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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야당은 그동안 대통령의 2선 후퇴와 정권 이양을 요구하면서도 정권 퇴진 운동에는 선뜻 나서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로 인해 여론의 눈치만 살피는 야당의 전략부재에 대한 비판이 쇄도했다. 지난 8일 박 대통령의 국회추천 총리 제안에도 "우린 함정에 빠졌다"(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대통령에게 있던 책임을 야당에 떠안긴 대통령의 기가 막힌 한 수"(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라며 당황해 했던 그들이었다.
그랬던 야당이 전열을 재정비했다. 먼저 야 3당 대표는 9일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대통령의 제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거부했다. 이어 12일 장외촛불집회에 참석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의당은 아예 그동안 금기시해왔던 대통령 퇴진을 당론으로 정했다. 이같은 태도 변화는 야당이 앞으로 보다 강력한 정권 퇴진운동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민주당의 10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시국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들이 분출됐다. 당장 하야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강경론과 아직은 아니라는 신중론이 엇갈리는 가운데 당 분위기는 점차 강경 투쟁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이미 민주당은
장외촛불집회가 열리는 12일까지 대통령의 2선 후퇴 선언이 나오지 않는다면
정권퇴진 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공언해 온 터다. 당 내부에서도 전략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함께 촛불민심에
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은 만큼 12일 대규모 촛불집회를 계기로 본격적인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설 공산이
크다.
국민의당은 민주당보다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당의 분위기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이끌고 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지난 2일 박 대통령의 개각과 관련해 국회에서 긴급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 당신에게
더 이상 헌법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 당신에게 더 이상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을 권한은 없다"고 일갈한 뒤 "박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라"라며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9일에도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회동을 통해 "가장 빨리 혼란을 수습하는 방법은 박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이라며 그보다 먼저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 박원순 시장과 뜻을 함께 하기로 하는가 했다. 이밖에도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 운동에
나서는가 하면, 12일에는 이례적으로 촛불집회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신중론을 유지해왔던 박지원 비대위원장 역시 강경 모드로 돌아섰다. 그는 10일 열린 제1차 중앙위원회 모두 발언에서 "12일 집회는 우리 모두가 참여해서 이번이 우리 국민의당의
마지막 장외집회가 되도록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줄 것을 촉구한다"며 각을 세웠다. 그는 이어 "단군 이래 이렇게 불행하고 추잡한 대통령을 우리는 가져본 적이 없다"며 박 대통령을 강하게 성토하기도 했다. 국민의당은 이날 회의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퇴진 촉구를
당론으로 정해 향후 적극적으로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설 것임을 공식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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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야당이 정권 퇴진 운동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성난 민심을 더 이상 거역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국적으로 타오르고 있는 촛불민심은 이미 박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대통령 지지율 5%, 하야 여론 60%의 의미는 이 정권의 수명이 다했다는 명징한 신호다.
더욱이 민심의 요구는 대통령의 퇴진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병폐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와 혁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야당이 이와 같은 거대한 민심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치의 본령은
결국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현실정치에 반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여당의
입장 선회는 대통령의 변화가 기대난망인 탓도 있다. 그동안 야당은 궁지에 몰린 박 대통령에게 정치적 타협안을 제시해 왔다. 국회총리 추천, 대통령의 2선 후퇴와
거국내각구성 등을 통해 퇴로를 열어준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권력유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국회와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를 지명하는가 하면, 총리 추천을 국회에 제안하면서도 2선 후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하야와 탄핵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권력에 대한 집착을 보인 것이다.
권력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확인한 이상 야당의 입장 변화는 불가피했다. 여기에 제도권 안에 머물면서 촛불민심만 살피는 야당을 향한 국민적 불만도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민심과 괴리된 정치는 필연적으로 저항을 부르게 마련이다. 전국을 달구는 촛불이 100만을 향해 나아가는 이상 야당이 언제까지 미온적으로 나갈 수는 없었을 터다. 압도적인 촛불민심이 야당의 각성을 이끌어낸
것이다.
야당이 강경대응으로 전략을 수정함으로써 박 대통령의 입장은 더욱 곤란해지게 됐다. 민심과 완전히 유리된 박 대통령에 대한 퇴진 요구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정권 퇴진은 헌정 중단과 국정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새누리당의 주장도 박 대통령의 존재 자체를 국정 공백과 국정 혼란의 근원으로
규정하고 있는 민심의 성난 파고 앞에서 더없이 무력하게만 느껴진다. 민심의 거대한 바다에 한 발
더 깊숙이 다가간 야당, 박 대통령의 모래시계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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