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문재인의 깜짝 제안, 자충수 맞습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경제사회적 논란의 거의 대부분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는 대원칙을 위배하는 가운데 발생한다. 사회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저 문장은 영어의 가정법이나 수학의 정석처럼 변치않는 사회적 문법으로 기능하고 있다.

'국가기관의 불법선거개입', '집권여당의 저열한 NLL 공세',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 그리고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인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과거 행적' 등이 모두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면서 벌어졌던 논란들이다.





어제(13) 이와 유사한 헤프닝이 정치권에서 불거졌다. 진원지는 다름아닌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부터였다. 오는 16일로 예정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문재인 대표는 어제 느닷없이 여여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통해 이완구 후보자에 대한 인준여부를 결정하자는 제안을 했다.

솔직히 놀랍고 당혹스럽다. 야당의 대표,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문재인 대표의 입에서 저와 같은 반정치적이고 반의회적인 발언이 나왔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세상에나.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준을 여론조사로 결정하자니, 이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문재인 대표의 제안은 초등학교에서 청소반장을 인기투표로 결정하자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발상이다.

물론 필자는 문재인 대표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아가 문재인 대표가 저와 같은 반의회적인 방식을 제기할 수 밖에 없는 이 나라의 정치현실을 저주한다. 현실적으로 소수 야당이 도무지 말도 안되는 국무총리 후보인 이완구 후보자의 국회 인준을 막을 방법은 전혀 없다. 아마 문재인 대표의 고민은  바로 이 지점에서 극대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의 고민은 국정원, 군 사이버 사령부, 검찰, 경찰, 새누리당,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이완구 후보자의 고민과 그 내용만 다를 뿐, 정상적인 원칙과 절차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그 본질은 대동소이하다. 문재인 대표가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표의 깜짝 제안을 두고 '신의 한수'라고 극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충수'라며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적 판단은 온전히 각자의 몫이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문재인 대표가 실언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몇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이완구 후보자에 대한 여론은 시간이 갈수록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절반이 넘는 국민들이 이완구 후보자의 국무총리 인준을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 수치는 점점 커지고 있는 중이었다. 새누리당 단독으로 본회의를 강행해서 임명동의안을 처리한다면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대표의 깜짝 제안은 오히려 새누리당에게는 역공의 빌미로 작용할 호재다.

예상대로 새누리당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대원칙과 절차를 우습게 아는 그들이 이번에는 그 원칙과 절차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들은 적반하장의 산증인들 아닌가. 역시나 헌법이 거론되고 의회민주주의를 진리인양 부각시킨다. 심지어 민의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비분강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저들의 날선 주장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했기 때문에 반박의 여지가 전무하다.

이를 문재인 대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문재인 대표 측은 논란이 커지자 여론조사 제안은 "정치적 수사"였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문재인 대표 측의 핵심관계자는 "진짜 여론조사를 하려는 뜻은 아니었다" "자진 사퇴사퇴 하라는 국민들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있는 걸 지적하고, 국민들한테 물어보라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어딘가 모르게 군색하다. 문재인 대표의 제안이 실기였음을 보여주기에 딱 어울리는 해명이다.





문재인 대표는 대표취임연설에서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강한 야당", "이기는 야당"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결의를 내비친 바 있다. 그런데 그가 야당 대표로서의 첫 시험대가 될 이완구 후보자의 국회임명동의안 처리를 두고 정공법이 아닌 우회로를 선택하고 있는 모습은 적잖이 실망스럽다. 야당이 처해있는 현실적인 무력감을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그렇다.

비록 실력으로 저지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완구 후보자의 자격없음은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바다. 우리는 드러난, 혹은 드러날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이완구 후보자의 국무총리 임명은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민의를 거스르는 권력은 결국 주저앉고 마는 것이 역사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체제에게 국민들이 원하고 있는 것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선명하고 강한 야당의 모습이다. 나는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리고 문재인 대표가 이 명징한 국민의 요구를 잊지 않기를 진심으로 고대한다. 이 길만이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바람부는언덕의 정치실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