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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명분도 실리도 없는, 한국당의 '강효상' 구하기 대작전

ⓒ 오마이뉴스

 

같은 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에 까칠한 보수언론에서도 잘못된 처사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외교에 능통한 보수인사들 역시 국익을 해치는 부적절한 행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여론마저 심상치가 않습니다.

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외교관으로부터 입수한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을 공개해 물의를 빚고 있는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 이야기입니다.

이쯤되면 출구전략을 고심할 법도 합니다. 그러나 점점 거세지는 세간의 비판에도 정작 한국당과 기밀누설 당사자인 강 의원의 입장은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한미 정상 간 대화 내용을 공개한 것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이뤄진 정상적인 의정활동의 일환이라는 주장입니다. 자신들을 향한 싸늘한 시선에도 한국당과 강 의원은 외려 청와대를 향해 목청을 세우고 있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관권선거 의혹' 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이 모든 사태의 본질은 무능외교"라며 "기밀 유출을 빌미삼아 야당 재갈 물리기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고 성토했습니다. 기밀유출 행위로 도마 위에 오른 강 의원을 감싸안은 것입니다.

강 의원 역시 자기 변호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들이 반드시 아셔야 할 대미 외교의 한 단면을 공개하고 평가를 구했을 뿐"이라며 "지극히 당연한 의정활동을 정부여당이 기밀유출 혐의로 프레이밍 씌우려는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강 의원은 이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제1야당과 저를 향한 이번 집권세력의 공격은 의회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매우 위험한 불장난"이라며 "공포정치와 압제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격정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요약하면 '무능·굴욕외교'의 민낯이 드러나자 문재인 정부가 이를 야당 탄압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들의 주장은 그다지 공감을 얻지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당내는 물론이고 우군이라 할 수 있는 보수진영에서도 강한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죠.

국회 외교통상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상현 한국당 의원은 23일 페이스북에 "당파적 이익 때문에 국익을 해치는 일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라며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외교기밀 누설 사태를 대한민국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으로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동아일보도 24일 사설에서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외교의 대외적 신뢰 상실"이라며 "한건주의 폭로로 국익을 훼손한 것은 분명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국민일보 역시 이날 사설에서 "강 의원은 당시 회견에서 트럼프 방한을 상반기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제 와 구걸이라 비하하는 건 모순"이라며 "기밀을 누설해 법을 어겼다면 누구라도 그 책임을 져야 한다. 범법 혐의가 있는 공무원에 대한 직무감찰은 공무원 탄압이나 인권침해가 될 수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던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도 24일 페이스북에 "강효상 의원의 한미정상 간 통화내용 공개는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을 상종하지 말아야 할 국가로 만드는 행위다.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익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그 내용이 정부를 공격하는 데 정치적으로 유리하더라도 외교기밀을 폭로하는 것은 더 큰 국익을 해치는 범죄행위"라고 작심 비판했습니다.

천 이사장은 또 "강효상 의원의 폭로를 두둔한다면 공당으로서 자격을 의심받을 큰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진영논리나 당리당략의 차원이 아니라 초당적 국익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라며 "강 의원이 문재인 정부를 공격할 소재를 제공하는데 아무리 큰 공을 세웠어도 차기 집권을 꿈꾸는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출당을 선택할 일"이라고 넌지시 훈수(?)를 두기도 했습니다.

외교전문가들도 강 의원의 행위를 한목소리로 비판하는 분위기입니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은 24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간의 면담 내용, 통화 내용은 오랫동안 비밀로 보장된다"라며 "공직자가 보안을 유지해야 될 의무를 가지고 있고 서약을 하는데 대외적으로 특히 정치권에 누설했다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김 숙 전 UN주재 한국대사 역시 2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민의 알 권리라고 하는 것은 수긍이 안 된다"라며 "불법 또는 비법적으로 획득한 것을 공개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전 대사는 또 "후배가 외교관인데, 정치인이 후배의 경력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강효상 의원으로서도 가슴 아픈 일로 내가 한 일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왔는가에 대해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쓴소리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실제 외교부가 30일 한·미 정상 간 전화 통화 내용을 강 의원에게 알려준 해당 외교관에 대해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 김 전 대사의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 오마이뉴스


