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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미래통합당? '도로 새누리당'으론 어림도 없다

ⓒ 뉴시스

 

'자유한국당(한국당)·새로운보수당(새보수당)·미래를향한전진4.0(전진당)' 등 보수진영이 17일 '미래통합당'(통합당)을 출범시켰습니다. 국정농단과 박근혜 탄핵 사태를 거치며 사분오열된 지 3년 만에 보수진영이 다시 한 배를 타게 된 것입니다.

4·15 총선을 두 달여 앞두고 중도·보수 세력을 하나로 규합하는 데 성공했지만, 통합당의 앞날에는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왜 그런 평가가 나오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통합당은 당명과 당색을 바꾸는 등 대대적인 이미지 변신을 꾀했습니다. 그러나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그대로라는 지적입니다. 왜 그럴까요? 통합당은 한국당과 새보수당, 전진당 등 3개 원내정당에 친이명박계 인사와 및 보수성향 시민사회단체, 구 안철수계 인사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런데 당내 주도권은 한국당이 거머쥐고 있습니다. 당 대표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맡았고,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역시 그대로입니다. 지도체제 역시 한국당 일색입니다. 심재철 원내대표, 김재원 정책위의장, 조경태·정미경·김광림·김순례·신보라 의원 등 기존 한국당 최고위원이 8명이 포진돼 있습니다.

무소속인 원희룡 제주지사, 이준석 새보수당 젊은정당 비전위원장, 국민의당 사무총장 출신인 김영환 전 의원, 김원성 전진당 최고위원 등을 지도부에 포함시켰지만 당의 실권을 사실상 한국당이 거머쥔 모양새입니다.

4·15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하게 될 공천관리위원회 역시 기존의 김형오 위원장 체제로 운영됩니다. 당 대표와 원내사령탑, 당의 정책을 총괄하는 정책위의장, 당의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총장, 당내 주요 사안을 협의하고 의결하는 최고위원회의, 여기에 공천을 관리하는 공천위원장까지 한국당이 '꽉' 틀어쥔 셈입니다.

"중도와 보수를 포괄하는 자유한국당과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국민의 지엄한 명령에 화답해 과거를 딛고 차이를 넘어서 미래를 향해 하나로 결집했다. 통합당은 여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보수·중도를 원하는 국민들이 함께하는 대통합 정당으로 발전할 것이다."

세간의 비판을 의식한 듯 황교안 대표는 출범식에서 통합당은 '대통합 정당'이라 강변했습니다. 그러나 통합의 과정과 통합 이후 당권의 재편 흐름을 살펴보면 '한국당' 중심의 흡수통합이라 보는 편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보수 통합의 모양새를 취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당 중심의 야권 재편이라 봐야 하는 것이죠.

더욱이 선거대책위원회가 구성돼 본격적인 총선체제에 들어서게 되면 한국당 중심으로 당이 운영될 개연성이 더 높아집니다. 통합당에 합류한 새보수당과 전진당 등의 당세와 지역기반이 미비하기 때문에 한국당 의원과 시도당위원장 등을 주축으로 선거 체제가 재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이 과정에서 당권과 공천 지분을 둘러싼 통합 주체 간 갈등과 이견이 표출될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습니다. 4·15 총선을 위해 통합 열차에 탑승하기는 했지만, 세력 간 화학적 결합의 후유증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연합뉴스>는 19일 "출범 이틀 맞은 미래통합당..곳곳서 '통합 후폭풍'"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통합당 곳곳에서 파열음이 감지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당내 최대세력인 한국당의 텃새와 당직자 고용승계 문제로 새보수당이 반발하고 있으며, 공천 문제로 김무성 전 의원과 이언주 의원이 충돌하는 등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한국당은 과거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시절에도 공천지분과 당권을 놓고 크게 분열한 적이 있습니다. 2008년 총선과 2012년 총선에서의 '친박·친이' 간의 공천 학살, 2016년 총선에서의 '옥쇄파동' 등 골육상쟁에 비견되는 친박과 친이의 권력투쟁으로 안팎의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당내 갈등과 계파 싸움으로 당은 번번히 휘청거렸고, 결국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탄핵 과정에서 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갈라서게 된 것이죠. 사실 통합 이전에도 한국당과 새보수당은 보수의 가치와 비전을 두고 물과 불처럼 부딪혔습니다.

