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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정원 사건'엔 사과조차 없더니, '드루킹 방지법' 발의한 한국당

"저와 경공모는 원래 정치에 관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2012년 대선 때는 저나 회원 누구라도 어떠한 정당, 정치 활동을 한 바가 없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2016년 9월부터 저희가 '선플운동'을 펼치게 된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그 해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한나라당측 선거관계자로부터 2007년 대선에 사용되었던 '댓글기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하게 됩니다. 이것은 제 블로그에도 언급하였고 경찰 관계자들에게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2007년과 2012년 대선의 패배가 이 댓글기계 부대의 맹활약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5월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된 드루킹의 '옥중서신' 중 일부다. 드루킹의 옥중서신에서는 당시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가 등장한다. 정치에 관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드루킹이 인터넷 포털에 올라가는 특정 댓글의 공감수를 인위적으로 올려주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댓글조작에 가담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 말이다. 

드루킹은 한나라당 선거관계자로부터 2007년과 2012년 대선 당시 '댓글기계'가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매크로에 손을 댔다고 실토했다. 이는 달리 말하면, 2007년과 201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과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댓글기계'를 활용해 조직적으로 여론을 조작했다고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오마이뉴스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과거 '댓글기계'를 통해 여론을 조작했다는 정황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서 확인된 바 있다. <한겨례>는 지난 6월 5일 "한나라당, 2006년 선거부터 '매크로' 여론조작"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나라당 의원 사무실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의 증언을 토대로, 한나라당이 2007년 대선을 포함해 각종 선거운동 기간 동안에 매크로를 활용해 여론 조작을 해왔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한나라당 모 의원 사무실에서 일했던 이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2006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각종 선거에서 매크로를 통해 댓글을 달거나 공감 수를 조작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직원은 당시 한나라당의 여론조작을 입증하는 증거로 한 후보 캠프의 상황실장과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해당 메시지에는 매크로의 실행을 요구하고 이를 확인하는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박철완 전 새누리당 선대위 디지털종합상황실장 역시 2012년 대선 당시 매크로가 사용됐다고 증언했다. 박 전 상황실장은 지난달 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2012년 대선 당시 매크로를 활용한 불법적 여론조작의 위험성에 대해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공보단장이었던 "이정현 의원이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주장하며 불법적 온라인 활동이 보다 조직적 차원에서 이루어졌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박 전 상황실장은 "2012년 당시 불법적인 선거운동을 했던 사람들 중에서 상당수가 청와대 홍보수석실로 흘러 들어갔다"며 실명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에 입성한 이들은 국정농단 파문 당시 태블릿 PC의 소유주로 알려졌던 김한수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을 포함해 최소 4~5명에 이른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폭로들은 한국당의 전신이었던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시절 이미 매크로를 동원한 불법적 여론조작이 광범위하게 펼쳐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불법적 여론조작 행태가 드루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공당의 선거 캠프 내에서 벌어진 여론조작의 위법성이 일반인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여론조작 행위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크게 조명을 받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 이면에 드루킹 사건이 있었다. 

지방선거 전략 부재에 고심하던 한국당에게 드루킹 사건은 국면 전환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이에 한국당은 김성태 원내대표가 단식투쟁에 나서는 등 사력을 다해 이 사건에 화력을 집중시켰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 역시 연일 드루킹과 김경수 당시 의원 사이의 관계를 부각시키며 여론몰이에 나섰다. 드루킹이 '영감'을 받았다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불법적 여론조작 행태가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실질적인 배경이었다.  


ⓒ 오마이뉴스


이같은 상황에 고무되기라도 했던 것일까. 한국당은 이 기회에 온라인 여론조작 근절의 첨병이 되려고 단단히 마음먹은 모양이다. 과거 불법적 여론 조작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당이 이른바 '드루킹 방지 4법'을 발의했다는 소식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형 포털에서 벌어지는 인터넷 여론조작을 방지하기 위해서라 한다. 


30일 김성태 의원(비례대표)이 대표발의한 '드루킹 방지 4법'은 신문법, 정보통신망법, 전기통신사업법, 방송통신발전기본법 등의 개정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개정안은 '아웃링크'를 법제화하고, 정보통신사업자의 기술·관리 의무를 강화하며, 포털의 뉴스 서비스 독점을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온라인 여론조작은 공론장이 되어야 할 인터넷 여론의 순기능을 마비시키고 왜곡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망가뜨리는 심각한 불법행위라 할 것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를 근절시키기 위한 방안이 조속히 강구돼야 하는 이유일 터다. 그러나 그 주체가 한국당이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왜 그럴까.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 몸 담았던 관계자의 잇따른 폭로에서 드러나듯 한국당은 이미 2006~2007년 무렵부터 매크로를 이용해 불법적으로 여론조작을 해온 정황이 너무나 뚜렷하다. 더욱이 한국당이 누구던가. 2012년 대선을 얼룩지게 만들었던 '십알단 사건'과 '국정원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을 만큼 불법 여론조작의 최정점에 서있던 장본인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한국당은 드루킹 사건에 사생결단으로 매달리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일삼더니,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것처럼 스스럼없이 행동하고 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촌극이란 말인가.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을 듯하다. 불법 여론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당사자들이 불법 여론조작 방지 법안을 발의했으니 어찌 아니 그럴 텐가. 

한국당은 '십알단 사건', '국정원 사건' 등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짓밟은 불법 여론조작에 대해 책임지기는커녕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과거 한나라당 시절부터 매크로를 동원해 불법적으로 온라인 여론조작을 해왔다는 의혹으로 검찰에 고발까지 당한 상태다. 

그런 그들이 드루킹 사건을 가리켜 "온라인 여론 형성 왜곡", "민주주의 유린 행위"라 맹공을 퍼붓는다. 그리고 급기야 온라인 여론조작을 근절시키겠다는 명목으로 '드루킹 방지 4법'이라는 법안까지 발의하기에 이른다. 마치 자신들은 불법 여론 조작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듯이 말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참으로 낯뜨거운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적반하장이란 말로는 부족한, '뻔뻔함'과 '몰염치'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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