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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긴급조치 떠오르는 경찰의 전단지 대응문건

'헌법의 최고 이념은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이다. 정부에 대한 비판 일체를 원천 배제한 긴급조치 1, 2호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 특히 집권세력에 정치적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자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국가 안전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의 핵심적 보장영역 안에 있는 행위다. 대통령긴급조치 1, 2, 9호는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방법의 적절성이 인정되지 않고,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며 참정권과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 및 신체의 자유,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해 모두 헌법에 위배된다'





지난 2013 3 21일 헌법재판소는 박정희 유신독재시절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국가폭력이었던 긴급조치 1, 2, 9호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렸습니다. 1974 1월 어느날 갑자기 선포된 긴급조치 1호와 2, 그리고 1975 5월 선포된 긴급조치 9호가 국가의 정상적인 공권력 행사였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만들어낸 이 흉물스런 괴물이 헌재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까지는 무려 40년이 소요되어야만 했습니다. 이날 헌재는 40년 동안이나 묵혀 있던 박정희 유신시대의 흉상들 중 하나를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준엄하게 단죄했습니다. 만시지탄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잘못된 것을 인정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가 아직 이 사회에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헌재의 긴급조치에 대한 위헌판결에서 특히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집권세력에 정치적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자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국가 안전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의 핵심적 보장영역 안에 있는 행위다'라고 명시한 대목입니다. 헌재는 국민들이 집권세력에 대해 정치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의 정치적 자유의 영역 안에 있는 행위라고 해석했습니다. 국가가 이를 간섭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대한민국 최고의 헌법기관인 헌재가 분명히 명시한 겁니다.

그런데 헌재가 시민의 기본권, 그 중에서도 특히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가폭력의 부당성과 위법성을 분명하게 적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공권력을 남용하며 시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유신시대의 상징인 긴급조치에 철퇴를 내렸던 헌재의 위헌판결을 무색케 만드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관용구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님을 실감하게 됩니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고 풍자한 전단지가 살포되고 있습니다. 전단지는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파기', '세월호 참사', '공안정국 조장', '서민증세' 등 박 대통령과 정부의 국정운영을 비판하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이는 시민들이 집권세력의 실정을 비판하고 정치적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지극히 자연스런 행위입니다. 그러나 시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가 이 정부에서는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드러났습니다. 경찰이 시민들의 전단지 살포와 유인물 유포에 대응하는 '처벌 법규와 대응 요령' 문건을 만들어 일선 경찰서에 내려 보낸 것으로 확인된 것입니다.

문건에는 전단지 살포 유형을 빌딩 옥상에 올라가 살포하는 경우, 노상에서 무단으로 살포하거나 시민들에게 배포하는 경우, 건물노상 등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는 경우 등 세 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의 상황에 맞는 경찰의 대응 방법과 처벌 법규가 상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경찰 상급기관에서 내려보낸(경찰청과 서울지방경찰청에서는 부인) 이 문건은 유신헌법 비방과 유언비어 날조 및 유포 행위 등을 금지하는 긴급조치 1호와 2, 9호 등의 현대판 'Version'입니다. 40년 전 시민권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박정희 유신시대의 악법이 박근혜 시대에서 다시 부활하는 순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 유신독재시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정치에 입문하게 된 배경이 아버지 시대에 대한 왜곡과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기 위함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독재는 민주주의와는 대척점에 있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유신헌법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것으로 탄생했습니다. 독재와 유신헌법의 불가피성을 강조해 왔던 박 대통령에게 민주주의와 시민의 기본권은 거추장스럽기만 느껴질 것입니다. 
아버지의 유신독재 통치스타일을 고스란히 보고 자란 박 대통령의 철학과 가치관 속에 민주주의와 헌법가치 등이 온전히 뿌리내리기란 애시당초 불가능했습니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에서 시민들의 정당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고 이를 억압하는 장면들이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필연에 가깝습니다. 대통령의 모습을 희화한 작가들이 수사를 받고대통령을 비난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처벌을 받고대통령의 독단적 국정운영을 풍자한 개그프로그램이 외압으로 방송되지 못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납니다급기야 독재국가에서나 있을법한 '자기검열'이 모습을 드러내고, 대선 TV토론에서 했던 박 대통령이 저주가 현실이 되어 시민들이 무서워서 댓글조차 달 수 없는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버지와 딸이 집권하는 동안에 벌어지고 있는 이 그로테스크한 풍경은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결국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이겠죠. 그리고 배운 게 도둑질입니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을 'Dictator'로 풍자하거나 누드 그림을 그리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뿐만 아니라 오바마는 심야 토크쇼의 비판과 풍자의 단골메뉴이기도 합니다그러나 이를 국가기관이 수사하거나 조사를 벌인다거나 외압을 행사하는 일 따위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다들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죠대통령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죄가 된다면 그 나라는 민주공화국이라는 타이틀을 단연코 내려놔야 할 겁니다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대통령을 욕함으로써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시민권이 크게 위축되고 억압받는 시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워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20세기 권위주의가 판을 치던 시대가 아닙니다. 대통령은 시민의 비판에 항상 귀를 열어두어야 합니다. 대통령을 비판하면 왜 안될까요. 이 질문이 필요하지 않는 시대가, 이를 문제삼지 않는 대통령이 이 나라에 하루 빨리 귀환하기를 고대합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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