이처럼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공개한 강 의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솟구치고 있습니다. 한국당과 강 의원은 공익제보에 의한 정당한 의정활동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보수진영에서조차 문제를 제기할 만큼 국익을 해치는 심각한 범죄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론 역시 부정적입니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29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505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해 30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강 의원의 한미정상 통화 공표에 대해 '국익을 침해할 수 있는 불법적 기밀유출이다'라는 의견이 48.1%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정당한 정보공개다'(33.2%)라는 응답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당이 각계의 인식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적절한 방법으로 입수한 외교기밀을 누설하고도 이를 공익제보로 둔갑시키더니, 정부를 향해서는 무능하고 굴욕적인 외교를 했다며 역공에 나서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한국당의 공세는 당내는 물론이고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올 정도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공익제보에 의한 정상적인 의정활동이라는 주장부터가 어불성설이라는 평가입니다. 당장 기밀을 유출한 해당 외교관이 강 의원을 비판하면서 공익제보라는 한국당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습니다.

강 의원의 고교 후배로 알려진 그는 28일 변호인을 통해 배포한 입장문에서 "강효상 의원이 기자회견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고 이를 정쟁의 도구로 악용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더욱이 '굴욕 외교'로 포장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외교기밀을 강 의원에게 넘겨준 경위에 대해서도 "강효상 의원은 분위기만 아는데 참고만 할 테니 정상간 통화 결과의 방향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뭐가 있었냐고 물으면서, 강 의원이 자신만 참고하겠다는 취지로 계속 말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가능성과 관련된 통화 요록의 표현을 다른 표현으로 풀어서 설명하고자 했으나 예정된 업무 일정을 앞두고 시간에 쫓겨 급하게 설명하다가 실수로 일부 표현을 알려주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한국당의 공익제보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입니다.

한국당의 '무능·굴욕외교' 주장 역시 무리한 정치공세라는 반론이 제기됩니다. 강 의원의 폭로 그 어디에도 '굴욕외교'라 할 만한 부분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죠. 게다가 강 의원 스스로가 인정한 것처럼 "일본에 오는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도 방문해달라는 것"은 외교적 '상식'에 속합니다. 그렇기에 강 의원도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은 적극 환영할 만한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반드시 성사되도록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한 것 아닌가요. 

미국 대통령에 대한 방한 요청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있었습니다. 2014년 박근혜 정부는 치열한 물밑 외교전을 펼친 끝에 아시아 순방을 계획 중이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공식 방문을 성사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국당의 논리대로라면 박근혜 청와대 역시 '무능·굴욕외교'를 펼친 셈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평가는 지금과 전혀 달랐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한국당)은 당초 방문 계획에 없던 오바마의 방한이 성사되자 이를 외교전의 승리라며 자축하는 분위기가 역력했으니까요.

황당한 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 외교적 행위가 정권이 바뀌자 갑자기 '무능·굴욕외교'로 둔갑했기 때문이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요청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면 '외교전의 승리'가 되고, 문재인 정부가 요청하면 '무능·굴욕외교'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야당의 '숙명'이라 해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한미공조와 대미외교의 중요성은 그동안 한국당이 입이 닳도록 강조해온 사안입니다. 명색이 공당이라면, 제1야당이라면 국내정치와 외교는 분별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한국당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사사건건 반대와 트집, 발목잡기로 일관해오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랬던 한국당이 급기야 외교안보의 근간을 흔드는 기밀유출 행위마저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계각층의 비판이 말해주듯 이번 기밀유출 파문은 한미공조와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만드는 반국익적 행태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렵습니다. 

그럼에도 한국당은 강 의원 비호에 여념이 없습니다. 자신들이 금과옥조로 여겨온 한미동맹 및 국가안보에 위해를 입혀가면서까지 말입니다. 정당의 가치관과 이념, 정체성이 상황에 따라 널띄기를 하고 있습니다. 국익보다 당리당략에 더 집착하는 한국당의, 너무나 한국당스러운 행태가 웃프면서도 불안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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