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크게 곤욕을 치르고 있다.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검토 문건과 도청·감청을 통한 민간인 사찰을 잇따라 폭로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과의 설전이 세간에 알려지면서다. 포문은 김 원내대표가 먼저 열었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임 소장을 향해 "임태훈 소장이라는 분은 성 정체성에 대해서 혼란을 겪고 있는 자다", "그런 자가 군 개혁을 주도한다는 점은 어불성설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하고 구속된 전력이 있는데 문재인 정권과 임 소장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등의 인식공격성 발언들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김 원내대표는 이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원내대책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임 소장이) 화장을 많이 했다", "군 개혁을 하려면 적어도 군 생활을 해야 한다" 등 마초적 사고를 가진 남성들이 술집에서나 나눌 법한 저급한 말들을 이어가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김 원내대표는 이날 공당 대표의 발언이라고는 믿기 힘든 인권 감수성과 차별적 인식을 드러냈다. 개인의 신상과 관련된 문제를 공적인 자리에서 그것도 당사자 동의 없이 밝힌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마저도 잘못된 내용을 말했다. 임 소장은 이미 지난 2000년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선언한 성 소수자로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사람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비판한 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그동안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처벌받아온 것은 대체복무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제도적 결함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김 원내대표는 "군형법상으로는 양심적 병역 거부도 처벌을 받는다"라며 임 소장을 겨냥했다. 이는 지난 6월 28일 대체복무제가 없는 병역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판결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발언이다.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 역시 '한국당스럽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9월 19일 김태흠 한국당 의원 등 17명은 '성적지향'을 삭제하는 국가인권위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인권위법은 제2조 제3호에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와 관련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사상, 성적지향 등 19가지 차별금지 사유를 들고 있는데, 개정안은 이 중에서 '성적지향'을 삭제하자는 내용이다. 김 원내대표의 이날 발언은 그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은 물론이고 유엔 등 국제인권단체의 인권규범과도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발언이 더욱 심각한 것은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의 본질을 도외시한 채 임 소장의 성 정체성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기무사 문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기각 시 시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촛불시민을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실행계획이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다. 문건에는 군대의 이동계획에서부터 언론 장악 방법, 야당 국회의원 체포가 포함된 국회 무력화 계획 등이 아주 상세하게 담겨있다. 따라서 이번 논란의 핵심이 문건 작성 경위와 배후를 밝히는 것에 있음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김 원내대표는 이날 전형적인 '본질 흐리기' 전략을 들고 나왔다.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임 소장의 성 정체성을 문제 삼는가 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기무사의 대응 문건이 있었다는 제보가 있다며 물타기에 나섰다. 이같은 방식은 국정원 사건, 세월호 참사, 정윤회 문건 등 한국당이 과거 여러 차례 보여준 바 있는 진부한 레퍼토리다.
이 뻔한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바꾼 이는 다름 아닌 임 소장이었다.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김 원내대표의 발언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연 임 소장은 번뜩이는, 그리고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반격으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는 먼저 "논리가 부족하니 하등 상관 없는 내용까지 끌어와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며 "동성애자와 성 정체성을 혼란을 느끼는 사람을 동일시하는 무지의 소치는 차지하더라도 인식의 밑천을 드러내면서까지 내란범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국민들은 물음표를 던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기무사 계엄 수행 세부 자료 문건에는 군이 국회의 계엄령 해제 시도를 무력화하기 위해 당시 정부 여당인 자유한국당과 공모해 의원 정족수를 고의로 미달시키고 야당 의원들을 체포하는 구체적 계획이 제시돼 있다"며 "당시 정부 여당으로 소속 의원이나 관계자가 내란 음모에 연루된 경우 자유한국당은 위헌 정당의 오명을 벗어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기무사 계엄령 문건에 조력자로 등장하는 한국당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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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소장의 반격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 김 원내대표의 화장 발언에 대해서도 "기자회견 할 때 분장을 하는 것이 뭐가 잘못된 것이냐"고 반문하며 "앞으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방송 출연 하실 때 분장실 가지 말고 민낯으로 촬영하기 바란다. 방송사들이 화장품값을 아끼게 돼 다행"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김 원내대표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걸고 넘어지자 한국당의 '헌법 정체성' 문제로 되받아치는 부분이었다. "자유한국당은 공당으로서 친위쿠데타 여부를 국민 앞에 해명할 책임이 있다"며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은 자유한국당의 헌법 정체성"이라고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장면은 임 소장의 발언 중 '백미'로 꼽을만 했다.
한국당을 향한 임 소장의 일갈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건국절 논란에서 보듯 한국당은 헌법 전문에 명시돼 있는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듯한 행태를 되풀이 해오고 있다. 국가기관이 선거에 불법 개입한 '국정원 사건'에 대한 한국당의 행태 역시 뜨거운 사회적 논란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다수의 국가기관이 헌정질서를 유린한 중대 범죄를 자행했음에도 당시 여당이었던 한국당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사실상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은폐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헌법 가치를 부정하는 한국당의 행태는 이뿐만이 아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물론이고 노동 3권에 대해서도 한국당은 지극히 편협하고 인색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헌법 가치를 송두리째 부정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한국당이 보여준 태도나 평화·통일에 대한 수구냉전적 인식 역시 그들의 반헌법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다.
임 소장의 '되치기'에서 짜릿함과 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고함을 치지 않아도, 막말을 퍼붓지 않아도, 억지를 부리지 않아도 충분히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임 소장은 상대의 저급한 인신공격을 품위있고 절제된 언어로 막아내며 이 '설전'의 승자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천박한 막말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품격있는 말의 향연을 몸소 시전해 보인 셈이다. 임 소장의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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