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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의 거부권과 새누리당의 조폭문화

지난 주 세간의 이목은 온통 청와대를 향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를 요구하는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하지 않음으로써 메르스 사태로 바닥을 치고 있는 지지율을 반등시키고 정국 주도권을 찾아올 극적인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유연한 정치력을 박 대통령에게 기대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발언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수준의 감정까지 드러내며 정계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특히 새누리당과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쏟아낸 분노는 새누리당을 발칵 뒤집어 놓을만큼 직설적이었으며 거칠었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반응하는 새누리당의 모습은 매우 흥미롭기 그지 없다. 대통령이 진노하자 심기를 어지럽힌 책임자를 응징하겠다며 새누리당 내의 친박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이 모습이 마치 1990년 대 후반 이후 장르화에 성공한 조폭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들은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사퇴를 압박하는 것도 모자라 정계은퇴까지 주장하고 있다. 손에 무기만 들려 있지 않을 뿐 그들이 쏟아내는 말들은 조폭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충성 경쟁하듯 자신들의 손으로 뽑아 놓은 원내대표를 대통령의 심기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찍어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머리 숙여 거듭 용서를 구하는 유승민 원내대표의 모습 역시 조폭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전까지 유승민 원내대표는 조심스럽게 사태를 관망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는 당 안팍의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회법 개정안의 취지와 당위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소신은 박 대통령의 진노 앞에서 벌거숭이처럼 무장해제되어 버렸다. 대통령이 자신을 '배신자'로 규정하며 심판과 응징의 뜻을 표명하자 그는 즉각 무릎을 꿇으며 용서를 빌었다. 이같은 모습은 '대통령-여당 원내대표'의 관계라기 보다는 '보스-부하'라는 설정이 더 자연스럽다. 





1인 보스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을 이끄는 보스의 의중이다.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보스의 뜻이 정해지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이 그 바닥의 생리다. 보스의 뜻이 곧 법이자 진리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도 조폭의 그것과 아주 유사하다. 박 대통령의 심기에 거슬린다는 이유 하나로 여야가 심사숙고 끝에 합의한 국회법 개정안이 무산될 위기에 처해졌고, 160석을 거느린 새누리당이 폭탄을 맞은 듯 크게 술렁거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원내 1당의 원내대표가 대통령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는 실정이고, 김무성 당 대표 역시 대통령의 눈치보기에 여념이 없다. 모두 '정상'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비정상'인 모습들 뿐이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과 관련해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 하나는 새누리당 내부에 지독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권위주의에 대한 집착과 그들의 낡고 고루한 비민주적인 정당체계다. 3김 체제가 끝난 이후 정당 정치의 큰 화두 중의 하나는 당내 민주화였다. 정당 정치의 발전과 성장은 정당의 민주화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개화하기 시작한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의 시대상에 걸맞게, 당내 민주화는 여야 할 것 없는 정치 정당들의 시대적 과제이자 소명이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이 김대중 이후 1인 보스 체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완전하지는 않지만 끊임없는 당내 민주화를 추진해 왔던 반면 새누리당은 이회창 이후 오히려 '친이'와 '친박'의 지독한 권력투쟁 속에 1인 보스 정치를 더욱 공고히 해왔을 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 때 '소장파'라 일컬어지던 새누리당 내 개혁세력들도 '친이'와 '친박'의 피터지는 권력 싸움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급기야 이제는 당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개혁적 보수라고 평가받아온 유승민 원내대표마저 '친박'의 노골적인 충성경쟁 속에 도려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당내 민주화라도 이루었다면 이는 상상하기 힘든 장면 장면들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이후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퇴보했다고 한탄하고 있다. 당내 민주화라는 시대적 소명을 도외시한 채  '친이'와 '친박'이라는 독점적 권력체제를 추종해온 비민주적 정당이 원내 제1당으로 굳건히 서 있는 나라, 비민주적 정당이 비민주적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나라에서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이에 반응하는 새누리당의 내홍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역시 세상에 원인없는 결과란 없는 법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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