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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박근혜 기억 논란, 7시간 행적을 밝혀야 할 이유가 늘었다

ⓒ 오마이뉴스


세밑인 30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 때문에 한바탕 큰 소동이 벌어졌다. 박 대통령의 탄핵심판 대리인인 이중환(57·사법연수원 15기) 변호사가 논란의 진원지였다. 이 변호사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열린 3차 준비절차기일 직후 기자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세월호 7시간 행적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통령께서 여러가지 사건 결재를 많이 하셨고 바빴기 때문에 기억을 잘 못하고 있다"며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의 발언은 지난 22일 1차 준비절차기일 당시 이진성 재판관의 요구에 대리인단 측이 박 대통령의 행적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이 재판관은 "세월호 참사 2년이 지났지만 국민 각자가 자신의 행적을 떠올릴 수 있을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는 날"이라며 "문제의 7시간 동안 피청구인이 청와대 어느 곳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봤는지 시각별로 밝혀달라"고 요구했었다.

헌재의 요구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을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를 제출하라는 것이다. 즉 청와대가 지금까지 해명했던 청와대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행적, 청와대 관계자들의 일방적 진술 등이 아닌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자료를 말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유시민 작가는  29일 방송된 <썰전>에서 "휴대폰으로 전화보고 했으면 접속된 기지국 위치가 나와야 하고, 팩스로 보고를 받았다면 그 수신 팩스 기기의 위치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지만 모든 것이 해명되는데, 여기까지 청와대가 할지 그게 관점 포인트"라고 지적한 바 있다.

현재 다각도로 법률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대리인단 측은 어떻게든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의 행적을 입증해야만 하는 처지다. 3차 준비절차기일을 앞둔 29일 대리인단이 오전 10시부터 약 1시간30분 동안 청와대 위민관 접견실에서 박 대통령과 탄핵심판 준비에 나선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데 세상을 깜짝 놀래킬만한 문제의 발언이 바로 그 다음날 터져나온 것이다.

이는 대리인단 측이 준비 과정에서 실제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나,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합리적으로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리인단 측이 세월호 관련 답변서 제출을 계속해서 미루고 있는 점도 이같은 의구심을 부추기는 요인 중의 하나다.



ⓒ 오마이뉴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의 기억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이 변호사의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시민사회는 시민사회대로 시쳇말로 '멘붕'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밝히라는 각계각층의 요구에 어느 하나 속시원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던 박 대통령이 돌연 기억이 안 난다는 황당한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에서 신물나게 들었던 말이 바로 '기억이 잘 안 난다'는 멘트다. 권력을 틀어쥔 채 온갖 전횡과 갑질을 마다하지 않던 '박근혜·최순실'의 부역자들이 정작 청문회 앞에 서자 모두 기억상실증 환자로 돌변했다. 그들은 구체적인 정황증거를 제시해도 마치 약속이나 한듯 '기억이 잘 안 난다'며 혐의를 부인하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이제는 '기억이 잘 안 난다'는 망각의 증상이 박 대통령에게까지 전이된 모양이다. 다른 날도 아닌 세월호 참사 당일의 7시간을, 벌써 2년이 넘도록 그 시각 대통령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묻고 묻기를 반복하고 있는 사안을, 잊어서도 안 되고 잊을 수도 없는 사건을 이제와서 '기억이 잘 안 난다'는 방어기제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잘 알고 있다. 기억은 유한하다는 사실을. 기억이 갈수록 흐릿해지고 엷어진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기억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어떤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더 또렷해지고 선명해지기도 한다. 기억하고자 하는 내면의 강열한 열망이 그 기억에 채색을 입히고 끊임없이 소환해내는 탓이다.

청와대가 거짓 해명을 일삼고 관계자들이 '모르쇠'로 일관하자 서울대 동문들은 '우리는 기억합니다'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16일 기억을 기록하는 웹페이지를 만들었다. 지난 11월26일 오픈한 이 페이지에는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사연들이 빼곡히 올라와 있다.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날의 일을 정확히 기억해내고 있다. 이들의 기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논란이 커지자 이 변호사는 "기억을 잘 못하시는 부분은 (다른) 소추 사실 중 일부"라며 "(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내용은 오보"라고 해명했다. 이어 "제가 간담회 중 세월호 7시간 관련 일부 오해를 유발한 발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오해를 일으키게 했다면 사과드린다"고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미 엎지러진 물을 주워담으려는 이 변호사의 해명이 군색해보이는 탓이다. 박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허물어져 버린 이 시점에 '오보'냐 '오해'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오보이든 오해이든 이 소동은 '세월호 7시간 의혹'의 실체가 왜 규명되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비근한 예에 불과할 뿐이다. 


작금의 현실은 박 대통령이 세월호 당시의 행적을 기억해도 문제, 못해도 문제인 외통수 상황이다. 켜켜이 쌓인 의혹과 분노를 덜어내기엔 박 대통령이 너무 멀리, 그리고 깊이 와버린 탓이다. 박 대통령과 대리인단은 국민적 분노의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부정의 언어를 사용할수록 상황은 박 대통령에게 '부정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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