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생각하는 바를 언제든지 국민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는데, 이렇게 '국민과의 대화'를 별도로 시간을 내서 한다는 걸 아직까지 이해를 잘 못하고 있다"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의원이 18일 tvN '김현정의 센터 : 뷰'에 출연해 한 말이다. 다음날 열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2019 국민과의 대화, 국민이 묻는다'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그에 대해 입장을 밝힌 것.
탁 위원은 "솔직히 말하면 제가 청와대 안에 있었다면 연출은 안했을 것 같다"며 "국민들을 무작위로 300명 뽑으면 그게 전체 국민과의 대화라는 취지에 부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내용이 공개되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일부 언론이 탁 위원의 인터뷰를 '국민과의 대화 나라면 안했다'는 제목으로 부정적 뉘앙스로 보도하자 소셜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문 대통령 지지자들 일부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탁 위원은 19일 자정 무렵 페이스북을 통해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저라면 어떻게 연출했을지를 묻기에 '저라면 그 연출은 안 했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며 전날의 인터뷰를 상기시켰다.
탁 위원이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의 취지는 그 다음에 나온다. 그는 "언론과 야당은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국민들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대통령을 두고 틈만 나면 소통 부족이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와대가 직접 국민청원을 받고, 각본 없는 기자회견을 하고, 많은 간담회를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고, 가장 많이 야당 대표들을 만나고, 소통수석실이 운영되고, SNS 계정을 통해 국민들의 말을 듣고 수시로 관련된 보고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무작위로 질문자를 선정하면 중복과 질문 수준에 이견이 있을 것이고, 참여 대상자를 직접 고르면 짜고 했다고 공격할 것이 자명하다"며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만약 '국민과의 대화'를 저보고 연출하라면 막막했을 것"이라는 부연했다.
요컨대, 대통령의 소통 의지가 높고 소통할 수 있는 여러 채널들이 가동되고 있는 마당에 굳이 국민과의 대화를 따로 기획·연출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 아닌게 아니라 연출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떤 돌발 질문이 나올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국민과의 대화'가 부담스럽기 이만저만한 것이 아닐 터다.
게다가 시기적으로도 대통령에게 유리할 것이 전혀 없는 민감한 시국이 아닌가. 최근 임기의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는 정치·경제·외교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
야당의 비협조와 뚜렷한 반대 기조 속에 정치는 갈등과 반목, 대립을 무한 반복하고 있다. 전세계적인 저성장 기조 속에 경제 지표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소미아 종료와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한·일', '한·미'관계 역시 긴장 속에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업적으로 평가받던 남북관계 역시 교착 국면에 빠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소통을 위해 마련된 '국민과의 대화'가 외려 대통령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 더구나 각본과 연출이 없는 이번 행사는 대통령의 얼굴 표정이나 감정 등이 실시간으로 노출되는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시기적으로 보나 내용적으로 보나 위험 부담이 너무 큰 행사인 것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이같은 위험을 감수하고 '국민과의 대화'에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탁 위원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내다봤다. 그는 "모든 우려와 예상되는 폄훼에도 대통령이 왜 국민과의 대화를 하는지 알 것 같다"며 "어떤 질문도 그 수준과 내용에 상관 없이 당신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중을 들여다 본다"고 설명했다.
종합해보면 어떠한 꾸밈도 없이 있는 그대로, 국민들과 의견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갖겠다는 뜻일 테다. 이런 탁 위원의 전망은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19일 저녁 8시 MBC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 '2019 국민과의 대화, 국민이 묻는다'에서 문 대통령은 낮은 자세로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타운홀 방식'(주제에 관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토론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문 대통령은 53:1의 경쟁률을 뚫고 자리한 300명의 국민 패널과 다양한 분야와 이슈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관심이 집중된 첫번째 질문의 기회는 지난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박초희 씨에게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첫 질문의 기회를 박 씨에게 주도록 국민패널에게 양해를 구해 눈길을 끌었다.
마이크를 잡은 박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저희 유족들은 국민청원을 통해 다시는 이런 슬픔이 생기지 않게 막아달라고 외쳤고 기자회견을 수도 없이 했다"며 "아이들의 이름으로 법안을 만들었지만 단 하나의 법도 통과하지 못한 채 국회에 계류 중이다"고 흐느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어머니가 보시는 가운데 사고가 나서 더더욱 가슴이 무너질 것 같다"고 위로한 뒤 "스쿨존 횡단보도는 말할 것도 없고 스쿨존 전체에서 아이들의 안전이 보호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자체와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첫 질문 이후 문 대통령과 국민패널은 다양한 주제와 의제들을 놓고 의견을 나눴다. 지소미아 종료, 남북관계, 북미관계 등 외교-안보 현안을 비롯해 부동산 문제, 사교육비 문제, 최저임금 인상, 고용불안 등 경제 이슈, 조국 사태와 검찰개혁, 성 불평등 문제, 다문화 가정과 탈북민 정책 등 정치·사회 현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심장하게 봤던 장면은 문 대통령이 조국 사태 및 검찰개혁과 관련해 갑론을박이 뜨거운 윤석열 검찰총장을 여전히 신뢰하고 있다고 밝히는 부분이었다.
문 대통령은 "조국 전 장관의 문제는 그를 장관으로 지명한 취지와는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갈등을 주고 분열하게 한 것은 정말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다시 한 번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검찰이란 조직을 위한 기관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나야 하고, 민주적 통제 장치가 강화돼야 한다"며 "검찰 내부 개혁에 대해서 윤석열 총장을 신뢰하고 있다" 밝혔다.
조국 사태가 야기시킨 엄청난 후폭풍에도 불구하고 윤 총장에 대한 신뢰를 드러낸 것은 원칙을 강조해온 문 대통령의 평소 소신과 지도자로서의 품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평가할만 하다.
문 대통령이 인사 문제를 비롯해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 논란, 일자리 창출 등 경제 분야 등에 대한 비판에 귀를 기울이는 장면도 이채로웠다. 그간 국민과의 소통 면에서는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던 문재인 정부지만, 인사와 경제, 국민통합 부분에서는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문 대통령이 정부 정책을 향한 질책과 부정적 여론을 진솔히 경청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비판에 더욱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변화는 겸허한 자세로 현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국민패널의 질문에 막힘없이 의견을 털어놓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말은 사고의 반영이다. 논리 정연한 화법으로 명료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누구처럼 '번역기'가 필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히 돋보였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시간이었다. 100분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뜨거운 열기를 반영하듯 이날 행사는 예정된 시간보다 17분 정도 더 길게 진행됐지만 국민패널의 목소리를 다 담아내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행사 막바지에 이르러 뜨거운 질문 열기에 방송이 다소 산만하게 진행된 것도 옥의 티라면 티였다.
문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우리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같은 방향으로 계속 노력해나간다면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과 희망을 드릴 수 있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진정한 소통은 상대를 향한 이해와 배려에서 출발한다. 보수야당과 일부 언론의 지적처럼 '국민과의 대화'가 보여주기식 '쇼통'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려면,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미처 풀리지 않은 궁금증과 아쉬움은 계속된 소통 행보로, 그리고 성과로 문 대통령이 채워넣어야 한다.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 그것이 문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 나섰던 이유이자 의미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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