새보수당의 좌장 격인 유승민 의원은 혁신과 쇄신 없이는 "한국당과의 통합은 없다"고 공언한 바 있고, 통합의 산파 역할을 했던 하태경 의원은 한국당을 가르켜 "청산해야 할 극우"라고 일갈하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러나 총선이 다가오면서 분위기가 급변했습니다. 사분오열된 상태에서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판단 아래 한국당은 보수 통합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특히 당세가 급격히 하락한 새보수당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보수로 노선을 갈아탄 이언주 의원도 안전핀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문제는 문재인 정권 심판을 통합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각각의 셈법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총선 외에 다른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다면 잡음이 잇따를 수밖에는 없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총론에서 합의를 이뤄냈다 해도 각론에 들어가는 순간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총선은 정치생명과 직결되는 '죽고 살기'의 문제입니다. 공천을 둘러싸고 통합주체간 치열한 기싸움이 불가피합니다. 더욱이 공천권과 당권을 한국당이 잡고 있습니다. 어찌어찌 '탄핵의 강'을 넘었다 해도, 그보다 더 어려운 '헤게모니' 싸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죠.

그렇잖아도 일각에서는 통합당을 가리켜 '도로 새누리당'이라는 혹평이 터져나오는 상황입니다. 반성과 성찰, 혁신 없이 '반문재인' 전선 구축을 위해 급하게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는 비판입니다.

국정농단과 탄핵 과정에서 대한민국 보수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한국당과 새보수당은 낡은 보수를 쇄산하겠다고 경쟁하듯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공허한 다짐에 그쳤다는 평가입니다.

한국당은 보수적 가치의 재정립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노선과 정책 등에서 크게 변화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인적 쇄신도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황 대표 취임 전후로는 극우적 색채마저 나타났습니다. 최근에는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창당을 주도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개혁보수를 앞세운 새보수당의 정치실험 역시 실패로 끝이 났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새보수당이 한국당 중심의 통합에 합류한 것이 그 방증입니다. 혁신과 변화 없는 통합에 분명하게 선을 긋던 새보수당이 한국당과 한 배를 탄 것부터가 이율배반인 것이죠.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새보수당의 대주주인 유승민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출범식에 불참했다는 사실입니다. 통합의 물꼬를 열기 위해 동참하기는 했지만, 한국당과는 여전히 시각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주는 대목입니다. 이번 통합이 가치와 비전이 결여돼있는 불완전한 결합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인 셈입니다. 

총선 승리를 위해 하나로 뭉쳤지만 통합당의 앞날은 이처럼 풀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공천권과 당권을 둘러싼 세력 간 갈등이 격해질 수도 있고, 해묵은 계파 갈등이 재연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도로 새누리당'이라는 세간의 비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실제 통합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과거의 새누리당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당명과 당색은 바꿨지만 인물의 면면, 노선과 정책, 선거 전략에 이르기까지 새누리당과의 차별성이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정치를 상품을 파는 행위에 비유합니다. 소비자(유권자)에게 상품(정책, 공약, 노선과 철학)을 어필하고 선택을 받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통합당은 이번 총선을 위해 '보수통합'이라는 선거 전략을 꺼내들었습니다. 이를 위해 당명도 바꾸고 당색도 핑크색으로 과감히 교체했습니다. 상품으로 치자면 이름은 물론이고 겉포장지까지 확 바꾼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내용물까지 바꿨는지는 지극히 의문스럽습니다. 통합당의 전략은 훗날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요. 4월 15일 유권자의 선택이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