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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노회찬이 폐지하려던 '특활비', 민주당과 한국당이 살려냈다

"참여연대 자료만 보면 국회사무처가 어느당에 얼마씩 나눠줬는지만 있고 그 돈이 어떻게 사용됐는지는 없다. 국민 혈세로 이뤄진 특수활동비가 어떻게 사용됐는지 모르면 착복을 했든 횡령을 했든 묻고 따질 수가 없다. 대법원이 국회 특수활동비 정보를 공개하라고 한 것은 단순히 비공개를 공개로 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 비용의 존재 근거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수활동비를 투명하게 하라는 것은 그것을 폐지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달 5일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시 뜨거운 감자였던 국회 특수활동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요컨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경비인 국회 특활비를 더 이상 이대로 존속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회찬 의원이 저렇게 성토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앞서 노회찬 의원은 6월 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대법원이 특수활동비 내역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는데 이는 국회에 특활비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라며 "오늘 4월, 5월, 6월 세 달에 걸쳐 교섭단체 원내대표로 수령한 특활비 전액을 반납하고자 한다"고 전격 선언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교섭단체 지위를 유지하고 있던 '정의와 평화의 의원 모임' 원내대표로 3개월 동안 활동하면서 매달 천만 원 이상 되는 특활비를 수령했다고 밝혔었다. 그런데 그는 그 돈이 정상적인 '돈'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수사기관이 아닌 국회가 특활비를 편성해 국민세금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노회찬 의원이 불을 지핀 국회 특활비 문제는 이후 국민의 열띤 호응을 받으며 정치권의 뜨거운 화두가 됐다. 특히 청와대 국민소통 광장 '국민 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특활비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잇따르는 등 격한 논쟁이 이어졌다. 


오마이뉴스


특활비 폐지를 향한 노회찬 의원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특활비를 반납한 뒤 그는 한 달 여만에 국회 특활비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시켰다. 그는 "국회의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예산 집행을 차단하고, 국회 예산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자 한다"며 개정안을 발의한 취지를 설명했다. 


의원들의 쌈짓돈이라 불리던 특활비 폐지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은, 그러나 노회찬 의원이 발의한 마지막 법안이 됐다. 그로부터 며칠 뒤, 노회찬 의원은 거짓말처럼 유명을 달리했다. 그런데, 그가 남겨놓은 이 법안은 끝내 빛을 보지 못할 전망이다. 국회 의석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이 특활비 폐지가 아닌 개선·유지하는 방향으로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8일 홍영표(민주당)·김성태(한국당)·김관영(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국회 일정과 특활비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은 올해 편성된 특활비를 영수증과 증빙서류 등을 첨부하는 조건으로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합의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사용 내역을 분명히 밝혀 특활비의 투명성을 높이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특활비 상당 부분이 이미 공적인 목적으로 쓰이는 업무추진비 성격이 강해 올해는 영수증으로 양성화해 투명하게 운영"(박경미 민주당 원내대변인)하고, "내년 개선안은 올해 안에 국회 운영위 산하 제도개선 소위에서 결정할 것"(신보라 한국당 원내대변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특활비 폐지 여론이 높은 현실을 감안하면 이번 합의는 민의와 동떨어진 결정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민주당과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 역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활비 폐지를 당론으로 정한 바른미래당은 두 당의 결정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고, 비교섭단체인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역시 민주당과 한국당의 합의를 "야합", "담합", "꼼수"라며 맹비난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지침에 따르면 특활비는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적으로 소요되는 경비'다. 그러나 지난 7월 5일 참여연대가 2011~2013년 3년 동안의 국회 특활비 내역을 분석한 결과, 국회의원들은 특활비를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사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수활동과 무관한 급여성 지출로만 한 해 전체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40억 원 이상이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용처를 확인할 수 없는 지출도 상당했다. 국회의장의 해외출장에 특활비가 지급되는가 하면 밥값, 출장지원비, 경조사비 등 기밀유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 사용되는 경우도 상당했다. 일각에서 특활비를 눈 먼 돈, 쌈지돈 등으로 부르는 이유일 터다. 집행 내역 확인서는 물론이고 영수증조차 없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터져나오는 비판이다.

참여연대가 8일 공개한 '2011~2013년 국회 특수활동비 2차 분석 보고서'의 내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회사무처는 "특수활동비의 사용 목적 또는 취지와 무관하게 정당 원내대표와 당직자들에게 매월, 일정 기준에 따라 지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기간 동안 모두 21명이 1억 5000만원 이상의 특활비를 수령했고, 20대 현역 국회의원 중에서도 79명이 특활비를 지급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참여연대는 "지급 금액이 일정하다는 것에 비춰볼 때 특수활동비 취지에 맞지 않는 비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오마이뉴스


참여연대의 이같은 폭로는 "특활비의 상당 부분이 공적인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민주당·한국당의 입장과 크게 상충한다.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특활비의 상당 부분이 사적인 용도'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 거듭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노회찬 의원이 특활비 폐지 법안을 발의한 실질적인 배경이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남다르다고 할 것이다.

"특수활동비를 누구처럼 생활비나 다른 개인적인 용도로 쓰는 게 아니라면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특수활동비라는 이유로 영수증 처리를 안 하고 정보공개를 청구해서 다시 사법부가 공개를 명령하는 이같은 폐단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특활비 폐지 법안을 발의하며 노회찬 의원이 내뱉은 일갈이다. 그의 지적처럼 특활비 논쟁은 법의 취지와 다르게 국가 예산을 잘못 운용해 온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였다. 국회의원에게 집중돼 있는 과도한 특권과 특혜, 잘못된 관행과 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국회 개혁의 일환인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과 한국당 거대 양당은 특활비 논란의 본질과 역행하는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국민으로부터 '깜깜이' 돈이라 거세게 비판받던 특활비는 '어찌어찌'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노회찬 의원이 폐지시키려 했던 특활비를 민주당과 한국당이 '도로' 살려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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