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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병준 후보자는 정녕 민심을 거역할 셈인가

ⓒ 오마이뉴스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3일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총리직 수락 배경과 국정운영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기자회견 도중 눈물까지 흘려가며 비장한 결의와 각오를 내비쳤다. 그러나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반응은 비판 일색이다. 일의 앞뒤 순서가 뒤바뀐 탓이다. 무엇보다 국회 인준을 거치지 않는 그가 마치 총리가 된 것마냥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것부터가 시의적절하지 않다. 박 대통령의 독선적 인사에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분기탱천하고 있는 형국이다. 당장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릴지조차 불투명한 마당에 총리 코스프레를 펼치고 있으니 여기저기서 실소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김 후보자의 기자회견 내용도 자가당착과 견강부회로 가득차 있다. 그는 국정이 붕괴되는 상황을 마냥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며 총리직 제의를 수락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냉장고 안의 음식은 냉장고가 잠시 꺼져도 상합니다"라는 비유를 들었다. 국정을 잠시도 비워둘 수 없다는 취지의 이 비유는 그러나 김 후보자의 현실 인식이 박 대통령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 보인다. 왜 그럴까?

현 시국은 냉장고가 잠시 꺼진 정도가 아니라 냉장고 안의 음식이 상해 악취가 진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 일가는 한 통속으로 국기문란과 국정농단, 부정비리, 부정축재 등의 중대 범죄를 저질렀고, 이 범죄행위에 청와대와 정부부처, 전경련 등이 조직적으로 가세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물론 대통령의 하야까지 외치고 있는 실정이다.

하루 빨리 썩은 내 진동하는 음식들을 죄다 끄집어 내고 냉장고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할 판이다. 별도특검을 통해 '박근혜 게이트'에 관련되어 있는 공범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며, 이는 이번 사건의 총책임자인 박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국정 수습책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거국 중립내각 등의 방안들은 그 이후에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 순리다. 김 후보자의 논리는 썩은 음식은 그대로 놔둔 채 냉장고를 켜자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그는 총리가 되면 자신의 권한을 100%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각을 포함해 모든 것을 국회 및 여야 정당과 협의하겠다고 했고, 상설적 협의기구와 협의체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거국 중립내각을 구성해 책임총리가 되겠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포부는 원대하나 어디까지나 일장춘몽에 불과한 얘기다. 전제부터가 틀렸다. 야당은 현재 박 대통령의 일방통행과 독선을 비판하며 인사청문회 보이콧을 선언한 상태다. 총리가 될 가능성부터가 지극히 희박하다.

책임총리가 된다는 보장 역시 그 어디에도 없다. 박 대통령의 독단과 독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어쩌면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층층히 쌓여왔을 대통령의 권력욕이 하루 아침에 사라질 리는 만무하다. 곤궁한 처지를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예의 독단과 독선이 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음 대선까지는 14개월이나 남았다.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 공화정 체제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며, 제왕적 대통령제에 최적화된 인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오마이뉴스


김 후보자와 박 대통령 사이에는 구원(舊怨)이 있다. 지난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으로 내정된 김 후보자는 당시 한나라당의 각종 의혹제기와 반대 기류에 휘말려 13일만에 낙마했다. 박 대통령도 이 과정에 크게 관여했음은 물론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김 후보자의 자질 문제과 의혹을 집중 부각시키며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였다. 그랬던 그들이 하루아침에 돌변했다. 대통령은 김 후보자를 절체절명의 위기 탈출을 위한 구원투수로 영입했고,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김병준을 부정하면 노무현 정부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가증스런 멘트까지 날렸다.


갑작스런 변심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터. 일련의 상황은 김 후보자를 총리로 지목하게 된 배경을 능히 짐작하게 한다. 개각과 비서진 교체 등의 인적쇄신을 통해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다. 야권 성향의 인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책사로까지 불렸던 김 후보자는 이런 대통령의 심중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삼척동자도 아는 이 사실을 김 후보자가 모르고 있을 리 없다.

김 후보자는 지난달 27일 교통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회복불능에 빠진 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거론하며 "대통령은 뒤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어 국회가 총리를 선출하거나 추천해 놓고 거국내각을 구성해 국정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그 무렵 김 후보자는 국민의당으로부터 비대위원장직을 제안받고 고심하던 터였다. 그랬던 그가 불과 며칠 사이에 박 대통령의 총리직 제안을 전격 수락해 버렸다. 김 후보자의 변심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은 김 후보자의 총리직 수락이 시대흐름이나 민심과는 철저하게 유리되어 있다는 점이다설령 김 후보자의 충정이 진심이라 해도 시대흐름과 민심에 역행하고 있다면 이는 역사와 국민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행위다. 김 후보자 자신이 지적했듯이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져있다. 더 이상 박 대통령에게 '대한민국호'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이 민심이다. 썩을대로 썩은 무도한 권력을 도려내고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시켜야 할 시대흐름과 소명도 있다. 김 후보자의 총리직 수락은 이 모든 것을 부정하고 전복하는 의미가 있다.

김 후보자의 후배들인 국민대 총학생회는 "우리학교의 교수가 총리로 임명됐음에도 기뻐할 수 없는 우리 학생들을 대표하여 박근혜 정부에게 현 사태의 본질 파악과 진정성있는 쇄신을 요구하는 바이며, 국민대 학교 강단에서 수많은 행정학도들을 양성했던 김병준 교수에게도 역시 정의와 민주주의의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는 결단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더 이상 부끄러움이 국민의 몫이 되어서는 안 된다. 김 후보자는 후보직을 사퇴하고 국민의 편에 서야 한다. 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그 어디에도 없다. 변치않는 역사의 진리를 거스르는 오판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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