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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무성의 문재인 정부 비판이 공감받지 못하는 이유

"오늘 이 사태에 대해서 누구를 탓하기보다 각자가 자기 성찰부터 하는 반성의 시간이 돼야 한다. 새로운 보수정당의 재건을 위해서 저부터 내려놓고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 분열된 보수 통합을 위해, 새로운 보수당 재건을 위해 바닥부터 헌신하도록 하겠다. 한국당은 새로운 가치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몰락했다. 이제 처절한 자기반성과 자기희생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지난 6월 15일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오는 2020년 21대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날, 유난히 '자기 성찰'과 '반성'을 강조했던 김 의원의 자숙 시간이 끝나기라도 한 모양이다. 한동안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그가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바닥부터 헌신하겠다"고 다짐한지 두달여 만이다. 

앞서 23일 '벼랑 끝에 몰리는 자영업자·서민과 서민금융제도 개선방안'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김 의원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길 잃은 보수정치, 공화주의에 주목한다'는 주제의 세미나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공화주의'를 망각한 채 독선의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고 맹렬히 성토했다. 

나흘 사이, 두 번의 세미나를 통해 존재감을 한껏 드러낸 김 의원의 행보가 본격적인 정치 재개의 서막을 의미하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주목할 것은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갖던 김 의원이 꺼내든 '카드'다. 그는 23일에는 소득주도 성장을, 27일에는 '공화주의'를 꺼내들며 문재인 정부를 맹폭했다. 주제는 달라도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이것으로 분명해 보인다. 역시나, '기-승-전-문재인 정부 비판'이다. 


ⓒ 오마이뉴스


최저임금 인상과 일자리 창출 논란, 건강보험료 인상 논란, 누진세 논란, 탈원전 논쟁 등 집권 2년 차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과 국정 운영에 조금씩 의문부호가 붙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70~80%에 이르던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도 이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소득주도 성장 기조를 앞세워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효과는 아직까지 미비한 실정이다. 

반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야당, 재계, 보수언론 등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각종 논란은 증폭되고 있는 양상이다. 당황한 청와대가 소득주도 성장의 속도조절 가능성을 내비치자 진보진영의 비판도 속출하고 있다. '일자리 정부'라는 말이 무색하게 고용지표는 나아지지 않고 있고, 정책 운용을 둘러싼 청와대 내부의 혼선도 심심치 않게 목격되고 있는 형국이다. 

경제 성장과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상 소득주도 성장은 안팎의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김 의원이 작심하고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배경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김 의원에게 과연 비판자로서의 '자격'이 오롯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왜 그럴까? 

낙수효과를 강조했던 '이명박근혜' 보수정부가 지난 9년 동안 부자감세와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대기업 우선 정책을 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결과 고용환경이 악화되고, 나쁜 일자리와 청년실업, 사회적 양극화 등이 심화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 의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 새누리당(현 한국당) 대표를 역임했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실패한 정책이라고 평가하는 대기업 우선 정책을 주도했던 집권여당의 실세 정치인이었던 셈이다. 그런 면에서 보수정부 9년 동안 각종 경제·사회적 부작용을 양산시킨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김 의원이 이제 갓 1년이 지났을 뿐인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거세게 비판하는 것은 자가당착에 가깝다. 

문재인 정부의 독선적 국정 운영을 지적하며 '공화주의'를 역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27일 세미나에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두 기둥으로 삼고 있다. 민주주의가 중요한 가치인 것은 분명하지만 민주주의를 강조하다 보니 공화주의를 소홀히 다뤘다"며 "문재인 정부가 공화주의 정신을 망각한 채 논란이 많은 정책을 독단적으로 강행하면서 총체적 민생 난국을 초래했다"고 맹비난했다. 


ⓒ 오마이뉴스


한마디로 적반하장이요, 소가 웃을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 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짓뭉개지는 동안 이를 묵인·방조해 왔던, 그래서 시민으로부터 정치적 탄핵을 받았던 한국당 소속 의원이 입에 담을 소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주권재민을 핵심원리로 삼고 있는 민주주의, 정의와 공공성을 강조하는 공화주의를 망가트려온 당사자들이 할 얘기가 도저히 아니기 때문이다. 

공화국(republic)의 어원은 라틴어 '레스 퍼블리카'(res publica)에서 파생됐다. 이 단어에는 '공공의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공화주의가 추구하는 최고의 덕목이 '공공성'임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명박근혜' 보수정부에서 특히 취약했다고 평가받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공공성'이다. 

이와 관련 보수의 책사로 통하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그의 저서 '대통령의 자격'에서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공공성의 결여"라고 꼬집은 바 있다. 윤 전 장관은 2012년 대선 직후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도 박근혜 당선자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공화주의의 핵심적 가치들인 '정의'와 '공공성' 등이 '이명박근혜' 보수정부 시절 크게 후퇴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김 의원의 주장이 시민들의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지난 9년 동안 대기업 우선 정책을 고수하며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을 악화시키고, 시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독단적 국정운영으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비판받는 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과 독선을 지적하고 있으니 어찌 아니 그럴 텐가. 
 
총칼로 시민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전두환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상황을 비판한다면 어떤 반응이 터져나올까. 아무리 좋은 소리도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전혀 다르게 소급된다. 바로 김 의원의 경우처럼 말이다.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성토한 김 의원이 비판받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판 그 자체보다 비판의 '자격'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 제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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