것이다.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피곤하다고, 이제 그만 하라고, 언제까지 세월호 타령을 할 거냐고' 말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간다. 시간 탓이다. 시간은 이렇듯 변치않을 것만 같은 사람의 마음을 속절없이 뒤흔들어 놓는다.

예전에 썼던 글의 일부를 옮겨 본다.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든 잊혀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우리는 잊혀지는 것을 거부해서도 두려워 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잊혀질 때 잊혀지더라도 잊을 때 잊더라도, 잘 잊혀져야 하고 잘 잊어야 한다. 그래야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고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거쳐 평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우리 사회의 모습은 잘못되어도 한참은 잘못됐다. 잊기 위한 절차와 과정은 생략한 채 '이제 그만 잊으라'고 강제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왜 잊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잊어야 하는가'에 집중해야 할 사안이다. 이를 위해 명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및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한 범국가적인 지원 등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래야만 이 끔찍한 참사의 충격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잊을 준비가 아직 안된 사람들에게 시간이 지났으니 잊으라 한다. 그들이 잘 잊을 수 있도록 아무 것도 해주지 않으면서 이제 그만 잊으라고만 한다."



ⓒ 오마이뉴스


이래서는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가 않는다. 인간이기에 그렇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를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족들의 고통과 신음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역시 같은 이유다
우리 모두는 인간이니까, 감정이 있는 인간이니까, 그로 인해 인간은 다른 종과 차별화되는 것일테니까.

그러나 인간은, 어쩔수 없이, 망각의 동물이다. 시간이 지나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세월호는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제대로, , 기억해 두어야 한다.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제도와 법규는 문제가 없었는지, 관리·감독 상의 문제는 없었는지, 만약 그랬다면 누구의 책임인지, 혹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가려진 진실은 없는건지 꼼꼼하고 면밀하게 살펴보고 기록해 두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이와 같은 사고가 되풀이되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기본적인 것들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유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진상규명을 철저히 하겠다던 대통령은 언제부터인가 세월호의 ''자도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은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지난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면 세월호 특별법을 반드시 개정하겠다던 야당의 다짐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일반 시민들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도 세월호 타령이냐며 세월호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족들을 향해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폭언과 저주를 퍼붓는 사람도 있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는데, 9명의 사람들이 여전히 칠흑같은 어둠 속에 갖혀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데, 그저 그만, 그만, 그만 타령 뿐이다.

그만 했으면 좋은가. 진정 멈추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대통령과 정부, 정치가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라. 추석 명절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망연자실해 있을 유족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라.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차례상'을 받고 있는 희생자들과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9명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그만 타령을 외치기 전에 국가가, 이 사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먼저 행하라. 그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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